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경희 Jun 05. 2020

교토(1)-시인의 마음 따라

일본 소도시 21 - 옛 수도의 고즈넉함에 더해진 붉은빛  

일본의 옛 수도, 교토는 붉은빛이 채색된 빛바랜 풍경화이다. 세계 문화유산이 무려 17군데, 곳곳에서 유적지들이 여행자를 반긴다. 고즈넉한 건축물을 따라 헤이안 시대로 들어가는 역사 여행에 제격이다. 그러나 교토에 가면 꼭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중 윤동주와 정지용. 그들의 흔적이 담긴 교토 도시샤 대학과 가모강을 찾았다. 이름도, 언어도, 꿈 허락되지 않았던 일제 강점기 시대.  인들의 고뇌와 아픔을 고스란히 전해준 곳이 바로 교토이다.


 몇 년 전,  '동주'라는 영화를 봤다. 이준익 감독은 재미로 보는 영화가 아닌 목격해야 하는 영화라서 흑백 화면으로 구성했다고 한다. 그래서 시대를 넘어 더욱 몰입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  윤동주의 생가는 중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 용정에서  30분 정도 들어간 조용한 시골 마을이다. 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갑내기 사촌지간 동주와 몽규.  1941년 12월 서울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42년 3월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혼란스러운 나라를 떠나 교토의 기독교 계열 도시샤대학 영문과에 입학한다. 몽규는 더욱 독립운동에 매진하게 되고, 동주는 절망적인 순간에도 시를 쓰며 시대를 아파했다.


이준익 감독의 흑백영화 동주 포스터


 1943년 초여름,  방학을 맞아 송몽규와 함께 고향을 다녀오려다 갑자기 들이닥친 일본 시모가와 경찰에 체포당한다. 과거 중국 군관학교에 입교한 전력에다 조선인 유학생 대상으로 독립과 민족문화 수호를 선동했다는 이유이다. 교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이라는 죄명으로 윤동주와 송몽규는 1944년 3월과 4월 교토 지방재판소에서 징역 2년의 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감됐다.  송몽규는 면회 시 의문의 주사를 맞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생체실험 대상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1945년 2월, 저항의 시와 독립운동에 젊은을 바친 두 청춘은 27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그가  남긴 시의 저력은 시대를 넘어섰다.

 

윤동주 시인의 사진과 '서시'가 담긴 원고지
시인이 거닐었던 가모가와 둑길


윤동주의 고뇌를 함께 했던  도시샤 대학은 크지 않았다. 강의동 건물 옆에 세워진 윤동주 시비에는 유작, ‘서시’가 새겨져 있었다. 고개 숙여 묵념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그의 고해성사.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고,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다짐했던 터이다.    


도시샤 대학 정지용의 '압천' 시비


서너 발치 옆에 윤동주가 존경했던 정지용 시비가 서 있다. 1923년부터 1929년까지 윤동주보다 20년 앞서 이 대학 영문과에서 공부한 선배 시인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로 시작하는 향수의 작가이다. 시비에는 1924년 쓴 ‘압천’이란 시가 새겨져 있다. 압천은  근처에 있는 가모강을 말한다. 그는 이 강을 거닐며 충북 옥천의 고향을 그리워했던 듯하다

마지막 연  ‘수박 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 바람, 오랑쥬 껍질 씹는 젊은 나그네의 시름’ 은 고향의 풍경과 자신의 처지를 대비해 표현한 듯하다.

가모강 둑에 잠시 앉아보니, 그들의 그리움이  전해지는 듯하다.  펜의 힘은 오랜 세월을 뛰어넘는다. 지금도 그렇다.  두 시인의 먹먹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시인의 고뇌와 성찰이 물씬  느껴진다. 심지 굳고 소박한 시인들에게 편안함을 안겨주었을 가모강은 여전했다.

     

정지용과 시 '향수'

     

압천, 가모강에서 만날 또 다른 사람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그녀가  스케치하러 다니던 곳이다.  첫사랑을 잃고 상심해 있을 때 그녀의 그림이 되었고 위로가 되었던 곳이다. 애달픈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강둑이다. 가부키 춤의 원조인 이즈모의 오쿠니 동상을 뒤로하고  잔잔히 흐르는 강물을 보며 상념에 젖었을 화가를 떠올려본다.

2019년 덕수궁 현대 미술관에서 만난 '신여성이 오다'의 표지 그림 나혜석의 삽화가 기억났다. 시대에 저항했고 여성을 사람으로 바라보기를 원했던 나혜석, 그녀의 우울한 자화상에서 오늘날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어떨까? 반문했다.

