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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경희 May 22. 2020

나라 아스카-역사를 품은 땅

일본 소도시 23 -고대 한일 역사교류의 흔적을  찾아

90년 대 초반, 일본 속 우리 문화를 이해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고대  일본 속 한국 문화 찾기 답사였다. 한국과 일본의 고대 역사교류를 되짚어 봄으로써 동아시아 역사 정립이 필요한 시기였다.  처음 도착한 곳은 경주와 부여 같은 느낌이 드는 나라현 아스카, 야마토 지역이었다.  고대 일본의 건축을 둘러보는 과정 중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한옥 건축의 대가 신영훈 선생님이 함께 한다는 것이었다.  


8세기 초까지 일본의 수도가 있었던 나라현은 현재 인구 134만 정도이다. 도다이지를 비롯 세계 문화유산과 국보, 중요 문화재 1,324건을 보유한 일본 고대사회 정치·문화의 중심지이다. ' 나라'라는 지명도 국가의 순 우리말, 나라는 백제인의 고향으로 불리며 백제촌이 있던 곳이다. 백제 관련 지명이 여기저기 많았다.


나라현 만엽문화관 입구



만엽문화관을 제일 먼저 찾았다. 일본 고대 문화를 담고 있는 만요슈는 7세기부터 8세기 중엽까지 130년 간 작품을 수록한 일본 최초의  노래집이다. 만요슈가 만들어진 당시에 문자가 없었고, 독특한 표기법을 사용했는데 이것이 가나 문자의 시초가 된다.  만요슈 중 한 부분을 보여주는 인형 전시와 각종 전시물,  공연을 보고  백제의 노래 정읍사를 떠올렸다. 행상의 아내가 높은 산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며 염려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 망부석이 배경 설화로, 사모곡을  담은 우리의 고대가요가 떠올랐다.


백제에서 보낸 이소노카미 신궁의 칠지도




나라현 덴리시 이소노카미신궁에 보관되어 있는 칠지도를 보러 갔다. 백제 왕이 왜왕에게 하사한 것을 헌상한 것이라고 대립하고 있는 유물이다. 철제 칼이며, 길이 74.9 cm로  1953년 일본의 국보 고고자료 제15호로 지정되었다.

도신에는 한반도 금관문화의 금상감 기법으로 황금 문자 62자를 수놓은, 당시 최고의 금속 공예기술이 들어간 보검이다. 칼의 몸 좌우로 가지 모양의 칼이 각 3개씩 나와 모두 7개의 칼날을 이루어 칠지도라고 부른다. 칼자루에서 칼날까지 신성한 나무 형상으로,  7갈래 가지는 북두칠성으로, 군주의 통치권을 의미한다고 했다. 제사와 통치를 모두 주관하는 군주의 증표로 당시 정교하게 제작한 보검을 선물로 보내는 일이 많았는데, 대국의 통치자가 작은 나라에 하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1892년 도쿄 제국대 호시노 히사시 교수가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칠지도라고 주장, 이를 근거로 백제가 항복의 징표로  한반도를 되찾아야 한다는 정한론으로 발전시켜 국권 강탈의 명분이 된 유물이다. 흠~~ 아전인수이며 견강부회, 얼마나 억지인가?      



칠지도를 보관하고 있는 이소노카미신궁



이소노카미신궁 남쪽 길가에 위치한 거대한 전방후원분을 둘러봤다. 앞쪽은 사각형이고 뒤쪽은 원형을 이뤄 위에서 내려다보면 열쇠 구멍처럼 생긴 형태로 242미터, 규모도 크다. 4세기 중반부터  조성된  석실묘는 가야의 묘제와 흡사하여 여기에도 한반도의 영향이 드러난다. 전방후원분은 크기와 부장품으로 봐서 권력자의 무덤으로 보인다.  근처에 10기의 전방후원분이 모여 있다.


 바둑판처럼 잘 정리된 들판을 지나, 소가 강변에 위치한 백제사를 찾았다. 마을 이름, 역 이름, 도로이름, 절 이름도 백제이다. 입구에 백제사라는 안내 간판이 보이고 3층 목탑이 보인다. 백제라는 이름에 반가움이 앞서 서둘러 들어갔다. 오래된 사찰은 쇠락한 역사를 담고 있는 듯 소박하다.

