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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경희 Apr 13. 2021

경주 1- 봄바람

친구야, 마음에 부는바람 따라경주로 떠나볼까?

1. 바람이 분다.


마음에 훅~ 바람이 불어온다. 답답함과 지루한 마음 한 자락에 결코 가볍지 않은 바람이다. 지난 1년 3개월 동안 충분히 견뎌낸 날들에 대해 위로도 필요하거니와 마음 한편에 찌릿찌릿한 통증을 참을 수없는, 아니 참고 싶지 않은 날들이다. 게다가 꽃들이 고개를 내미는 봄이지 않는가? 이 봄이 떠나기 전 뭐라도 해야 하지 않는가?

친구야, 자꾸만, 자꾸만... 점차 거세어지는 바람이 불어온다.


사람들은 일상 탈출을 꿈꾸며 어디론가 떠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설렘을 가득 안고 전혀 새로운 공간에서 또 다른 나를 찾으려고 한다. 혹은 책으로 보던 내용들을 확인하고 싶어 하거나 역사 속 지난날들을 상상하는 즐거움을 느끼려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는 마을길 따라 나무 따라 흙길을 따라 느긋하게 걸어보고 싶어 한다. 자전거를 타고 둘러보거나 투어를 통해 정서적 감흥을 받고자 하는 이들도 있고,  인스타 혹은  sns 등 네트워킹 활동의 주제를 정하고, 사진을 직고, 자료를 찾으려는 젊은이도 있다.


머릿속으로, 마음속으로 열 번도 더 떠나려고 하지만 더구나 코로나 시국에 마음먹기란 참 쉽지 않다. 막상 떠나려 하면 가족이나 일, 약속 등 걸리는 것들이 어쩜 그렇게 많은 지...  결국은 현실 앞에 주저앉아 버린다. 게다가 나를 위한 시간과 돈을 투자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불어오는 바람은 종종 바램으로 바뀌곤 한다.  


하지만, 지금 아니면 안 되는 바람이 분다. 친구야! 너에게도 바람이 불었구나!

좋아, 좋아,  오래된 미래로 향하는 바람 따라 우리 같이 가 보자.


설렘으로 기다렸던 4월 첫 주에 봄비가 오신다는 소식이다. 올해는 유독 따뜻해서 이미 벚꽃은 활짝 피었고 꽃자리에 자주색 연한 잎사귀들이 쭈삣 쭈삣 나오고 있었다.

친구야, 어떤 면에서는 비가 오는 것이 더 나아. 비에 젖은 벚나무는 검은색으로 물들고, 벚꽃 잎은 색이 진해져. 꽃잎이  진자리에 올라오는 새순은 자주색으로 고운 빛깔이야, 하얗게 빛나는 화려한 시절보다 자주색 빛깔이 더욱 강인함을 보여주는 듯해.  괜찮지!

바닥에 떨어진 벚꽃잎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 비에 젖어 있으니 그 자리에서 그대로 우리를 기다리거든. 온통 꽃 잎으로 가득한 세상을 만나보자. 다니기는 살짝 불편해도 기대 이상의 풍경을 만날 수 있거든.


부지런을 떨어 서울역에 도착, 이른 아침 6시 30분 ktx를 탔다. 방역관리상 기차 내에서 한마디도 나눌 수 없다. 조용히 눈 감고  2시간 정도 지나 신경주 역에 도착하니 아침 8시 20분이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지만 어쨌든 경주에서의 시간을 벌었다. 마중 나온 지연에게 이번 경주여행은 꽃바람 속에 숨은 오래된 미래 찾기라고 했다. 경주여행이 나름 다정한 것은 여고시절부터 함께 한 친구가 있어서이다. 유난히 탐색하고 정리하는 능력이 뛰어난 친구라 함께 가는 똑똑한 발걸음에 기분이 좋았다.


천년고도 경주. 기원전 69년 우물가 흰말이 남기고 간 큰 알과 배 위에 모여든 까치와 흰 닭이 등장하는 서라벌의 건국 설화가 동화처럼 다가온다.

신라는 당과 연합하여 삼국을 통일, 이후 나당 전쟁으로 당군을 대동강 북쪽으로 축출했다. 왕권강화와 제도 정비 이후 통일 신라는 정치변동과 후삼국의 대립, 호족의 성장 등으로 결국 마지막 경순왕은  백성을 더 이상 희생시키지 않으려고 고려에 귀순시켰다. 1,000년 왕도 서라벌은 경주로 이름이 바뀌었고, 신라 계승을 표방한 고려가 멸망할 때까지 신라 왕실은 명맥을 이어갔다. 결국은 천년을 넘어 그 이상 신라역사를 지켜낸 셈이다.


