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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경희 Mar 12. 2020

미야지마-태양빛 붉은 토리이

일본 소도시 9 -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신들의 섬

패키지여행은 여럿이 함께 다니면서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따라 움직인다. 체계적이고 익숙한 리더가 이끌어가는 여행법이다. 자유롭지 못한 대신에 낯선 세계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고,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이영민 교수의 표현처럼 경계선 밖에서 바라보며 즐기기 때문에 다름을 발견하고 비교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자유여행은 다르다. 경계선을 넘어 그들의 공간으로 훅 들어간다. 다름을 이해하고, 차이를 공감하며, 그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고 행동하는 과정이다. 새로움을 찾고 익숙함을 발견함으로써 경계선은 허물어지고, 결국은 나의 시간과 공간을 직시함으로써 나를 성찰하는 과정이 된다. 그게 자유여행의 맛이다.       

  

한 지역을 24시간 촬영한 올라퍼 엘리아슨 작품


2016년 겨울, 리움미술관에서 ‘상상 그 이상을 넘어’ 주제로 열린 올라퍼 엘리아슨의 전시를 본 적이 있다. 자연과 생태, 디지털을 결합한 화려하고 대담한 작품 중 유독 눈길을 끈 작품이 있었다. 한 지역을 30분 간격으로 24시간 동안 찍은 사진을 모아 놓은 작품인데 빛에 따라 아침과 저녁 풍경이 완전 달랐다. 이런 생각을 왜 못 했을까? 멍하니 바라보는데 내 편견의 벽이 와르르 무너진 기분이었다. 같은 장소도 시간에 따라, 빛에 따라 달리 보인다는 것을 증명해 준 전시였다. 같은 장소, 다른 시간을 포인트로 정한 이번 여행지는 미야지마! 히로시마 남서 쪽에 자리 잡은 신들의 섬이라 부르는 곳이다.         


백패커스 미야지마 호스텔


항구 바로 앞, 전망 좋은 백패커스 호스텔에 숙소를 잡았다. 저녁 9시 넘어 도착하니 로비에 외국인이 몇몇 보였다. 친절한 여주인이 안내해 준 여성 전용 객실은 좁았지만 깨끗했다. 그러나 깊은 잠이 들지 않아 뒤척였다. 날이 밝아오자 서둘러 준비하고 근처 페리 터미널에 도착, 06시 25분 첫 배를 타고 출발! 하늘은 맑고, 구름도, 바람도 없이 상쾌했다. 푸른 바다 너머 붉은 토리가 아침 햇살을 받아 황금색으로 빛나고, 이쓰쿠시마 신사는 아침 햇빛에 더욱 선명하였다.


10분 정도 지나 도착, 배에서 내린 후 표를 받는 시스템이다. 이른 새벽이라 거리는 잠들어있다. 일찍 일어난 사슴들이 새벽부터 나와서 여행객들을 반긴다. 교토의 아마노하시다테, 센다이의 마쓰시마와 함께 일본 3경 중 하나이다. 일본 3경 표지석, 2마리 사자상이 지켜주는 토리, 해안 따라 이어진 석등롱을 따라 해변으로 내려갔다. 썰물 때라서 모래사장이 넓다. 바다 쪽으로 쭉 걸어가 태양 빛을 머금은 주황빛 토리이 앞에 섰다.


일본 3대 비경 미야지마 세계문화유산 조형물

 

토리이는 신의 영역과 인간의 세상을 구분하는 의미이다. 높이 16.6m, 중량 약 60톤, 중앙 기둥은 수령 500-600년 된 녹나무이고 좌우 기둥은 삼나무라 한다. 처음 토리가 세워진 것은 1,168년이나, 약 500년 전 형태를 갖췄고, 현재 8번째 토리이다. 다른 바닷물에 잠겨있던 부분은 어패류가 붙어있다. 지붕에 ‘太陽’과 ‘月이 써진 것은 귀신이 막기 위함이라 한다. 토리는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다르다. 빛의 방향에 따라 색깔도 달라진다. 한낮의 토리와 석양의 토리는 느낌이 완전 다르고, 물속의 토리와 모래 해변 위의 토리도 다르다. 시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신비함 연출하는 옛사람들의 창의성에 박수를 보낸다.     