 

나혜석의 삽화와  자화상
가모강 풍경과 나혜석 사진


일본에서는  794년, 교토로 천도하여 헤이안 시대를 열었다. 400여 년 동안  '가나' 문자와 '와카' 음악 등 일본 고유문화가 발달했다. 12세기 천황의 공인을 받은 쇼군을 중심으로 무사들이 권력을 잡는 가마쿠라 막부시대가 열렸다. 1467년 경 오다 노부나가에 이어 약 100년 동안 다이묘들이 군웅 할거하는 혼란의 전국시대가 이어졌다. 의리·충성·용맹이라는 이상과 무예를 가장 존중하는 사무라이 계급의 등장은 할복자살과 검에 대한 숭배로 나타났다. 다도와 꽃꽂이, 수묵화 전성기를 이루고, 쇼군의 별장으로 교토에 금각사, 은각사가 세워진다. 두 개의 층에 금박이 붙여진 선종사찰 금각사는 교토의 대표 문화재이다. 또한 쇼군과 사무라이들이 누렸던 권력의 유산이다. 음~ 호수에 비친 금각사의 모습은 단아하면서도 호방하다. 무사 계급의 권력, 주변국의 영향, 선종추구의 문화가 금각사에서 절제된 화려함으로 보인다. 해질 무렵 다시 와야겠다.

 예나 지금이나 건축물에는 시간의 통합과 공간의 협력 위에 그곳만의 독자성을 추구하는 듯하다.


교토 대표 문화재 금각사의 모습


지난해 1월, 혼다 핏을 렌트, 비싼 통행료를 감당하고 교토에 도착하니 벌써 오후 네시, 이번이 세 번째 여행이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청수사였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마감 시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주차비를 50% 할인해 주었다. 교통비가 몹시 비싼 나라이니 얼른 차를 세우고, 마츠바라 거리로 들어서니 사람들이 물결을 이루고 있다. 어여쁜 부채 등 아기자기한 상품들 손짓을 패스하고 청수사로 바로 고고.  기모노 차림의 여행객들이 붉은 빛깔의 건물을 배경으로 인생 샷을 찍고 있다.        

        

청수사 인왕문과 삼층탑이 보이는 입구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계단을 올라가니 화려하게 빛나는 붉은빛이 길을 내준다. 석등롱과 고구려 개라 불리던 코마이누를 지나 지붕이 솟아오른 건물 따라 들어가면 인왕문이다. 선명한 주홍빛 도색이 화려하여 빨간문이라고도 불린다. 15 세기말에 재건된 무로마치 시대 후기 건축물에 안치된 인왕상은 3m 65cm, 가마쿠라 시대 가장 큰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상운청룡상의 조각은 살아있는 듯 생생하다. 특이하게도 용 두 마리가 화염을 토하며, 상하로 배치되어 있는데, 눈매가  마치 노려보는 듯하다. 청수사 종루를 지나니 선명한 붉은빛으로 칠해진 서문과 삼층탑이 둘레둘레 모여있다. 서문은 노송의 껍질을 지붕에 얹고 붉은빛으로 채색한 기둥에 금박을 입힌 모모야마 양식의 화려함을 보여준다. 삼층탑 역시 모모야마 양식으로 847년 건립되었다. 음~~ 사치스러운 건축물이다.              


청수사에서 바라본 교토 시가지
청수사 삼층탑


삼층탑과 서문 사이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교토의 전경을 눈에 담고 있다. 교토의 시가지는 차분히 정리된 브라운카페 같다. 둥근 첨탑 교토 타워에 눈이 머문다. 이에 대비되는 삼층탑과 종루의 붉은빛은 오후의 햇빛을 받아 더욱  화려하다. 시시각각 빛에 따라 달라지는 색상을 고려한 건물들임에 틀림없다. 해가 저물자 붉은빛은 차분해지고, 점차 녹색빛을 띠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청수사 본당의 모습 - 청수사 가이드 자료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으나 지붕 수리 공사로 인해 입장하지 못했다.

778년에 아내의 산후조리를 위하여 사슴을 잡으러 나갔다 귀가 도중, 엔진이라는 스님이 폭포 아래에서 독경을 하는 것을 보고 살생을 참회하는 뜻으로 이 절을 세웠다고 한다. 사찰 건물 전체에 못이 하나도 쓰이지 않았다고 하여 유명하다. 13m 높이 기둥 위에 세워진 본당과 전망대에서 아름다운 풍경도 감상할 수 있다. 일본 국보로 지정된 본당에는 십일면천수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건물들은 1633년에 재건된 것들이다.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오토와 폭포
인연을 찾아준다는 지주신사



 본당 마당에 있는 오토와 폭포는 복이 각각 장수, 학업, 사랑 세 갈래로 나뉘어 떨어지며.  기둥에 달려 있는 컵으로 물을 마실 수 있다. 뒤편에는 사랑과 중매의 신을 모시는 지슈 신사가 있다. 신사 앞 18m 떨어진 곳에 돌이 2개 있는데, 눈을 감고 한쪽 돌에서 다른 쪽 돌을 찾으면 사랑을 찾는다고 한다. 스토리 만들기 참 좋아한다.        



