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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경희 Jun 20. 2020

규슈-활화산과 색색의 온천수

일본 소도시 3 - 다자이후 텐만구와 매화 모찌

E. H. 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서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지나간 일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는 것보다 현재의 상황에 맞게 편집하고 의미를 다시 부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역사를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로 구분하듯 여행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있는 그대로의 지역이 있고,  여행자가 사유하고 해석하는 지역이 있다. 역사가에게 그 자신이 몸담은 사회가 중요하듯 여행자도  자신의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이 중요하다. 장소의 특성에 맞춰진 생활 경험의 축적에 따라 여행자의 감동과 느낌의 폭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여행을 다른 세기의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라고 했다. 어디서, 누구와 무슨 대화를 나누는가의 결정은 여행자의 몫이다.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과의 대화는 물론 함께 지내 온 자연과의 대화도 포함된다. 의미 있고 재미있는 대화를 끌어내기 위해서 바라보고, 느끼고자 하는 부분을 적당히 경계 지어야 한다. 부분을 살펴 요목화하고, 유사한 조합을 통해 전체를 유추해야 한다. 그러려면, 여행지에 대한 학습은 물론 특별한 소재와 상호작용, 구분 짓기 등의 자세가 필요하다. 부분이 모여 전체를 이루듯 특정 주제에서 시작하여 결국은 지역의 전체를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알아가는 즐거움이 여행의 매력이다. 설레임으로 여행을 준비하고, 하나하나 맞춰가듯  즐기며, 감동과 힐링으로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안목과 방향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바로 안목만큼 보인다는 것이다. 안목을 높이기 위한 방식은 개인마다 다르다. 사진과 디자인, 미술, 박물관 전시 관람을 자주 하다 보면 어느 사이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이 생긴다. 켜켜이 쌓여가는 것이 안목이다.


일본 규슈 구마모토 여행 홍보자료-ANA자료



나의 첫 해외여행은 80년대, 화산과 온천으로 알려진 일본 규슈지역이었다. 환태평양조산대에 속하는 일본의 화산과 지진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후, 학생들을 인솔하기도 하고, 일본 속의 한국문화 탐방도 다녀왔다. 배를 타고 가기도 했고, 비행기로 1시간 30분 만에 도착하기도 했다.  


비슷한 사기 헤어 스타일의  여성들,  흰 셔츠와 검은 바지의 거의 똑같은 복장을 한 직장인들, 문구류만 판매하는 고층 백화점 등의 도쿄에 비해, 규슈지역의 첫인상은 조용한 거리와 무채색 아파트, 커튼 내려진 창의 작은 집들, 검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 모자 쓰고 자전거 탄 학생들, 예쁜 도시락과 상추도 구워 먹던 사람들 등이 기억난다. 특히, 뾰쪽 구두를 금지할 만큼 곳곳에서 솟아나는 온천수와 그 물로 달걀을 삶고, 아직도 살아있는 화산에서 연기가 올라 매캐했던 그 기억들!


하카타 인형-후쿠오카 상공협회  자료



 옛날부터 한반도와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규슈 의 역사와 유적을 보존하고 있는 곳은 다자이후. 후쿠오카에서 약 18km 거리에 있는 인구 7만 명의 유서 깊은 고도,  7세기 후반부터 규슈 전역을 통치하던 이 곳의 대표적인 여행지는 유명한 학자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모신 다자이후 덴만구 신사이다.

      

다자 이후 역 앞 네거리에서 우측 200m쯤 되는 골목을 따라가면 양쪽에 하카타 인형을 비롯하여 기념품 가게와 맛집이 즐비하다. 하카타 인형은 석고로 만든 틀에 점토를 채워 넣고 구워낸 인형에 조개껍질을 섞어 만든 호분으로 칠하여 하얗고 광택이 살아난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되어 예술품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2차 대전 이후 미국에 알려지면서 일본 전통 인형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부채를 든 하얀 소녀상과 귀여운 한쌍의 인형을 장만했다. 세월 흘러 갔는데도 그 빛깔은 여전히 하얗고 예쁘다.


