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경희 Feb 06. 2020

가마쿠라-그 속에 내가 있었네

일본 소도시 25 - 에노덴과 슬램덩크의 성지


 2019년 8월, 나리타 공항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동경의 위성도시 요코하마로 향했다. 1시간 30분 정도 지나니 요코하마역에 도착. 평화기념관, 호빵맨박물관 부근 호텔에 묶었다. 창밖으로 반짝이는 미나토미라이 21의 테마파크를 바라보니 둥그런 관람차의 야경이 형형색색 아름답게 빛난다.     


 요코하마는 원래 해안에 자리 잡은 한적한 어촌이었다, 1858년 미·일 수호 통상조약에 따라 개항장이 되면서 도시기반이 형성되고, 1872년 도쿄와 철도 부설, 매립공사로 인해 광대한 공장부지를 갖게 되고 지금은 일본 최대의 항만이 되었다. 요코하마의 인구는 370만 정도,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크다. 도쿄와 함께 게이힌 지방의 축을 형성한 동일본 관문이자 아름다운 항구 도시이다.

    

요코하마 시가지

 

일본 최초의 막부인 가마쿠라 막부 시대부터 개발되기 시작한 요코하마. 매년 7월에 열리는  하나비 마쓰리 불꽃 축제는 규모도 크고 많은 사람이 몰리는 축제이다. 요코하마에 중국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어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어 있다. 파란 빛깔의 패루를 지나 여러 갈래 길게 늘어선 건물들, 중국식 물건 판매로 북적북적한다.

바닷가 쪽으로 내려오면 오랜 시간을 지켜온 나무들이 늘어선 야마시타 공원이 시원하다. 예쁘게 가꿔진 꽃밭이 아기자기하고, 항구를 드나드는 배들의 풍경이 활발하다. 해상무역을 오가던 배들의 화물 보관 창고를 개조한 아카렌카 창고는 붉은 벽돌로  재생 쇼핑단지. 주말이라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시끌시끌하고, 더러는 물건을 사거나 음료와 간식을 먹기도 한다. 창고 내 좁은 길에 사람들이 가득한데 2, 3층으로 연결된 작은 점포에 다양하고 예쁜 물건들이 늘어서 있다. 아카렌카 창고에서 점심을 먹고 여러 가지 색깔의 가죽을 이어 붙인 핸드백이 마음에 들어 하나 샀다.  

   

아카렌카 창고

 

요코하마역에서 기차를 타고 25분 정도 지나 도착한 곳은 후지사와 역. 공중에 매달린 쇼난 모노레일 6.6km를 타고 8개 역을 지나 도착하는 곳이 쇼난 에노시마 역. 높은 곳에 매달린 모노레일에서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멀리 바다도 보인다. 모노레일은 교통 체증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역 주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하는 공중 교통수단인 셈이다. 인천 월미도 모노레일이 있었건만 부실시공으로 운행이 멈춰져 있다. 관광객만을 위한 시설보다 주민의 편리함도 고려되어야 한다.


에노덴 따라 마을과 숲 사이로


근처 에노시마 역에 도착하니 푸른색의 전차 에노덴이 보인다. 에노덴은 바닷가 마을을 갈 수 있는 작은 역들을 이어주는 교외 전차, 4량의 작은 열차로 15개 마을 역에 정차한다. 650엔을 주고 1일 승차권 ‘노리 오리군 프리패스’를 끊으면 역마다 자유롭게 타고 내릴 수 있다. 맨 앞 기관사 뒤쪽에 서서  작고 깔끔한 마을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해변과 노을이 빛나는 바다와 나란히 달리기도 한다.  낭만 가득한 열차는  엔틱 한 이발소, 요리 도코 식당, 예쁜 카페를 따라 옛날 흑백 사진 속으로 들어간다.    


에노덴 닿을 듯 카키야 여관



에노덴이 지나는 바로 옆 카키야 여관 2층에 짐을 풀고, 창 밖을 내다보니 땡땡이 소리에 맞춰 거의 7분 간격이다. 카키야 여관은 고시고에 역 근처이며 맞은편에 마켓이 있어 쇼핑하기 좋다. 에노덴을 타고 먼저 가마쿠라 고코마에 역에서 내렸다.  건널목을 지나가는 에노덴,  슬램덩크 강백호가 서 있던 장면을 상상해 본다. 농구를 소재로 한 10대의 열정과 도전을 마음에 담은 만화, 여자 친구를 기다린 듯 중국에서 온 젊은 여행객이 붉은 운동복을 입고 스프링백을 메고 만화 속 주인공처럼 건널목에 서서 사진을 찍는다. 승강장에서 멀리 보이는 에노시마 섬과 은빛 바다 물결, 바다로 이어지는 건널목의 모습이 아름답다. 해변에 내려가니 서핑하는 사람들이 보드를 들고 바다로 뛰어든다.