교토 가이세키 요라


 저녁에는 교토 가이세키! 보기에도 섬세하고 아름다운 교토 가이세키는 계절에 따라 담는 방법, 고급스러운 양념 등 눈으로 맛보고 입으로 즐기는 요리이다. 두부 요리 유도후 다시마와 가쓰오부시의 육수로 익힌 부드러운 음식이다.  저녁 식사 후 비스타 프레미오 교토 호텔로 돌아와 근처 쇼핑가를 둘러봤다.   


 다음날, 후시미이나리 신사를 찾아 나섰다. 일요일 아침인데도 교통 체증. 걸어서 입구에 도착하니 인산인해. 독특한 신사의 생김새가 눈길을 끌어서인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게이샤의 추억에서 어린 소녀가 뛰어가던 모습을 흉내 내 보고, 소원의 종을 치기도 하며, 여우 모양의 소원판 에마 만져봤다.     

    

후시미이나리 입구 도리이


이샤의 추억 1997년에 출간된 아서 골든의 소설이다. 2차 대전 이전 교토를 무대로, 신비한 눈동자의 소녀에서 최고의 게이샤로 살아가는 한 여자의 인생을 그린 이야기이다.      

신비로운 푸른 회색빛 눈동자를 지닌 소녀 치요는 가난 때문에 언니와 함께 교토로 팔려가게 된다. 혹독한 교육을 받고 최고의 게이샤 화려하게 데뷔한다. 게이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가질 순 있어도 사랑만큼은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애틋함을 담은 영화이다. 마이코와 게이샤를 종종 볼 수 있는 전통거리 기온과 후시미이나리가 바로 그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이다.


붉은 도리를 달리는 치요-영화 장면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종을 울리고


일본 각지 3만 개의 이나리신사 총 본궁으로 711년에 창건된 교토의 후시미이나리 신사. 장사 번창을 바라는 이들의 기도와 감사의 뜻으로 봉납한 약 1만 개의 토리이가 있다. 풍요의 신, 안전과 연예 성사 등 서민 중심 신앙이 발전해 온 곳이다. 해발 233m에 있는 이치노봉우리를 비롯해 사당, 본사, 부속 신사를  돌아보는 "오야마 순례"는 약 4km에 이른다.  붉은 열주들이 연속된 길을 따라 쭉 올라가는데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다. 연초 복을 빌러 오는 사람들을 보며,   바퀴 돌아 내려오니 뿌듯했다.


4km 이어진 후시미이나리의 붉은 도리
실과 실패를 물고 있는 여우


후시미이나리신사는 여우가 신의 심부름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신사 근처에 여우 얼굴을 한 전병 가게도 있다.  신사의 여우상은 입에 실과 실패를 물고 있다. 양잠신을 모시기 위해서 그렇다.  본전은 1499년에 재건한 것으로 중요문화재. 근처 한 쌍의 석등에 둘러싸인 "오모카루돌(おもかる石)"이 있어, 돌을 들어 올렸을 때 가볍게 느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여우 신사답게 내려오는 내내 곳곳에 여우들이 세워져 있다.


          

교토 규카츠 요리


동서 거리 390m의 작은 길 양 옆으로 많은 가게가 모인 니시키 시장은 교토의 부엌. 음식 재료를 구하러 오는 현지인들로 붐빈다. 최근 관광객이 많이 늘어나 걸어 다니며 먹는 간식을 파는 가게가 늘고 있다.  가리비구이와 어묵, 다코야끼,  찹쌀떡과 단팥죽도 일품이다. 시장에서 돈가스를 사 먹었는데 바삭하고 담백했다. 교토 돈가스는 지금도 생각난다.

아들 주려고  나라스케와 장어 계란말이 우마끼를 조금 샀다.

시장은  그 도시의 살아있는 심장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현지의 삶이 응축된 현장이다. 그래서 어느 도시라도 여행 중에 꼭 찾는다. 시장의 먹거리와 볼거리 또한 여행자에게 매력이다.  

교토 2탄  아마노하시다테와 후네야이네로 고고싱.


작가의 이전글 나라와 교토-호류지와 고류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