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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경희 Feb 06. 2020

가고시마-나만의 일본 여행

일본 소도시  1 - 사쿠라지마 화산 찾아 가고시마로 고고싱

일본은 참으로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이다. 우리나라와 나란히 위치하고 있지만 오랜 역사적 관계 때문에 좋아할 수는 없는 나라이다. 마음을 열고 이해하려 하면 독도문제 혹은  위안부 역사문제 등이 툭툭 불거진다.  그럴 때마다 참으로 안타깝다. 역사 속 문제를 인정하며, 서로 존중하고 함께 발맞춰 나가면 시너지가 생길 텐데 아쉬운 부분이 크다. 그러저러한 이유와 명분을 댈 수 있지만 일본에게서 배우고 가져올 만한 것이 분명 있다. 마냥 밉다고 해서 무시 해버 리거나 감정적으로 대립해 관계를 끊을 수 없다. 물론 중심을 잡고 분명한 입장을 밝히는 자세는 중요하다. 보다 지혜로운 행동으로 대처할 일이다.


 크게 특별하지 않은 시민으로서 소박한  일상을 들여다 보고자 한다. 소도시 여행 중 일본인들에게서 우리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때론 나도 잊고 지냈던 나의 사소함  혹은 담대함을 만나기도 하고 삶의 본질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얽히고설킨 한일 관계이지만 마냥 피할 수 없다.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 아닌가!  소도시 여행법은 걷는 자의 속도에 맞추고 걷는 자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다. 피상적으로 훑어보는 것보다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시선을 가져보는 것이다.


1. 가고 싶어 가고시마


 가고시마는 가고 싶은 곳이지만 우리와 관련이 깊은 곳이기도 하다. 1598년 노량해전, 이순신 장군은 사쓰마(가고시마) 번주 시마즈 요시히로의 함대와 전투 중 전사했다. 일장기와 기미가요의 고향이며 수많은 조선 도공을 납치해 간 곳이기도 하다. 1875년 운요호 사건을 일으켜 강화도조약을 맺게 한 이노우에 요시카, 메이지 유신을 이끌고 군권을 장악하고 정한론을 주장하던 사이고 다카모리의 고향이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역사적 인물 중 하나. 메이지유신 150주년을 기념하여 NHK는 사이고 다카모리를 소재로 한 대하사극 ‘세고돈’을 방영했다. 육군 대장, 근위 도독으로 군권을 장악한 메이지 정부의 실권자, 1등 공신이면서도, 메이지 정부에 반역했다 죽어간 인생역정에 공감하며, 솔직 담백한 그의 성향이 일본인들에게 사랑받는 이유이다. 2003년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는 바로 이 세이난 전쟁과 사이고 다카모리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시로야마에서 바라 본 가고시마 시가지


 규슈 남부에 위치한  가고시마는  화산이 살아 움직이며, 아직도 화산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사꾸라지마는 가고시마 앞바다 4㎞ 지점 화산섬으로 반복 분출하고 있으며, 화산재가 제주도까지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1914년 대분화로 58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다친 곳이다. 화산이 쏟아낸 용암으로 만들어진 지형과 산호 등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야쿠시마는 1993년 일본 최초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등록된 섬으로 식물 보존이 잘 되어있어  바다 알프스로 알려진 곳이다.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면  1시간 10분 거리에 위치한 가고시마 공항. 7월 초,  출발 즈음 태풍이 피해 가긴 했으나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가고시마 현지 기상 사정으로 연착된 비행기는 두 번째 착륙 시도에 성공했다. 가고시마공항 옆 타임스 렌터카에서 닛산 자동차를 받고, 바로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두 시간 정도 이부스키로 향해 달려갔다. 어둠과 함께 종일 내린다던 빗방울은 갈수록 굵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바람까지 불어 길을 분간하기 힘들었다.


