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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경희 May 24. 2020

나라와 교토-호류지와 고류지

일본 소도시 22 - 백제 관음상과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친근함

여행,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을 만나고, 교감하는 것이다. 여행자와 마주치는 풍경, 자연, 역사, 문화, 현지인과의 상호작용이다. 똑같은 풍경을 보고도 사람마다 느낌이 다른 것은 상호작용의 방향이나 대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공간과 시간과 인간의 관계를 살피는 일이 나의 여행법이다. 다름을 만나는 수평의 축과 시기마다 다름으로 변화하는 수직의 축을 맞춰보는 즐거움도 여행이 주는 묘미이다. 또한, 일상의 반복에서 잊고 지내던 나를 돌아보는 기회이기도 하고 작은 것 하나의 발견에서 커다란 통찰을 배우기도 한다. 그래서 새로운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설레이고 기대된다.


여행이 의미있고, 재미있으려면 상호작용 영역을 미리 정하고, 그 곳의 역사와 지리에 관한 사전 학습이 필요하다. 현지에서는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고대 한일관계와 문화교류 관련 학습이 가장 필요한 준비물이었다. 고대 일본 속 우리 문화 찾기는 나라에서 시작하여 오사카, 교토로 이어지는 경로였다. 일본의 고대 역사 속에서 우리의 흔적을 발견, 근현대 한일 관계의 왜곡을 깨고 진실을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예전에, 인천시립박물관 자원봉사 활동 중 유물해설사를 한 적이 있다. 두 달 동안 토요일 오후 4시간씩 기본교육을 이수하고, 다시 그만큼 심화교육을 받게 된다. 가장 재미있었던  프로그램이 한국의 건축과 공간 문화의 이해였다. 지형과 생활의 결합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수 십년 연구한 결과를 배우는 과정이었다. 이후 전문가들이 이끌어가는 답사도 다녀왔다. 그리고 유물해설사 자격을 받아 순번으로 해설 활동도 했었다. 인천의 역사와 유물을 설명하고 안내하는 일을 했는데, 남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학습되는 과정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안목이 높아지고 방향을 가름해보는 박물관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참 좋았다.


동대사와 함께 나라현 양대 사찰에 속하는 호류지(법륭사)를 찾았다. 호류지는 쇼토쿠 태자가 607년에 창건한 사원으로, 1,400년의 역사를 가진 곳이다. 1993년에 일본 최초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90종, 2,300여 점의 국보급, 중요 문화재급 유물들과 미술품들이 있어 일본 국보의 1/10이 호류지에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호류지 금당 벽화


호류지는 오층탑을 기준으로 크게 서원과 동원으로 나누어진 배치이다. 지붕이 있는 회랑으로 둘러싸인 서원에는 중문, 본당, 오층탑 등 아스카 시기에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사찰과 달리 기둥들을 받치고 있는 초석이 우리나라처럼 자연돌을 쓰고 있어서 친숙하다. 중문에는 호탕한 금강역사가 출입문 양옆에 서 있고, 본당에는 아스카 시대부터 보존된 진귀한 불상도 있다.    

금당 벽화는 1949년 내부 공사 때 불타고 비천상벽화 두 조각과 불에 탄 원화는 수장고에 보관 중이다. 현재 벽화는 1968년 일본의 최고 화가 14명이 1년 작업 끝에 새로 그린 것이다. 고구려의 담징이 그렸다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지고, 백제의 화공들이 그렸다는 추측도 있지만, 아직은 정확하지 않다. 다만, 다카마츠고분 벽화에 보이는 고구려 채색법이나 묘법,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사방불로 미루어 볼 때 우리의 참여 가능성은 매우 높다.        


호류지 금당과 오층탑
호류지 팔각구조건물 몽전
호류지 범종각 기능 건물



중앙에는 쇼토쿠 태자가 모셔져 있는 8각형의 몽전과 늘씬하게 솟은 범종각이 있다. 1999년 새로 지은 방대한 예술 소장품 전시공간이 대보장원이다. 원래 금당 벽화와 함께 모셨던 백제관음상을 대보장원 전시실로 옮겨와 유리 상자에 넣은 채 여러 작품 속에 섞어 넣어 백제 걸작을 홀대하고 있다는 시선이 많다.     


