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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경희 Apr 23. 2020

마쓰야마-도고온천 봇짱 열차

일본 소도시 6 - 3,000년 역사 도고 온천에 피로를 풀고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나의 여행은 잠시 멈춤이다. 코로나19의 무서운 전파력을 지켜보며 그 후유증이 어찌 될까 걱정이다. 의료진의 어려움은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받았지만, 여전히 고된 상황이다. 일상을 제한하는 거리두기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경제와 고용, 각종 기업 및 소상공인들의 충격이 크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교육현장은 온라인 원격교육을 진행하고 있어, 교실은 텅 비고, 학교 운동장은 적막하기만 하다. 코로나가 뒤집어 놓은 세상이다.

       

코로나 중앙 방역 대책 본부 홈페이지 - 2020.04.23



모 방송사의 경연 프로그램 미스터 트롯을 지켜보면서,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버티는 힘을 얻었다. 멤버들의 혼신을 다하는 경연 덕분에 위로받았다. 특히, 이야기하듯 조목조목 들려주는 임영웅의 노래는 감성을 자극하여 때로는 눈물짓고, 때로는 흥겨웠다. 진심을 다해  노래하고, 춤추는 7인의 트롯맨들이 참으로 대견하고 고맙다. 지금은 사랑의 콜센터를 운영하면서 신청곡을 들려주는데, 힐링 노래를 들려줌으로써 모두의 사연을 유쾌하게 풀어간다. 각양각색의 빛깔을 보여준 덕분인지 트롯 장르가 전 세대에 걸쳐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사랑의 콜센터, 목요일 밤 10시가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사랑의 콜센터 3회-tv조선 화면 캡쳐



도고온천으로 유명한 마쓰야마, 일본의 셰익스피어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의 배경지로 알려지면서 연간 200만이 찾는 곳이다. 근현대 일본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 나쓰메 소세키의 100년 전 작품 도련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냥 우리 주변에 쉽게 만날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이다.    

‘한 것은 한 것이고 안 한 것은 분명히 안 한 것이다’의 철학을 갖춘 도쿄 출신의 초임교사 주인공이 장난이 심한 학생들과 선생님들 사이에서 겪는 에피소드를 담은 동화 같은 소설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학교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주인공과 학생의 갈등, 교사와 교사의 갈등이 내재되어있다.


소설 도련님과 나쓰메 소세키의 사진


숙직하는 날 이불속에 메뚜기 세례를 받는다. 2층에서 의도적으로 쿵쾅거리는 학생들의 장난을 파헤치고 합당한 처벌을 요구하기도 한다. 가짜 물건을 사 주지 않아 하숙집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주인공이 등장하면, 쉬쉬~ 덮어버린 일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자신이 본 것으로만 판단 내리고 확신하는 고지식한 주인공은 정의롭지 않은 세상에 화가 난다. 불만을 표시하고,  화내고 싸우면서 주인공과 세상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솔직한 주인공, 도련님은 그래서 외톨이다. 동료 교사 산미치광이와 함께 빨간 셔츠 교감의 부도덕한 사건을 파헤치다가 교묘하게 당하고, 오히려 학교에서 쫓겨 나오듯 사표를 던지고 나온다. 마쓰야마를 떠나 도쿄로, 유모 기요를 찾아가면서 소설은 끝난다.


도고온천 상점가의 도련님 등장인물 조형물



잘못된 일은 바로잡아야 하는데 오히려 주인공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버리는 외로운 싸움은 백 년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우리들의 이야기다. 삶의 관계 속에 정직한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 산미치광이에게 얻어먹은 팥빙수 값 1전 5리를 돌려주는 부분은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 인용되기도 했다. 두 마리의 학과 함께 나쓰메 소세키의 모습은 1984년에서 2004년까지 1천 엔권 지폐에 사용되었다가 이후 노구치 히데요와 후지산 벚꽃으로 바뀌었다.  


나쓰메 소세키가 인쇄 1,000 앤 지폐-아사히신문 보도자료



‘도련님’은 일본어로 봇쨩이다. 마쓰야마는 봇쨩의 도시이다. 빨간 수건을 두르고 오갔던 도고 온천과 봇짱 열차, 봇짱 시계, 그리고 온천 후 사 먹은 당고 등 백 년 전 소설 작품이 현실 세계에 그대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 봇짱 열차는 1,888년부터 지금까지 도고온천 역과 도심을 운행한다. 다크 그린의 증기기관차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자극하며 마쓰야마의 명물로 자리매김했다.         


도고온천역으로 들어온 봇짱 열차



 지난겨울에 시코쿠 제1 도시인 마쓰야마를 다녀왔다. 제주항공을 이용하여 무료 셔틀로 오쿠도고 온천호텔까지 편하게 찾아갔다. 숲 속에 위치한 호텔은 시가지의 불빛 없이 조용하고 한적하여 노천 온천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숲이 노천 온천탕의 방어벽 역할을 해주는 만큼 뷰가 아름다웠다. 노천탕은 3단 계단으로 되어있으며 시설도 다양하다. 수질이 정말 좋아 매끄럽고 부드럽다. 온천에 집중하기로 한 이번 여행은 따끈한 힐링. 저녁 식사하러 벚꽃 뷔페식당에 내려가니 일본인들이 훨씬 많다. 현지인이 좋아하는 온천이구나! 참치 해체 쇼도 하고, 맛있는 것도 많아 꽤 괜찮은 호텔로 인정했다. 화실 정원은 대나무와 전통 가옥, 잘 가꿔진 정원과 전통 음악으로 일본색을 잘 담고 있었다.  