 편의점에서 빵과 라면 등 먹거리를 사고, 이부스키 코코 노요라도 온천 호텔에 도착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다. 유가타로 갈아입고 천연 온천탕에 들어가는데 처마부터 바닥까지 한 줄로 이어진 작은 왕관들. 차곡차곡 쌓여 길게 매달린  독특한 물건이 눈에 띄었다. 빗물이 모여 다 채워지면 아래로 흘러내려 가게 하는 물받이  장치인 셈이다. 비가 많이 오는 동네의 독특함이 묻어났다. 우리나라는 처마의 낙숫물이 떨어지는 것에서 끈기, 수적천석을 배우지만 그들은 다 채우면 넘쳐나는 영과후진의 생활철학을 배우는 듯하다. 우중에 노천온천으로 피로를 풀고, 이치방 일본 맥주 한잔으로 갈증을 달래고 이내 잠이 들었다.


왕관 모양의 물받이 장치



 다음날 새벽, 천연 온천탕에 몸을 푹 담그고, 일본식 식사를 마친 후 큐카무라 캠핑장과 검게 펼쳐진 모래, 치린가시마 육계사주를 살펴보았다. 치린가시마는 둘레 약 3km의 무인도로 '인연의 섬'이라 불린다. 간조 때 섬과 건너편 곶 사이에 모래 길이 열려 신비한 광경을 연출한다. 이부스키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모래찜질 온천이다. 지면 아래로 뜨거운 해수가 흐르는 이부스키의 모래는 항상 열기를 뿜어낸다. 모래 사이로 온천의 증기가 올라와 온천욕과 같은 효과가 있다. 온천욕을 마치고 나오니 빗줄기도 거세지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치린가시마 육계사주 해변
치린가시마 섬 모습-가고시마현청 홈페이지


 가고시마로 돌아오는데도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7월 초 일본 여행은 장마을 경험할 각오로 가야 한다.  뉴스는 오까야마, 히로시마 폭우로 발생한 재난상황을 쏟아내고  있다. 가고시마 중앙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사이고 다카모리의 생가가 있다. 동생 쓰구미치는 반란에 동조하지 않고 메이지 정부에 남아 두루 요직을 거쳤다. 가난했던 죽마고우 오구노도시미치는 정한론으로 갈라섰으나, 신정부의 관료제도를 정비하고, 경제 건설정책을 적극 추진 일본 근대화의 기틀을 잡은 인물로, 그의 생장지 옆에는 메이지유신 기념관이 있다. 곳곳에 메이지 유신을 기념하는 깃발이 빗속에서도 휘날리고 있다.


센칸엔 정원 붉은 대문


 우중이라 갈 만한 곳을 고르다 이소 정원이라 불리는 센칸엔 정원을 찾았다. 입구에 연둣빛 예쁜 건물은 스타벅스이고 오랜 느낌이 드는 신사를 지나면 신선이 놀던 바위  센간엔 공원이다. 센간엔은 에도시대 사쓰마의 영주 시마즈미쓰히사가 1658년에 건축한 정원으로 화산재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독특한 물건이 많다. 빗 속에 초록빛이 더욱 진하고, 긴 코완만을 배경으로 사꾸라지마 섬의 화산 연기가 정원의 한 부분을  차지한 느낌이다.  제11대 번주 시마즈 나리 아키라는 자신의 별장 센간엔에 근대식 공업시설인 슈세이 칸을 설치, 근대화를 위한 부국강병 정책을 추진했다. 사이고 다카모리를 발탁한 것도 그였다. 그는 이 곳에 제철용 반사로, 기계공장, 유리 공장, 수력발전 시설, 도자기 공장 등 각종 근대 산업시설을 지었다. 근대화를 향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1865년 만들어진 슈세이 칸 유적들은 2015년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중앙정부와 독자적으로 13세부터 34세에 이르기까지 인재를 파견하여 문물을 익히려 한 그들의 자세에서 시의 적절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본다. 


사이고 다카모리의 동상


인재를 등용하는 안목이 필요하고, 판단이 서면 과감하게 실천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우리의 근대화 과정을 돌이켜 생각해본다. 못과 나무와 돌이 꾸며놓은 일본식 정원을  빗속에 둘러보느라 섬세한 관찰은 놓쳤지만 연둣빛 싱그러운 색상은 고왔다. 자연경관을 건축물 안으로 가져와 한 축을 형성하는 것. 이는 조선의 건축에서도 발견되는 요소이다. 창을 액자로 만들어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을 방 안으로 가져온  ON Site view 인  셈이다.