천년의 세월 속에서 이곳 사람들은  수직의 시간 축과 수평의 공간 축을 결합하여 경주를 만들어 왔다. 천년 역사를 품은 경주 구시가지에 들어서면,  씨줄과 날줄의 교차점 위 곳곳에 새겨진 무늬처럼 특별한 유산들이 들어서 있다.  둥글기도 하고, 네모나기도 하며, 화려하게 빛나기도 하고, 정갈하며 검박하기도 하다.

오랜 세월  누적되어 온 사람들이 만들어 낸 삶과 그들이 만들어 낸 공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찾는 따뜻한 시선으로 오래된 경주의 미래를 그려본다.


긴 긴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이야기와 굴곡마다 남겨진 흔적들 사이로 젖은 봄바람이, 환한 꽃바람이 분다. 절 집에 매달린 풍경에도, 오랜 세월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거목의 작아진 잎새에도 젖은 바람은 머무른다.

용의 비늘처럼 생긴  소나무들과 둥그렇게 솟아오른 봉분들 위 초목들도 바람에 흔들리고, 분황사 앞  푸른 보리밭에 바람이 붓이 되어 흔들림을 그려낸다. 군데군데  초석만 남아있는 널따란 황룡사지는 옛 시절의 영광을 간직한 채 너른 들판에서 비에 젖은 바람을 맞고 있다. 거대한 돌부처 이마에 머물던 산바람, 월정교 위를 지나는 강바람도 촉촉하다. 경주 타워의 빈 공간을 지나는 바람은 맞은편 황룡사 목조탑에 머무르고, 솔거 미술관 수묵화에도 검은빛으로 담겨있다.


천년 역사를 지녀온 경주는 여고시절 수학여행과 역사 답사 중 우르르 몰려다녔던 기억이 생생한 곳이다.  이른 새벽부터 설쳐대며, 해돋이와 석굴암을 보러 갔고, 친구들과 다니느라 그 아름다운 불국사도 휘리릭 훑어보고 나왔었다.

경주를 가보기는 했고, 한국사 수업으로 대략 알고는 있다고 생각하는 애매함과 모호함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확하고 분명하게 알고 있지 않으면 지식이 아닌 것이다. 지식이 무엇이 그리 중요한가? 반문하지만, 느낌과 공유의 감성, 그 감성의 뿌리는 지성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2. 꽃바람이다.


경주에는 둥글둥글한 작은 동산이 수두룩한데, 신라 때, 왕이나 왕비, 왕족, 귀족들의 무덤으로 밝혀지고 있다. 신라는 56 왕 992년 동안 서라벌(경주)에서만 나라를 다스렸으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능묘가 존재하지만, 주인을 확실히 아는 것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왕과 왕비의 무덤은 ‘릉’이라 하고, 그 외의 무덤은 ‘묘’라고 부른다. 발굴된 무덤의 출토 유물이 왕과 왕비의 것으로 짐작되면 총이라 하는데 금관이 발굴되어 금관총, 천마도가 발굴돼서 천마총이라 한다. 능이나 묘라 할 수 없고, 발굴 유물도 없는 것은 ‘분’이라 하고 옛 무덤이 모여있는 곳을 ‘고분’이라 한다.



미추왕릉과 삼문

 

황남동에 있는 대형 고분 밀집지역 대릉원, 정문으로 입장하여 곧장 찾아간 곳은  사적 175호 신라 최초의 김 씨 성을 가진  13대 미추왕릉이다. 262년에 왕위에 즉위하여 23년 동안 수차례 백제의 침입을 물리쳤는데, 대나무가 병사로 변하여 도와주었다는 전설에 따라 죽현릉이라고도 한다.

 가장 잘 보존된 능으로 남쪽에 세워진 삼문을 따라 담장이 무덤 전체를 보호하고 있다. 주변에 오래된 벚꽃 나무가 빙 둘러서 있어 벚꽃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12미터 높이의 왕릉 앞에 서있는 혼유석이 빗 속에 의연하다.


미추왕릉 혼유석

 

비바람에 꽃잎이 날리는 모습은 마치 눈송이 날리는 것과 같다. 바닥에 하얗게 퍼져있는 꽃잎들!

물에 젖은 꽃잎들이 바람에 나부 껴 물결처럼 흔들린다. 검은빛 고목과 작별하는 눈부신 이별이다. 바람은 이리저리 옮겨 불어 한시도 멈추는 법이 없다.


비에 젖은 분분한 낙화-미추왕릉 삼문



꽃이 진다고 바람을 탓할 수 없다.