     

  

이시부다이(석무대) 고분



나라현 야마토 분지 남부 일대 한적한 마을 한쪽에 돌무덤이 떡하니 서있다. 길이 7.5미터, 폭 3미터, 높이 7.7미터, 무게 72톤이나 되는 거대한 돌무덤이다. 일본 최대 횡혈식 석실로 6세기의 권력자 백제계 도래인 소가노우마코의 묘라고 하는 이시부다이 (석무대)고분이다. 무덤보다 권력자의 통치와 전파된 우리 문화를 느껴야 했으므로 고급 답사의 자세가 필요했다. 이곳을 2006년 6월 초에도 찾았다. 석무대를 바라보는 내내 첫 답사를 떠올렸다. 입구에서 사 먹은 녹차 아이스크림의 달콤함도 기억났다.


아스카사 가람배치 복원도



아스카 궁터로 향했다. 고구려와 백제의 문물을 받아들여 불교를 발전시켰던 아스카 왕국의 터에는 석제 기단과 초석들만이 동그랗게 놓여 있다. 세월은 무상하게 흘러 옛 자취는 흔적만 남았다. 맞은편 20m 도로를 사이에 두고 백제계 도래인 소가노 우마코와 조카 쇼토쿠 태자, 전쟁에서 승리하여 세운 절이 아스카사이다. 596년 창건된 일본 최초의 절이 아스카촌 들판에 있는 바로 이 아스카사. 금당만 있는 소박한 절이나, 금당 안 본존불은 압도적이다.  아스카 대불로 불리는 청동 좌불의 앉은키는 무려 2.75m. 사각 턱의 길쭉한 얼굴과 손이 강조되어 실제보다 더 커 보이는 불상이다. 청동불에 황금으로 입힌 금박이 30kg(750냥)에 달한다고 한다.


일본 최초의 절 아스카사 입구
아스카사의  대불



일본 불교 건축의 첫 장을 연 백제계 후손 도리가 불상을  만들었다. 아스카사를 짓기 위해 백제에서 건축, 토목, 기와 기술자는 물론이고 화공까지 십여 명의 기술자가 파견되었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 한다. 아스카사는 주춧돌을 사용한 최초의 기와집으로, 익숙한 연꽃 무늬가 보인다. 일본 불교의 공식 탄생을 알리는 기념비적 건물이자 당시로서는 최첨단 건물이었다.


다카마츠 고분의 벽화



 한적한 전원 속에 들어서 있는 다카마츠 고분을 찾았다. 직경 18미터, 높이 5미터로 소규모이지만, 백호 등 사신이나 여자 군상, 성좌가 화려하게 그려진 벽화로 유명해진 곳이다. 섬세한 기법으로 장식된 고구려의 수산리 고분벽화와 다카마츠 고분 부인도는 너무도 닮았다. 고구려 여인들의 복장과 똑같은 고분의 그림은 시대를 넘어 우아하고 아름답게 디자인되어 있다. 모두 비슷한 크기에 비슷한 차림과 얼굴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유사한 신분의 사람들로 보이는 아스카 시대의 벽화이다.    


나라현  도다이지



도다이지는 745년에  창건한 절로,  높이 47.5m나 되는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이다.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남문을 들어서면 좌우 동서에 탑이 있고 길게 이어진 회랑이 대불전을 감싸고 있다.

대불전은 정면 11칸 측면 7칸의 매우 큰 불당이다. 내부에 기둥이 없으며 상부에 합각지붕이 이층 구조로 되어있다. 중앙에 청동으로 만든 비로자나불이 서 있다. 16m 크기의 이 불상은 고대 세계에서 제작된 가장 큰 청동 주물이라 다. 그 아래 청동 연화 좌대가 있다. 거대한 불상이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너무 크다. 믿음은 크기보다 신실한 자세가 중요하다.

가람배치를 둘러보던 중 법화당이 인상적이었다. 삼각형의 목재를 정교하게 정자(井字) 형으로 누목식 귀틀집으로 만들었는데 문득 고구려 지역의 창고 부경과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라 도다이지 주변 사슴 공원



절 주위에 사슴공원이 있어 한가하게 공원을 거닐었다. 넓은 잔디밭에 약 1,000여 마리의 사슴이 노닐고 있어 특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사슴센베 과자를 사슴에게 먹이는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슬픈 눈동자를 가진 사슴 사이를 거닐다 보니 동물을 가까이서 만지고 볼 수 있는 이 공원이 우리 어린이들에게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현 야마토 지역과 아스카 고대 문화 지역을 답사하면서 공주와 부여를 걷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고대 한일 교류의 흔적은 느낌에 답이 있다. 그냥 우리와 너무 닮았다는 이 느낌에서 오늘날 한일 관계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갈등을 해결하는 최고의 단계는 인정하기 아닌가?  이제  금당 벽화를 만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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