시치리가하마 해변

 

 

에노덴을 타고 내린 곳은  이나무라가 시키 역.  후지 TV가  방영한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주인공들이 일했던 식당(해채사)을 찾아 나섰다. 케이크 만들기에 전념한 주인공이 해변 레스토랑에서 꽃 미남 삼 형제와 한 지붕에 살면서 이어가는 달콤한 러브스토리. 식당의 입구와 에노덴이 지나는 길목, 에노시마와 하나비 불꽃놀이 장면 등이 생생하다. 역에서 건널목을 건너 작고 예쁜 카페를 지나고,  보라색 수국 길을 따라 철로 오른쪽으로 난 작을 길을 걸으니 바로 드라마에 나왔던 그곳, 기억 속 거의 그대로 있다. 입구에는 드라마 관련 안내글이 쓰여 있고, ‘주의’라고 적힌 글은 티격태격하며 다투던 주인공의 사랑이 전해지는 듯하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촬영지 해채사

  

그리고 찾아간 곳은 바다 마을 다이어리 촬영지인 고쿠라 구. 오래된 일본식 2층 집에 살고 있는 ‘사치’, ‘요시노’, ‘치카’는 15년 전 집 떠난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남겨놓은 이복 여동생 ‘스즈’가 마음에 걸린다. 장례가 끝나고 열차에 오르는 세 자매를 배웅하는 스즈에게 조심스레 얘길 꺼낸다. “스즈, 우리랑 같이 살래? 넷이서…”

 둘째 요시노와 막내 스즈가 출근하고 등교하는 길에 에노덴을 기다리면서 사랑을 하면 뭐가 좋은지에 대한 답 ‘미치게 지겨운 일도 견디게 돼’라는 문구가 가슴에 꽂혔다.     

 네 자매는 일상 공간에서 각자의 스토리가 담긴 바닷가 ‘다이어리’를 만들어간다. 주어진 삶을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되 서로를 지탱하고 있다. 가족의 힘은  삶의 근력을 키워준다.


바닷가마을 다이어리와 시라스 잔멸치 덮밥


 일본은 다이카 개신 이후 나라/헤이안 시대를 거쳐 쇼군을 중심으로 한 막부 정치를 연다.  미나모토 요리토모에 의해 삼면으로 둘러싸인 가마쿠라에서 최초로 막부 정치가 시작되었다. 사무라이와 쇼군 등 무사를 중심으로 한 막부 정치는 1400년대 중반 이후 전국시대로 이어지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국 통일 및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에도(도쿄) 막부까지 이르게 된다. 에도시대 이후 가마쿠라는 농업과 어업으로 생활하다 1910년대 가마쿠라 철도 개통으로 관광업이 발달했지만, 문화재 보존 정책으로 인해 개발이 제한되어 지금 모습으로 정착되었다.     


 바다가 예쁜 유이가 하마 역에서 두 정거장을 더 달려 에노덴의 종착지, 가마쿠라 역에 내리면 가장 번화한 상점 거리, 가마쿠라 고마 치도리가 이어진다. 옆으로 상가를 지나 길게 늘어서 길의 끝 빨간 도리가 있는 곳이 쓰루가 오카 하치만구 신사이다. 1191년 가마쿠라  막부를 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에 의해 세워졌다. 대대로 가문의 수호신으로 참배되어 왔고 지금도 절기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올 만큼 꽤 규모가 크다. 무예의 신인 하치만을 기리는 신사로, 가마쿠라의 상징물이다. 은행잎 모양의 에마에 빼꼭하게 사연들이 적혀있다. 신사 외곽에는 연꽃과 대나무 숲이 있어 청량감을 준다.

     

소원을 적는 은행잎 모양의 에미


다음날 아침, 쇼난의 상징 에노시마로 가는 길에 가마쿠라의 명물 잔멸치 덮밥 '시라스 동’을 먹으니 이곳이 해안지역임이 확실해진다. 에노시마는 둘레 4km의 작은 섬으로 해발고도는 60m이다. 섬의 입구부터 푸른색의 청동  도리가 세워져 있는데 빛바랜 느낌이 특이하다. 신사 입구 붉은 도리를 지나면 만나는 비파 모양의 안내판은 음악의 신인 벤자이텐을 모신다는 의미이다. 예능의 여신이 있어 일본 연예인이 많이 찾는다는 에노시마 신사는 총 3곳.  변진 궁, 중진 궁, 오진 궁 3곳을 다 둘러보고, 1951년에 세워진 에노시마 연인의 전망 등대 시 캔들에서 바다와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역시 시선이 권력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전망대 아래 야자나무와 열대 나무, 1992년 사무엘 코킹이 영국식으로 만들어 놓은 정원과 이와야 해식동굴, 작은 골목길 등을 걸어 다녔다. 이곳의 명물 '타코 센베' 문어 과자도 먹고 사진도 찍고, 섬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유서 있는 동굴 여관  이와 모 토로에 들러 구경하는데, 온천 욕실은 현재 입욕 가능하다.  

도쿄에서 가깝지만 전혀 다른 느낌으로 인하여 많은 관광객의 사랑을 받는다는 가마쿠라!

역시 자기 색깔을 갖고 있어야 된다.  지역명소 혹은 사람도 마찬가지. 이번 가마쿠라 여행에서 진지하게 나의 색을 찾아본다.


에노시마와 연인 등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