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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경희 Aug 05. 2020

야마구치-조선통신사 흔적을 찾아

일본 소도시 13 - 청일전쟁과 시모노세키 조약

칸몬 해협은 혼슈 서남부 시모노세키와 규슈 북부 모지 사이의 좁은 바다로, 일본의 수에즈라고 불린다. 이 곳에 1942년 해저 국도 터널을 뚫어 두 지역을 이어 주었다. 이후 1973년 11월, 길이 1,068m, 폭 26m, 중앙부 높이 61m로 대형 선박이 통과할 수 있는 칸몬 대교를 개통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시모노세키와 모지 항을 묶어서 칸몬항이라고 부를 만큼 두 곳은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여있다. 시모노세키역에서 전철 타고 칸몬 해협을 건너 규슈의 고쿠라 역까지 전철로 2칸, 기껏해야 14분 걸린다! 이 곳은  혼슈와 규슈, 두 곳의 색깔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여행이 가능한 곳이다.      


칸몬 해협을 건너는 칸몬 대교의 모습
규슈와 혼슈를 이어주는 해저터널 입구



년 전, 부관 훼리호를 타고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향했었다. 부산에서 저녁 6시 무렵 출발한 여객선은 광안대교의 현란한 불빛을 뒤로하고, 미끄러지듯 바다로 나아갔다. 서서히 어둠이 밀려오고 선체의 흔들림이 점차 커졌다. 시커먼 바다를 바라보는데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갈 듯했다. 달빛을 품은 바다는 언뜻 평온해 보였으나  흔들림은 강력했다. 다양한 편의 시설을 갖춘 배의 선실에 누워 있다 답답하여 갑판으로 나갔다. 난간에는 짭조름한 소금기가 묻어있어 느낌이 거칠었다. 옛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이 검푸른 바다를 건너 다녔을까? 생각해봤다.


배 위에서 바라본 시모노세키는 차분했고, 깨끗했다. 푸른 바다 위에 세워진 칸몬 대교는 광안대교처럼 느껴져 어쩐지 익숙했다. 혼슈 서쪽 끝에 자리한 인구 약 26만의 시모노세키는 일본의 군사적 요충지이며, 우리나라와 연결되는 중요한 교통 창구이다.  일본 도시 중 최초로 부산과 자매결연을 맺은 곳이기도 하다.

지문을 날인하고, 입국 수속을 마친 후 하선하여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조선통신사 상륙 기념비. 통신사의 배가 해협을 들어서면 시모노세키에서 안내선 100척이 바다로 나와 마중을 했고, 항구에 도착하면 곧바로 숙소에서 성대한 연회가 베풀어졌던 곳이다.      

 

칸몬 해협을 따라 이어진 해안 보도
조선통신사 상륙비 기념석


둥근 모자상이 있는 안쪽으로 들어가면 작은 공원이 있다. 바다 쪽에는 돛을 설치하고 석등롱이 서 있다. 아침 해를 맞이하는 돌비석 3개가 나란히 붙어있다. 비석의 중앙 위쪽에 조선통신사 상륙비가 새겨져 있고 아래쪽에 그림으로 조각해놓았다. 대마도에서부터 도쿄에 이르기까지 조선통신사가 이동한 곳곳에 이런 그림들을 찾아볼 수 있다.

칸몬 대교로 이어진 바다 건너편에 모지항이 보였다. 길게  늘어선 해변 공원에 잠시 멈추어 바다 위를 오가는 어선들과 대교를 바라보니,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이다.


일청 강화 기념관
안토쿠 천황을 모신 아카마 신궁



길 건너 맞은편에는 숙소로 이용된 아카마 신궁이 자리 잡고 있고, 옆에는 일본식 표기에 따라 일청강화기념관이 있다. 우리나라와 반대인 차선의 건널목을 지나 위쪽 붉은 신궁으로 향했다. 과거 통신사의 숙소로 사용했던 아미타지는 사라지고, 아카마 신궁만이 남아있다. 1,185년에 건립되었으며,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죽은 안토쿠 천황을 모신 신궁이다. 1,604년 임진왜란 때 끌려 간 조선 포로 1,390명을 소환한 사명대사가 아카마 신궁에 들러 안토쿠 천황을 조문하는 시를 지었고, 이후 통신사들은 그 운자를 따서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어린 시절 위인전에서 만난 사명대사 이야기가 떠올라 호탕함과 담대함을 또 한 번 느끼게 해 준 곳이었다.     


시모노세키에서 청일 강화 조약을 맺던 당시의 그림-자료관



동학농민을 진압한다는 구실로 조선에 군사를 보낸 청과 일본. 두 나라의 전쟁은 만주까지 확대되었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일본이 1895년 4월 17일 시모노세키에서 청일 강화조약을 맺었다. 청은 조선의 지배권을 잃고, 펑후도(타이완 남쪽 산호섬)와 ,랴오둥 반도를 일본에 넘겨주고, 배상금 2억 냥을 지불하게 되었다.