다자이후 명물 우메가에 찹쌀떡-후쿠오카현청
구마겐코가 설계 한 나무질감의 다자이후 스타벅스



이곳에서는 매화꽃 모양의 우메가에모찌가 특히 인기 있다. 쫄깃한 모찌 안에 달콤한 팥소를 넣은 간식이다. 이 떡을 먹으면 병을 물리치고 정신이 맑아진다고 해 많이들 먹는다. 매월 25일 쑥이 들어간 우메가에 모찌를 판매한다. 막 구워 낸 모찌를 한입 베어 먹는데 담백하게 맛있었다.


골목길 한쪽에 자리 잡은  스타벅스 커피숍이 눈에 확 띈다. 나무의 질감을 이용하여 독특하게  디자인한 이 건물은 일본 건축의 거장 구마 켄고가 1954년 설계한  곳이다. 나무를 쌓아 올린 구조의 건축물인데, 전통과 현대의 융합을 표현했다고 한다. 특이한 구조의  카페가 여행자의 시선을 끈다.  


다자이후 텐만구 도리이



안으로 쭉 들어가면 신사 입구에 세워진 도리이를 만나게 된다. 도리이는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전령사, 우리의 솟대와 유사하다. 소도에 세워진 솟대처럼 질병과 재앙이 없기를 기원하는 염원이 담겨있다. 도리가 석조물이라 오히려 근면함이 느껴진다.     


다자이후 텐만구 고신규 조각상
심우지를 지나는 3개의 붉은 다리



학자 스가와라노 미치자네가 죽은 지 16년 뒤, 919년에 텐만구 신사가 세워졌다. 국보를 전시하는 보물관과 스가와라노의 일생을 하카타 인형으로 전시하고 있는 기념관이 있다. 큼지막한 황소가 앉아있는 고신규 조각상이 반겨주었다. 스가와라노가 죽은 후 그의 시체를 옮기던 소가 이곳에서 꼼짝하지 않고 멈추자 그곳에 신사를 지었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 텐만구 신사 안에는 모두 11개의 고신규가 있다. 고신규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그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속설이 있어서 황소의 머리는 참배객들의 손길로 반질반질하게 빛이 난다.     


고신규 동상 앞, 연못 심우지 위에 놓은 다리는 붉은색인데, 세 번 굽어져 지나게 설계되어 있다. 세 번 나눠 세운 이 다리 위에서 돌아보는 연못과 신사, 도리이 풍경이 아름다워 텐만구 신사의 포토 존이다. 다리에서 바라보는  고목들 사이 보이는 정면이 본전이다.


본당으로 들어가는 2층 누문
에마에 가득 적힌 소원들



붉은 기둥의 2층 누문을 지나, 스가와라노를 모신 본전이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의 기술로 지었으나 현재의 본전은 1591년 세워졌으며,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스가와라노를 모신 신사로서 매년 입시철이 되면 합격을 기원하거나 취업을 바라는 참배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규슈 다자이후 텐만구 신사
다자이후 텐만구의 도비우메



 신사마다 참배하기 전에 손을 깨끗하게 씻는 히사쿠와 커다란 매화나무 도비우메가 있다. 일본 전 지역에서 가장 먼저 매화가 피어나며, 6천여 그루의 매화꽃이 피어난다. 좌천된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안타깝게 여긴 한 노인이 매화 가지에 떡을 꽂아 건네준 것이 변해 지금의 우메가에 모찌. 입구에서 맛나게 먹었던 매화모찌이다.