숲 속의 오쿠도고 호텔 3층 로비
오쿠도고 호텔 화실 정원



다음날, 도고온천역에서 봇짱 열차 타고 마쓰야마 성으로 향했다. 오카이도 역에서 내려 큰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약 1km 정도 걸으니 로프웨이 정류장이 있었다. 지상에서 2~3미터 정도의 높이라서 노인을 위한 시설로 봐야 할 듯하다. 그래도 마쓰야마 성 명물이고, 시간도 아낄 겸 올라탔다.


로프웨이 타고 마쓰야마 성으로 가는 길
마쓰야마 성 들어가는 길



 132m의 가츠야마 정상에 세워진 마쓰야마 성은 원형을 간직한 곳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종군한 가토 장수가 공을 인정받아 1627년 성을 축조했는데 52만 명이 동원됐다고 한다. 시코쿠 지방 최대의 성곽이며, 벽의 크기가 거대하고, 규모도 제법 크다. 성의 입구는 오른쪽으로 꺾어 위로 오르게 함으로써 방어를 꾀한 듯하다. 성곽 위에 앉으니 세토 해와 마쓰야마의 아름다운 전망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성의 중심부 혼마루와 아래쪽 산기슭의 니노마루와 산노마루, 성곽을 포함하여 21채 건물이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혼마루는 벚꽃 명소로도 유명하다. 1월인데도 홍매화를 비롯하여 봄을 알리는 꽃들이 피어있었다. 매화 향기 맡으며 감탄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성벽에서 내려다본 마쓰야마 시가지
마쓰야마 성 혼마루 전경



근처에 자리한 반스이소(Bansuiso)는 1922년에 옛 마츠야마의 귀족이 별장으로 지은 순수 프랑스식 양옥이다. 건물 자체가 예술 작품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월에 피어난 마쓰야마 성 홍매화
마쓰야마 성 남쪽 기슭 반스이소



성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오는 길에 오래된 우동집을 찾아갔다. 토요일 점심 때만 영업한다는 우동집 주인은 한국에서 온 모녀를 극진하게 대접해 준다. 넓고 둥그런 나무상자에 풍부한 면수와 쫄깃한 면발이 담겨 있다. 다라이 우동이라 한다. 옛날 일꾼들이 일을 마치고 빨리 우동을 먹기 위해 나무 다라이에 면발을 넣고, 삶아 먹는데서 유래되었다. 생강, 파 등 6가지 재료를 제공한 주인은 쯔유에 찍어 먹는 법을 일본어로 열심히 알려주었다. 먹을 때에는 후루룩 빨아 넘기면서 면발의 탄력을 음미해야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씹지 않고 '목으로 맛을 본다' 고 하는데, 목으로 면이 넘어가는 느낌을 '노도코시'라고 부른다. 특이하긴 했다.      


마쓰야마 전통 다라이 우동



오카이도 상점가를 둘러본 후 노면전차를 타고 도고온천으로 갔다. 역 건물에 자리한 스타벅스는 근현대적 감각을 갖춘 오래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내부의 독특하고 엔틱한 장식이 여행객의 시선을 끈다. 커피와 케잌 한 조각 먹고 딸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심한 듯해 보여도 친구 같은 딸이다. 도고온천을 찾아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도고온천 스타벅스 건물과 석등롱
도고온천 본관 건물



도고온천의 역사는 3,000년이나 된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질 좋은 온천수와 도심과의 접근성이 좋아 인기 온천으로 자리 잡았다. 6세기 말 일본 불교를 중흥시킨 쇼토쿠 태자가 즐겨 찾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일본 만요슈 안에 도고 온천이 등장하며, 나쓰메 소세키의 휴양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1,894년에 지어진 3층 규모의 목조 건물 도고온천 본관은 모양도 아름답고 특별하여,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되기도 했으며, 주변에는 100여 개의 온천탕이 모여 있다.   

  

도고온천 L자형 아케이드 상가



도고온천 본관과 도고온천 역을 잇는 L자형 아케이드 상점가에 도미 덮밥 및 당고 등 맛집이 모여 있다. 소설 <도련님>의 주인공이 온천 후 돌아가는 길에 먹었던 봇짱 당고와 특산물인 감귤 디저트 매장들이 모여 있다. 역 앞 작은 광장을 지키고 있는 봇쨩 시계탑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정각이 될 때마다 소설 속 인형들이 나오는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입구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이사니와신사
입구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이사니와신사



이사니와 신사도 잠깐 둘러볼 만하다. 입구의 높은 계단을 만나게 되면 주춤해진다. 계단을 다 오르면 눈에 들어오는 붉은색 건물과 화려한 빛깔이 아름답다. 하치만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이곳은 1,667년 건축된 일본 중요문화재이다. 길게 이어진 회랑에 그려진 그림들도 역사가 담겨있다. 이사니와 신사에서 내려다본 마을 풍경은 그림 같았다. 내려오는 길 오른편 탕 신사도 둘러볼 수 있다.


도고 온천탕 신사



 유즈키 성 유적 주변에 자리한 도고 공원에 매화가 한창이다. 수면에 비친 매화도 아름답다. 공원을 한 바퀴 돌아 전망대에 올라가니 시가지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도고 공원 벚꽃은 마쓰야마 벚꽃 전선의 기준이 되고 있다. 4월쯤 다시 와야겠다 다짐했지만 이제는 궤도수정이다. 그래도  벚꽃 아름다운 계절에 이 곳을 다시 찾아오고 싶다.     


유즈키 성 주변 도고온천 공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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