백제관음상은 제27대 백제 위덕왕이 구세관음상과 함께 백제에서 제작, 일본으로 보낸 높이 2.8m의 목조 입상이다. 이 백제관음상은 방충제의 원료가 되며 좀이 잘 슬지 않는 녹나무로 만들어져 현재까지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다. 수려한 미소와 섬세한 옷 주름, 우아한 자태로 인하여 호류사뿐 아니라 일본 고대 유물 중에서도 손꼽히는 걸작이다. 이 아름다운 불상은 아스카 문화 형성에 미친 백제의 영향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로 백제와 일본의 교류를 확인하는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호류지 백제관음상-호류지 자료



길게 늘어선 백제관음상의 우아함과 순박함, 오묘한 해탈의 표정, 살포시 머금은 미소를  바라보는데 서산마애삼존불이 떠올랐다. 백제 마애불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매력적인 미소이다. 자연스럽게 손에 쥐고 있던 정병이나 손가락의 섬세함, 머리 뒤에 두른 화려한 빛, 부드러운 옷 주름과 8등신의 날씬한 자태가 시선을 끌었다. 왜곡을 만들어 주장해도 아무도 부정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작품 자체이다. 

    

호류지 백제관음상 미소-호류지 자료



교토 오무로 닌나지역에서 1칸짜리 란덴선 미니열차를 타고 고류지 역에 닿으면 정문이 눈에 들어온다. 일본 국보 1호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보관된 곳이다. 입장표를 사는데 비용이 지금은 800엔. 꽤 비싸다. 고류지는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다. 일본 고대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쇼토쿠 태자의 후원으로 지어진 절이다. 고구려와 백제 승려로부터 불교를 배웠던 쇼토쿠 태자도 왕권 강화 과정에서 불교를 활용했다. 관료였던 하타 씨는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인으로 교토 지역 개발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렇게 고대 한일교류는 나라와 교토지역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일본 국보1호가 보관된 교토 고류지



검박한 느낌의 고류지를 찾은 사람들을 이끄는 곳은 신령보전이다. 입구에서부터 위엄을 풍기는 이 건물 안에 일본 국보 1호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모셔져 있다. 입구로 들어가면 노년의 관리인이 팜플렛에 붉은 도장을 찍어준다. ㄷ 모양으로 이루어진 동선을 따라 국보 20점과 중요 문화재 48점이 가지런히 나열되어 있다. 좌,우 관리인이 상주하고 있으며,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불상과 보살상, 젊은 쇼토쿠 태자상, 고류지를 세운 진하승 부부의 상이 좌우로 정렬한 가운데, 높은 단 위에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자리잡고 있다. 내부는 조명을 매우 어둡게 유지하고 있어서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양옆에 초와 커다란 백합꽃이 공간의 주인공을 알려준다. 높이 123.5cm 고류지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 석가모니의 고뇌하는 명상자세에서 기원하며, 중생의 구제를 기다리는 미륵보살이다. 실제로 바라보니 고뇌하는 모습을 묘사한 듯 생각에 잠겨있다. 매끈하고 날렵한 몸매가 인상적이었다. 의자에 앉아 불상을 바라보니, 이곳으로 멀리 이동해 온 사람들의 땀과 수고가 한 편의 상상화로 그려졌다.  실존철학자 독일의 야스퍼스가 이 불상을 찬찬히 살펴본 뒤에 크게 감동한 후 남김 말이다. 한 나머지 절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불상이야말로 고대 그리스나 고대 로마의 그 어떤 조각 예술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뛰어난, 감히 인간이 만들 수 없는 살아있는 예술미의 극치이다."    


고류지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



일본에서 나지 않는 적송으로 제작된 점과 우리나라 국보 83호이자 삼국시대 제작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흡사한 모습을 감안하여, 학자들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져 바다 건너 교토 고류지에 자리잡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적송은 일명 춘양목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경상북도 봉화에서만 나는 나무로, 한국 목조 불상의 특징인 것이다.    


고류지 연혁 일부 지워진 비석



고류지 마당에 자리잡은 연혁을 새긴 비석, 둘째 줄 문단 절반을 통째로 드러낸 흔적이 남아 있다. 누군가 화강암 비석을 파버린 것이다. 지워버린 부분은 신라에서 도래한으로 추측되는 문구가 아닐까 많은 이들이 추정하고 있다. 지운다고 지워지는 것이 역사가 아니다. 감추는 역사는 언젠가 빳빳하게 고개 들어 진실을 내보이게 마련이다. 이것이 역사의 법칙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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