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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경희 Apr 12. 2020

고베-다양성이 공존하는 곳

일본 소도시 24 - 상처를 딛고 희망을 꿈꾸는 도시


 2019년 1월 중순 간사이공항에 도착, 고베로 가서 건축물 몇 군데를 둘러볼 생각이었다. 공항에서 기차, 버스를 타면 오사카만을 빙 둘러가지만 배를 타면 30분에 가로질러 갈 수 있다. 베이 셔틀 티켓 구입 때 여권을 보여주면 50% 할인해준다. 쭉 이어진 항구를 바라보니, 개방과 동화에 대한 정책 판단이 실감되었다. 고베항은 나라, 헤이안 시대에 견당사 파견 항구였고, 메이지유신 때 개방적으로 서구 문화를 유입했다. 태평양전쟁 때는 미군 폭격으로 약 9,000명이 사망했으며 도시의 21%가 파괴되었다. 고베는 기존의 유산을 재생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추구했다. 뱃길에 서린 역사를 추론해보는데 어느덧 고베 항에 도착했다. 다시 셔틀 타고 고베공항으로 이동, 렌터카에 연락하니 직원이 데리러 왔다. 역시 이번에도 파란색의 혼다 핏. 운전을 하면서 하버랜드에 위치한 오쿠라 호텔로 갔다.


간사이 공항에서 고베항을 오가는 베이 셔틀 우미호



처음 고베를 방문했던 것은 1995년 1월 3일. 2주 후인 1월 17일, 새벽 5시 46분 대지진의 참사가 고베를 강타했다. 갯벌 매립도시 고베의 지표면 15km 아래에서 발생한 대지진은 규모 7.2로 측정되었다. 동시에 발생한 상황들은 끔찍했고, 고베는 초토화되었다. 고속도로, 공항, 항만, 철도가 불탔고, 끊어졌으며, 쓰러졌다. 무거운 기와에 비해 약한 석고나 대나무 벽으로 만들어진 전통가옥은 쉽게 무너졌다. 6,434명이 사망, 실종 및 부상자가 속출했다. 우리 교포 인명 피해도 5백여 명에 달했다. 재산피해는 10조 엔으로 당시 일본 GDP의 2.5%였다고 한다. 흐엉, 만일 그 자리에 있었다면 하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1995.1.17. 고베 대지진에 휘어져 버린 철길-산케이신문


 

10년이 흘러 2005년, 다시 고베의 사람과 방재 미래센터를 방문했다. 이 곳은 2002년 대지진의 경험과 교훈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지진과 방재에 대한 자료 전시와 각국의 언어로 제작한 영상과 음향 체감, 지진 직후 거리의 모습을 재현한 디오라마 모형 등이 갖춰져 있다. 지진 발원지에서부터 강도에 따라 늘어선 인형들이 넘어지던 모형과 흔들림을 체험했던 곳, 각종 체험 부스와 비상용 배낭, 벽에 고정시킨 옷장 등이 기억났다. 시민들은 상처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희망으로 나가고자 하는 염원을 느꼈다. 우리의 세월호는 인간이 만든 재해였으므로 더더욱 기억해야 하고 위로하고, 여건과 환경을 바꿔주도록 애써야 한다. 우리 중 누구라도 4월의 눈물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고베의 지진 기억을 보존하자는 5시 46분- 사람과 방재 센터



지진이 발생한 5시 46분, 그때 멈춰 선 시계들, 흔적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지진으로 파괴된 곳을 재건축해도 당시의 원형을 최대한 살리거나, 기억될 만한 것들을 넣었다. 고베의 재생과 부활은 상처와 기억을 근거로 했다. 메리켄 파크에도  95년 지진 당시의 파괴된 흔적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과거를 지우지 않고 아픔을 인정한 시민들의 생각에 공감이 되었다. 잊지 않는다는 것은 또 하나의 준비 과정인 셈이다.


메모리얼 파크에 보존된 지진 당시의 파괴된 모습 -산케이신문

  


호텔에 도착 후 비용을 추가하여 25층으로 올라갔다. 대신 시청사의 전망대를 포기하기로 했다. 롯코산을 배경으로 아늑하게 자리 잡은 시티뷰, 간선도로와 항만이 이어진 생동감 있는 전경이 창안으로 들어왔다. 짐을 풀고 호텔 옆에 있는 포트 타워로 갔다. 1963년 건설된 붉은색 파이프로 외관을 두른 포트 타워는 108m의 높이를 자랑하는 고베의 랜드마크이다. 세계 최초의 파이프 구조 건물로 장구를 길게 늘여놓은 듯한 날씬한 모습이다. 그래서 철탑의 미녀로 불린다. 어둠 속에 도시를 지키는 불꽃처럼 타오르는 포트 타워. 들어가지 못하고, 아쉽게 외관만 둘러보았다.  