센칸엔 정원의 모습
슈세이칸 건물

 

시로야마 전망대에 오르니  시가지가 한눈에 보였다.  나무들이 공원의  역사를 말해주고, 공기는 청량함을 내뿜는다. 시로야마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사이고 다카모리가 최후를 맞이했던 동굴을 만나 볼 수 있다.

시로야마 관광호텔  천연 노천 온천에 갔다. 고급 온천으로 시설이 상당히 잘 갖춰졌다. 산 위에 자리 잡은 온천이라 가고시마 시가지를 바라보는 노천탕의 뷰가 멋지다. 사꾸라지마 화산이 연기를 내뿜는 모습을 온천하면서도 볼 수 있다.  


가고시마 미술관 전경


미술관에 전시 인 작모노톤의 작품


내려오는 길에 가고시마 미술관, 근대문화화관을 찾았다.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이 검은빛과 회색 위주다. 화산재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술관 전시를 둘러보고 커피를 마시는데 매시간 정각이 되면 창 밖 조형물 뚜껑이 열리고 인형들이 나와 춤을 추는 모습이 아기자기하다. 가고시마 관광버스들에 그려진 메이지 유신의 인물들. 가고시마 중앙역에 있는 ‘젊은 사쓰마의 군상’은 1864년 영국으로 2년간 선진문물을 배워와 사쓰마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한 17명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당시 막부의 해외여행 금지 조치를 어기고 독자적으로 사절단을 파견할 만큼 사쓰마는 독립심과 반 막부 의식, 경제력이 막강했다. 메이지 유신의 걸출한 영웅들의 고향이라는 점, 고대 일본의 건국신화 무대가 된 곳도 여기다.


 24시간 운영하는 배를 타고 20분 만에 도착하는 사꾸라지마 섬에 내리면 매캐한 유황 냄새가 풍겨온다.  2019.11월 가고시마 기상대에 따르면 3년 만에  사꾸라지마 화산이 5천m 이상 솟아올랐다고 한다.  한 해 130차례 이상 폭발적인 분화가 관측되었고  화구에서 약 1㎞ 이상 떨어진 곳까지 굳은 용암 조각이나 암석 파편날아가고  분출된 고온의 분출물이 사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현상도 있다.
 비지트센터 설명과 전시를 살펴보고 어린이들이 안전모자를 써야 하는 이유와 화산토에서 재배하는 커다란 무를 만날 수 있다. 용암해안공원, 100미터 길이의  족욕탕을 지나 섬  투어버스를 타고  15분 만에 373미터 높이에 위치한 유노히라 화산 전망대에 도착한다. 가고시마의 전경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1km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이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이 쌓아놓은 돌과  유황냄새가 살아있는 지오트립을 말해준다.


호텔에서 바라본 사꾸라지마 모습


사꾸라지마 유노히라전망대


사꾸라지마를 일주하면서 보이는 풍경은 화산재에 뒤덮인 풍경과 잿빛 마을, 용암 해변이다. 비 내리는 날에 느끼는 풍경은 더욱 음산하다. 반면, 제주 서부 협재해변 건너편 비양도는 기생화산으로 이루어진 검은 섬, 휴화산이다. 한림항에서 북서쪽 5km 지점에 있으며, 정상에 무인 등대가 있고, 2개의 분화구와 부아석, 베개용암 등이 해안가에 형성되었으며 펄낭이라 불리는 염습지가 있다. 드라마 봄날의 촬영지 보건소가 배에서 내리면 바로 보인다. 비양도는 사꾸라지마에 비해 포근하고 따뜻함이 묻어 나오는 이유는 뭘까?

공항으로 돌아와 그동안 발이 되어준 닛산 하이브리드차를 반환했다. 3일 내내 쉬지 않고 내린 비로 인해 아쉽기는 했지만,  엄마는 좋은 곳에서 온천을  충분히 해서 너무 좋았다고 하신다.  뉴스에서 보여준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오까야마 혹은 히로시마에 비하면 적은 듯 하지만  걱정이다. 가고시마 여행, 잘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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