이후 일본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의 확립하고, 패배한 청을 향해 서구 열강이 앞다퉈 이권을 획득하려고 했다. 청의 근대화 양무운동은 무너지고, 열강의 간섭이 더욱 노골화되면서 겉모습만 바꾸는 것이 아닌 체질 개선을 해야 한다는 변법자강 운동과 혁명 운동이 번져나갔다.

일본은 1937년 6월 일청강화회의 무대가 된 슌판로 옆에 기념관을 열었다. 강화 회의에서 사용된 비품, 양국 전권대사인 이토 히로부미와 리홍장의 유물을 전시하고, 당시의 강화 회의 공간을 재현해 놓았다. 세월은 지나고 일청 강화조약 기념관의 기록과 전시가 그 흔적으로 남아 지난 영광을 담고 있다.  


카이코 유메 타워



1,996년 칸몬 해협의 랜드마크는 360도 스카이뷰를 자랑하는 카이코 유메 타워이다. 전망실을 둥근 유리로 만든 세계 최초의 건물이다. 시모노세키와 칸몬 해협 및 규슈 지역까지 한눈에 다 들어오는 곳으로 전망이 좋다. 30층 건물 높이에 초속 120m로 이동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여권을 보여주면, 입장요금은 300엔. 시모노세키 국제여객터미널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푸른 바다에 하얀 대교를 품은 수려한 경치를 뒤로하고,  근처 가라토 시장으로 향했다.  


가라토 시장의 생선초밥
가라토 시장 근처 복어 맨홀



가라토 시장은 주말에 다양한 초밥을 맛볼 수 있는 수산 시장이다. 테이블이 없어서 서서 먹거나 의자에서 먹거나 바깥 해변가 벤치에서 먹어야 한다. 오후 3시면 문을 닫는데 2시 반부터는 세일해서 싸게 판다. 복어회와 튀김, 크로켓과 초밥 등이 유명하며, 노량진 수산시장이나 소래포구가 떠오르는 곳이다. 복어 모형도 서 있고, 곳곳에 복어 이미지가 눈에 띈다. 산덴 버스 차체나 맨홀 뚜껑에도 복어 그림이 그려져 있다. 큰 수족관인 카이쿄칸, 영국 공사관이었던 레스토랑, 우체국 등 앤티크한 옛건물 등 볼거리가 꽤 있다. 일본인들에게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메이지유신 지사들과 관련된 곳이 많다. 아베 신조의 지역구로 홍보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음~ 도시의 보수적 성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에도시대 후기의 교육시설 쇼가손주쿠
요시다 쇼인이 배출한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

        


 야마구치현에는 조용한 시골이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지가 많다. 그중 한때 무사가 지배한 영지의 수도였던 곳이 하기이다. 1,863년 야마구치 현청이 세워지기 전까지 약 260년 동안 삼각주 지대에 세워진 옛 중심지이다. 인구 15만의 작은 도시 하기는 근대 일본 문화의 산실이다. 조선침략에 앞장섰던 이토 히로부미, 가쓰라 다로, 이노우에 가오루, 미우라 고로 등이 나거나 자란 곳이다. 메이지 유신의 주요 인물인 요시다 쇼인이 쇼가손주쿠를 열어 이토 히로부미 등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 배출한 곳이다. 작은 시골 도시에서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가쓰라 다로, 다나카 기이치 등 4명의 총리를 배출했다. 일본 근대화의 산실이 바로 이곳이다.


하기 성의 모습
하기 성하 마을



2015년 7월 하기 성하 마을을 비롯한 하기 시내 5개의 유산을 포함한 6현 11시의 23 유산이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일본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제철과 제강, 조선, 석탄산업에 급속한 산업화를 이룩했다. 짧은 기간에 급속도로 산업화가 진행되어 오늘날의 ‘장인의 나라 일본’의 원점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하기이다.  일본에서 가장 아름답게 잘 보존된 성곽 마을로 알려져 있다. 일본 역사에서는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곳이다.    

성하 마을 무사의 집을 들러보고 다다미가 연결된 방을 둘러봤다. 쇼군에게 충성을 맹세하던 사무라이들이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던 복종의 장면이 떠올랐다. 선과 절제, 돌과 나무, 바위 등의 조경을 내세운 사무라이들을 생각해보니 웃음이 나왔다. 동네 한쪽에서 노인들이 만들어 팔던 생도넛 맛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 아키요시다이
아키요시다이 석회암 동굴



하기시 남서쪽, 석회동굴인 아키요 시도는 총면적 54 km²의 석회암 지대이다. 일본에서 가장 규모가 큰  3대 카르스트 지형 중의 하나이다. 해발고도는 200~300m 정도로 완만하며, 약 3억 년 전의 산호초가 지각변동에 의해 융기되어 생성되었다. 빗물에 녹는 성질을 가진 석회암은 특유의 카르스트 지형을 만들어 일대에는 400개가 넘는 석회암 동굴이 생성되어 있다. 일본의 국립공원으로 보호받고 있다. 아키요시다이 전망대에서 전경을 바라보고, 종유석과 석순, 석주 등의 석회암 지형을 체험할 수 있다. 석회암 동굴에는 계단식 카르스트 지형이 멋지게 남겨져있다. 터키의 파묵칼레, 혹은 윈난성 곤명 구향 동굴의 멋진 경치가 오버랩되었다.