오쿠라 호텔에서 바라본 롯코산 기슭 시티뷰



바다를 끼고 느긋하게 걸어 모자이크로 향했다. 모자이크는 이국적인 쇼핑몰로 다양한 음식점과 기념품 가게가 입점해 있다. 이 곳이 고베 포트 타워와 해양박물관, 메리엔 파크 등을 조망하고 촬영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어느덧 해가 지고 서서히 어둠이 몰려왔다.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모여들었다. 아, 항구에 불빛이 들어오는 시간이구나! 수면에 비친 포트의 야경이 어둠 속에서 살아나고 있었다. 포트 타워 옆 해양박물관 뒤로 오쿠라 호텔도 보였다.    


모자이크에서 바라본 포트 타워 야경



모자이크는 1992년에 개장한 복합 상업시설로 인기 있는 명소이다. 주변 각종 쇼핑몰에서 고베 브랜드 존재를 자랑하는 물건들이 손짓하고 있었다. 가방에도, 신발에도, 옷에도 고베의 상징들이 표현되어있다. 고베 와규가 유명하다고 하여 모자이크 2층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고베 와규를 먹었는데 음~~ 일본인의 고기 스타일은 우리나라와 조금 다르다. 가격 대비해보면 역시 우리나라 양념 갈비가 최고!.    


포트 타워 디자인 고베의 브랜드 상품



슬슬 걸어서 스타벅스 쪽으로 가는데 독특한 구조의 예술 유적이 눈에 띈다. 도자기로 만들어진 예쁘장하고 귀여운 건물이다. 여학생의 종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기념비는 고베 패션 페스티벌' 기념으로 1990년 6월에 완성된 종탑이다. 하루 네 번 종소리가 울렸으나 대지진 이후 종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대신 측면에 뚫린 구멍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디자인이 뛰어난 종탑은 존재감이 제법 크다. 이 기념비 바로 옆 BE KOBE 앞에서 기념 한 컷.

      

새로운 고베의 심벌 BE KOBE
여학생의 종과 스타벅스 사이 포트 타워

 


다음날, 효고 현립 미술관으로 향했다. 노출 콘크리트 건축을 유행시킨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다. 건축학도들은 물론 건축에 흥미 있는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고베라는 도시가 갖는 과거의 상처를 보듬고, 현대와 미래의 염원을 담고자 만들어 낸 미술관이다. 조각, 판화, 현대 미술, 그리고 효고현 작가들의 작품 컬렉션 등 4가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2층의 테라스에 '청춘'을 상징하는 '푸른 사과' 조형물. 사무엘 울만이 78세에 쓴 시 '청춘'과 함께 전시되어있다. 홀로 서있는 푸른 사과는 미숙하고 시큼하지만 내일의 희망을 담고자 했던 건축가의 정신에 박수를 보내며......

 

Youth is not a time of life, it is a state of mind. 그에게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 가짐을 뜻한다.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한 정신이다. 세월은 피부를 주름지게 하지만 열정을 상실할 때 영혼이 주름진다는 사무엘 울만의 시에 완전 공감이다.      


효고현립미술관 2층 푸른 사과는 청춘의 상징
효고현립미술관 원형 테라스 중심에 서서



미술관은 깔끔한 대칭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형 테라스를 중심으로 두 개의 건물이 바다를 향해 서있다. 수직 절벽의 이미지 사이에 들어선 소라 모양의 건축물, 꽤 세련된 이 건물은 사진작가들이 애용하는 듯하다. 잡지 모델 여성을 포토크래퍼가 멋지게 촬영하고 있었다. 으흠, 멋지군. 우리도 흉내 내어 몇 컷 촬영에 성공. 이 미술관의 매력은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고베 시민들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150만 고베 시민들의 의지가 담겼다는 점이다. 또한 안도 다다오와 일본 내 건축 관련 사진, 조형물들이 상설로 전시돼 있다. 두 팔을 벌리고 한가운데 서서 사진을 찍으니  나름 작품이다.  


 미술관 테라스로 나오면 태양의 소녀상이 바다를 향해 서있다. 오른손은 뒷 머리 아래쪽을 잡고 있으며, 왼손은 태양을 들고 있다. 야노베 켄지라는 작가가 만든 6.1미터 크기의 거대한 조각상은 태양의 소녀 나기사.  2015년 지진 20년을 맞이하여 설치한 작품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바라보며 희망의 상징으로 빛나는 태양을 들고 있다.  은빛으로 만들어져 생각보다 세련되고, 현대적 감각이 크기의 부조화를 극복한 느낌이다.  