바닥이 드러난 갯벌에 세워진 붉은 토리이
같은 장소 다른 시간 물속에 잠긴 토리이


토오리에서 안쪽 약 200미터 지점에 위치한 이쓰쿠시마 신사는 593년에 세워졌다. 1,400년의 역사를 지닌 곳으로 21채의 건물이 붉은 칠을 한 회랑으로 연결돼 있다. 회랑의 길이는 약 262m, 곳곳에 조등롱을 달아 놓았다. 해신을 섬기는 신사로 용궁의 모습을 재현한 듯 밀물 때는 바다 위에 서 있는 모습이다. 주홍색의 회랑 기둥과 푸른 바다가 강렬한 대비를 갖는다. 회랑의 지붕은 노송나무 껍질로 되어 있으며 용마루 기와가 얹어져 있다. 무악이 연주되는 무대와 천황이 보낸 칙사만이 건널 수 있는 둥근 소리바시 등 곳곳에 볼거리가 많다.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붉은 회랑 사이에 걸린 조등롱

 

징검다리 건너 이쓰쿠시마 신사로 가는 길


시간에 지남에 따라 갯벌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던 아침 풍경은 물속에 사라지고, 물 위에 떠 오른 토리까지 배를 타고 건너야 하는 바다의 신사로 대변신한다. 아침 햇살에 빛나던 황금 기둥은 주황색으로 반사된다. 장소는 변함없는데 밀물과 썰물, 시간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들은 이런 미학적 가치를 어찌 알고 만들었을까? 얼마나 정성을 들였을까? 시대를 뛰어넘는 예술을 구현한 것이다.     

    

밀물 때에는 배 타고 방문하는 관람객


 골목 끝 언덕 위에 솟아 있는 센조카쿠는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승려 에케이에게 명해 지은 대경당이다. 전쟁에서 죽은 사람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불경을 독송했다. 그러나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미완성인 채로 남아있다. 1,000장의 다다미가 깔려있고. 경당 안에는 주걱의 발상지답게 곳곳에 거대한 주걱이 세워져 있다. 사찰 안 나무판에 소원을 빌어 걸어 놓은 에마도 나무 주걱 모양이다. 1,407년에 세워진 화려한 목조 5층 탑, 고주노토는 일본과 당나라의 양식이 어우러진 붉은 탑이다. 이쓰쿠시마 신사, 토리이와 함께 붉은색의 균형을 갖추고 있다.     


미카사하마 해변의 석등롱


석등롱이 늘어선 미카사하마 해변에서, 싱그러운 미풍을 맞으며, 마중 나온 사슴들과 눈인사를 나눈다. 해송이 야무지게 바람을 막아주고, 따뜻한 휴식에 몸도 마음도 풀린다. 잠시의 여유로움은 연두색으로 표현해야 할까? 골목길을 슬슬 걷다 가장 오래된 참배길 야마베노코미치에 올라갔다. 언덕 위에 오르니 시야가 확 트여 앞바다가 시원하다. 마을을 전망하기에 아주 좋다.     


 미야지마 제일의 사찰, 806년에 세워진 다이쇼인은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2006년에는  ‘14대 달라이 라마’가 방문하기도 했다. 소박하고 정갈함을 갖춘 사찰로 이쓰쿠시마 신사의 제사를 맡아왔다고 한다. 이곳에는 불교의 깨달음을 얻은 수행자 500명이 다양한 표정으로 관람객을 반긴다.

사찰 아래 오모테산도 상점가에는 수령 270년 된 느티나무를 깎아 만든 7.7m, 무게 2.5t의 거대한 주걱, ‘오샤쿠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주걱의 발상지 미야지마를 상징하기 위해 2년 10개월에 걸쳐 제작했다고 한다. 가마쿠라 막부 시대부터 서서히 형성되어 온 미야지마의 거리는 조용하고 아담하다. 사슴과 단풍, 나무 주걱과 굴 요리, 단풍잎 모양의 모미지 빵 등 미야지마의 독특한 색깔을 만들었다. 이제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지 거리는 사람들로 복잡해진다.    


미센에 오르는 길에 만나는 폭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미센은 높이 535m, 미야지마의 대표적인 산봉우리이다. 미센 전망대를 오르기 위해 푸른 산길로 접어들었다. 나름 폭포가 시원하게 떨어지고, 살랑거리는 바람이 향기롭다. 10분 정도 걸으니 로프웨이 탑승구에 도착, 오전 9시 전인데도 꽤 많은 사람이 줄 서있다. 곤돌라 타고 중간에 푸니쿨라로 갈아탄 후 미센 전망대에 도착했다. 다도해의 풍광과 푸른 바다가 아름답다. 전망대 카페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 한잔에 케이크를 먹으니 맛도 일품이다. 연인의 성지 사진 스폿을 뒤로하고, 맑은 하늘, 다도해를 바라보는데 여수 앞바다가 떠올랐다.


미센에서 바라본  섬들과 푸른 바다


내려오는 길 산기슭 모미지 공원에는 약 200그루의 단풍나무가 있는데 멋진 가을 단풍을 보여주는 곳이란다. 홍엽 단풍의 아름다움을 따온 모미지 만주가 유명하고, 매년 2월 굴 축제가 열릴 만큼 굴요리 또한 유명하다. 관람객을 싣고 토리를 향해 나아가는 배를 보고 페리를 타고 미야지마 구치로 나와 장어덮밥과 굴구이로 점심을 먹었다. 시간에 따른 공간의 변화를 제대로 느낀 미야지마 여행이었다. 옛사람의 창의성이 느껴지는 아름다움을 마음에 담아두고, 히로시마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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