 





신사를 둘러보고 후원 쪽 식당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향한 곳은  백제의 마지막 흔적인 수성!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자 일본은 하카타 연안에 전진기지를 구축하고 백제 광복군을 금강 하구로 보냈으나 실패했다. 유민을 데리고 돌아와 신라의 침입에 대비하여 하카타 만 연안에 백제식 토성과 산성의 방어 요새를 쌓았는데 중간이 끊어진 수성이다 보니 처음에 얼른 알아보지 못했다. 백제 왕릉, 몽촌 토성 같은 미즈키라 부르는 수성이다. 미즈키 성터에는 주춧돌 몇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중화산으로 구성된 아소 산



구마모토로 이동하여 동부에 위치한 활화산 아소산을 찾아갔다. 이중 활화산으로 세계 최대급의 칼데라와 외륜산을 가졌다. 아소화산은 구마모토현의 상징적인 존재이다. 화산 활동이 평온한 시기에는 화구에 가까이 가서 견학할 수 있지만, 활동이 활발하거나 유독 가스가 발생할 경우는 화구 부근의 진입이 규제된다. 가까이 다가가니 목이 매케하고, 눈이 따가웠다. 바닷가에 이중화산 구조로 형성된 곳은 우리나라의 울릉도가 있다. 나리와 알봉 두 분지가  정상에서 고위평탄면을 이루어 약초 재배하는 집들이 있었다. 다설지역에 만들어진 우데기를 보러 올라가 농가에서 삶은 감자를 얻어먹은 기억이 났다.   


지질공원 쿠사센리



쿠사센리 지질명소는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연기를 내뿜는 나카다케를 배경으로, 소와 말이 풀을 고 있는 풍경에 절로 노래가 나온다. 이 지역 전통 민요를 듣는데 우리 아리랑처럼 애절하다. 바로 앞에는 아소화산의 역사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아소 화산박물관이 있다. 화산 형성 과정을 거대 디오라마로 체감할 수 있고, 아소 및 일본과 세계의 화산에 대한 귀중한 전시자료를 만날 수 있다.


벳부 지옥순례 중 바다 온천
벳부 지옥순례 중  진흙 온천



지옥순례, 원천수가 지상에 힘차게 분출하는 지옥을 한 바퀴 도는 온천 순례이다.  솟아 나오는 온천수를 '지옥'이라고 부르며, 지열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색채와 형태가 뛰어난  온천수를 둘러보는 지옥 순례는  벳부의 독특한 풍경을 둘러보는 인기 있는 이다.

 간나와 중심부에서 처음 만나는 하얀 연못을 뜻하는 시라이케는 청백색의 온천수이다. 정원 옆 열대어관에서, 희귀한 피라냐와 진귀한 수생 생물을 볼 수 있다. 오니야마 지옥은 증기가 요리에 이용되어 아궁이 지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커다란 빨간 도깨비를 지나, 온도에 따라 반응하는 다양한 색을 볼 수 있다. 가장 아름다운 우미 지옥에는 온천과 달걀 외 이나리 신사와 빨간색 도리이가 눈길을 끈다. 오니이시보즈 지옥은 끓어오르는 진흙과 그 안에서 생기는 진흙 거품이 색다르다.


벳부 지옥순례 중 피의 온천


시바세키 지역의 치노이케 지옥은 짙은 붉은색으로 피의 지옥으로 불리는 곳이다. 다쓰마키 지옥은 소용돌이 지옥으로  30~40분마다 솟아오르는 간헐천이 유명하다. 원천의 함유물질에 의해 파란색, 빨간색, 흰색 등 온천수 색이 다양한 벳부의 온천은 국가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지옥 온천 열을 이용하고 악어를 기르는 오니야마 지옥도 특이하고, 연고, 온천 계란, 입욕제품 기념품을  살 수 있다.


 지옥의 찜 푸딩은 전국 각지에서 찾는 벳부 지역의 맛이다. 우리도 그곳에서만 볼 수 있고, 맛볼 수 있는 것들의 상품화가 필요하다. 하긴 순천에 가면 갈대주와 짱순이 빵이 있긴 하다.


최근 코로나19 등으로 인하여 여행은 이제 먼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일본 여행에는 또 다른 변수가 더해진다. 한일 양국의 외교와 역사왜곡의 문제가 뿌리 깊다. 이웃나라가 먼 나라가 되어있다.

음~~ 온천 힐링하기에 좋은 규슈지역을 언제쯤 다시 가볼 수 있을까?

얼른 코로나 문제가 해결되고. 일본이 역사의 진실을 받아들이고, 서로 협력하고 배려하는  인간외교가 활발해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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