효고 현립미술관과 태양의 소녀상

 


고베항의 개항으로 외국 문물을 받아들인 두 개의 축은 고지대 기타노 이진칸과 바다 쪽의 차이나타운이다. 

언덕 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관광안내소에 들어가니 노인 두 분이 친절하게 한국어 안내판을 주시고 길을 알려주신다. 기타노 이진칸에는 메이지 시대부터 외국인들이 들여온 석조와 목조의 서양식 건축물들이 30여 채 있다. 그중 풍향계의 집은 과거 독일인 무역상 갓 프리드 토마스의 저택이다. 지붕 꼭대기에 닭 모양의 풍향계가 달려 있다. 붉은 지붕과 벽면의 모습에서 독일 건축을 엿볼 수 있다. 녹색 빛을 띠고 있는 멋진 건물은 모에기노야카타. 독특한 외관이 들어오라 손짓하지만 이른 시간이라 들어가지 못했다. 오스트리아 건물은 붉은 느낌이 강했고, 네덜란드 건물, 프랑스 건물 등 유럽 여러 지역의 특징을 담고 있다. 이국적인 건물과 박물관을 살펴보다 기념품 가게를 들어갔다. 고양이를 비롯하여 앙증 맞고 귀여운 것들이 너무 많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기타노 이진칸의 풍향계의 집
모에기노야카타 앞의 조각상



 풍향계의 집 옆 골목 위 기타노텐만 신사로 올라가면 고베 시내 전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험생을 위한 신을 모시는 아담하고 작은 신사이다. 합격을 기원하는 기도문이 곳곳에 많이 붙어있다. 작은 누각 안에 황소 동상이 하나 보인다. 까만 소는 만병통치약 같은 존재. 머리가 나빠 공부를 못하는 사람은 소 머리를 쓰다듬으면 머리가 좋아지고, 배가 아프면 배를 쓰다듬고, 눈이 아프면 눈을 만지는 등, 좋아지고 싶은 부위를 만지면서 기원하면 그 소원을 들어준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잉어에게 물을 끼얹으며 역시 소원을 빌고, 나무 벽에 걸어놓은 분홍빛 작은 물고기들이 벚꽃처럼 열려있는 것.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신사이다.

   

합격 기원을 담은 수험생을 위한 신사
기타노 텐만 신사의 잉어에게 물을 끼얹고 소원을 비는 곳



또 한축인 ‘차이나타운’. 서양인들이 하지 않는 허드렛일, 부두 하역, 이발, 양장점, 한약방을 하기 위해 값싼 노동자로 들어와서 집단 거주를 한 곳이다. 약 150년이 된 차이나타운 난킨마치는 쇼핑과 먹거리가 풍부한 곳이다. 인천의 차이나타운을 생각해보면 유사하다. 차 세우고 잠깐 바라만 보고 그냥 이쿠타 신사를 향해 고고. 고베의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한 이쿠다 신사는 201년에 세워졌다. 태양신을 모신 신사로 전쟁과 지진으로 무너져도 다시 원형 복원을 하고 있다. 고베라는 이름은 이쿠타 신사에 기부된 봉호로 이곳의 주민들이 신사에 조세를 바친 취락이 있던 데에서 유래했다.  


아리마 온천 입구에 위치한 노천온천



 1,300년 된 아리마 온천은 일본 3대 고천 중 하나로 손꼽힌다. 아리마 온천이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두 종류의 온천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철분과 염분을 다량 함유한 붉은 온천 킨센과 라듐천과 탄산천이라  불리는 무색 무명한 긴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길게 줄을 섰다. 30분 후에 겨우 입욕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욕탕은 좁았지만 수질은 매끈했다. 점심을 먹는데 레스토랑 한편에 신아 재봉틀이 버티고 있었다. 엄마 시집올 때 가져오셨다는 그 재봉틀을 만나니 반가웠다. 여러 기념품 상점들이 있어 지역 특산품도 살 수 있고 노천 온천수가 흐르는 하천도 볼 수 있다.  


아리마 온천 지역 중 붉은 온천으로 불리는 킨센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하얀 김이 피어 나오는 원천이 마을 가운데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100도에 가까운 온천수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소리가 멋지다. 고베 아리마 온천 마을에 7개의 크고 작은 원천을 볼 수도 있다. 


아리마 온천 마을의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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