루리코지 오층탑과 소담한 연못



 대륙과 남방 문화가 유입된 야마구치는 후시노 강 중류에 자리한 산의 입구라는 뜻으로, 같은 지명이 일본에 150여 개나 있다.  지방호족인 오우치가문화가 번영해 국보인 루리코지 오층탑과 셋슈테, 이치노사카가와 등 지금도 옛 정서가 살아있다.

루리코지 오층탑은 일본 전국 오층탑 중에서 10번째로 오래되었고, 노송나무 껍질로 만든 지붕이 독특하다. 나라, 교토와 더불어 아름다운 일본 3대 명탑의 하나이다. 무로마치 시대의 가장 뛰어난 건축물로 평가돼 되고 있으며,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탑 주변 연못에 작은 섬이 있는데 뱁새가 앉아있었다. 이른 봄, 이 지역의 나이가 지긋한 사진 동호회원들이 작은 섬을 바라보며, 조용하게  사진을 찍고 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스페인의 에바 알머슨은 노래하던 새들에게서 생명감을 느꼈다고 하는데, 동호회분들은 새가 전해주는 생명력에서 소소한 일상의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리코지의 모습



5층 탑 안쪽 루리코지는 중국 선종 사원으로, 본존으로는 약사여래를 안치하였다. 경내 코오잔공원은 벚꽃과 매화의 명소로도 알려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무로마치 시대에 서교토라 불리던 야마구치를 지배하던 오오우치 가문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는 사원이다. 본전에 있는 다채로운 형태의 13개 화반은 독특한 도안과 더불어 무로마치 시대의 특색을 잘 드러내고 있다.

       

모토노스미 이나리 신사



일본에는 약 40,000 개의 신사가 있으며, 그중 2 개의 신사 만이 "이나리"라고 하는데 이 곳이 바로 그중 하나. 하얀 여우의 계시에 의해, 쇼와 30년에 시마네 현 타이고다니 이나리 신사로부터 분령된 신사이다. 푸른 하늘 아래 123개 붉은 도리이가 푸른 언덕 위로 이어져 있는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이 곳은  CNN이 선정한 일본 명승지 31선 중 하나로 수많은 해외 여행객들이 방문하는 명소이다. 이 곳의 명물은 신사에서 소원을 빌 때, 동전을 던지는 상자인 '사이센바코' .  높은 토리에 위쪽에 걸려있는 이 상자에 동전을 던져, 동전이 들어가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소문이 있다. 바다의 용궁이 토리이를 따라 육지로 올라오는 느낌이 드는 곳이다.


홍예문 형태의 긴타이교



긴타이쿄는 니시키가와 강에 놓인 5개의 아치형 목조 다리로, 걸쇠 외에는 못 한 개 쓰지 않고 나무를 엇거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폭 5m, 직선 길이는 193.3m이고, 다리 면을 측정한 길이는 210m인 이 목조 다리는 일본의 3대 다리 중 하나로 꼽힌다. 에도시대 초기에 이와쿠니 성을 세우고 마을을 조성한 영주가 상급 무사가 사는 지역과 니시키 강 건너편에 있는 중·하류 무사가 사는 마을을 연결하기 위해 긴타이 교를  계획했다. 급류로 인해 니시키 강이 범람해도 다리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1673년에 강에 세워진 돌담에 5개의 아치가 연결된 형태로 완성되었다. 현재의 다리는 2,004년에 옛날 그대로의 공법을 준수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다리를 건너 깃코 공원으로 가면 한때 이곳에 거주했던 사무라이 가옥을 만날 수 있다.


야마구치 유다온천의 하얀 여우상
맨홀에 새겨진 야마구치 유다 온천 안내



유다 온천은 무로마치 시대부터 면히 이어져 온 유서 깊은 온천이다. 약 800년 전에 흰여우가 상처를 치료하는 모습을 보고 우연히 발견된 온천이라고 한다. 옛날, 곤겐야마 산기슭의 절에 작은 연못이 있었고, 그 작은 연못에 매일 저녁 흰여우 한 마리가 찾아와 상처 입은 다리를 담그는 것이었다. 이를 의아하게 생각한 스님이 연못의 물을 떠서 살펴보니 물이 따뜻했다. 그래서 연못을 깊게 파보았더니  뜨거운 온천수가 펑펑 솟아 나왔다.  또한 그곳에는 황금색의 약사여래상도 있었다. 이후 이 불상에 참배를 하고 온천에 몸을 담그면 불치병도 치유된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흰여우의 온천’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유다 온천 관광유람 거점 시설 기쓰네노 아시아토는 유다 온천의 관광지나 음식점, 기념품 가게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양조장이 18곳이나 되는 야마구치의 토속주나 지역의 식재료를 사용한 디저트 등을 족욕탕에 발을 담그고 맛볼 수 있다.  맨홀 뚜껑에도 유다 온천을 안내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온천에 몸을 푹 담그면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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