봄꽃에 마음을 쏟아도 얼마 못 가고, 일찍 피는 꽃은 일찍 지는 법이다. 분분한 낙화!

이형기의 시 낙화가 떠오른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 격정을 인내한 /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돌담길을 걷다
대릉원 돌담길


대릉원을 빙 둘러 돌담 따라 이어진 벚꽃터널이 나온다. 흐릿한 날씨라 꽃잎의 빛깔이 진하다. 대릉원 돌담에는 첨성대와 석굴암 등 신라의 문화유산을 도자기로 구워서 돌담 벽에 붙여놓았는데 나름 볼거리이다. 이 곳은 가을에도 단풍이 곱게 들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소이다.


경주 봉황대



대릉원 북쪽 맞은편 노동리 고분군에서, 웅크린 봉황이 중턱에서 얼굴만 내밀고 있는 고분을 만날 수 있다. 경주 왕릉 중 가장 큰 황남대총은 두 개의 무덤이 합쳐진 것에 비하면,  높이 22m, 지름은 82m로 단일 무덤 중 가장 크고, 아름다운 고분이 바로 봉황대이다. 부근의 금관총과 관련해 보면 500년 무렵의 왕릉으로 추정되며, 대릉원 일원에 포함되어 사적 512호 지정된 곳이다.


고분을 빙 둘러 돌아보니 문득 어린 왕자라는 책에서 그려지는 소혹성이 생각났다. 둥근 동산에 삐쭉하게 솟아오른 고목들이 어린 왕자가 떠나온 별 그림과 같다. 고분의 중간에 얼굴을 내민 나무와 꼬리 쪽에  솟아있는 나무는 생김새가 마치 봉황 같다. 사람들이 그래서 봉황대라고 부르나 보다. 수백 년 넘은 느티나무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주지만 반면, 발굴의 걸림돌이기도 하다. 무덤의 주인에게는 수문장이 되어 주는 것인가?


김유신묘 근처 분분한 낙화


 서천 둔치를 따라가는 2km 구간은 완전 벚꽃 터널을 이룬다. 모두 오래된 벚꽃나무로 울창한 꽃길이다. 곳곳에서 만나는 꽃바람에 코 끝이 향기롭다. 두 갈래 도로는 온통 벚꽃에 묻혀있다. 방역 때문에 진입 금지라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붙어있어 내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차를 타고 조심조심 좌회전하여 김유신 장군 방면으로 향했다.


 김유신 장군 묘지에서 반대쪽 충효천길로 내려가는 길에 늘어선 벚꽃의 자태가 아주 곱다. 첨성대 모양의 가로등이 사이 초록 새순이 돋고 연분홍 벚꽃이 파스텔 톤으로 부드러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사진을 찍다 차량이 오면 비껴주기를 반복하는데, 지나는 차들의 속력이 꽤나 느려진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 지금 이바로 경주의 벚꽃 엔딩을 즐기는 순간이다. 누구라도 어찌 이 아름다운 길을 금세 지날 수 있을까? 게다가 봄비도 이제 그쳤단 말이지!!!


삼림환경 연구원


경북의 산림환경을 연구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조성된 시설로 사계절 아름다운 숲을 자랑하는 명소가 바로 삼림환경연구원이다. 다양한 식물들과 볼거리가 있어 소풍 가기 좋은 이곳은 최근 포토그래퍼들이 즐겨 찾는다. 야생화 전시원, 화단과 연못 등이 장관을 이룬다. 길게 이어진 메타세쿼이아 숲길과 수로 중간에 연결해 놓은 통나무 다리의 반영은 포토존으로 유명하다. 다만 아직까지 이 구간이 공사 중이라 아쉽다.

촉촉이 젖은 감성으로 연못 둘레 흩날리는 벚꽃 바라보기는 흐린 날 아니면 만나지 못한다. 고즈넉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는 힐링과 위로의 기운을 전해준다. 연못에 반영된 벚꽃도 정자도 친구도 곱다.


명활산성 둘레길
진평왕릉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명활산성에서 숲머리 남촌마을 진평왕릉까지 약 2km 구간의 뚝방길이  둘레길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7~8년 전 마을 주민들이 산벚꽃나무 5백여 그루를 심고 산책로를 만들던 중 명활산성 복원과 함께 뚝방길 주변을 정비했다.

신라 26대 진평왕의 무덤이 사적 180호 진평왕릉이다. 진평왕은 선덕여왕의 아버지로 신라에서 가장 오랜 54년간 재위한 왕이다. 수·당과 외교관계를 통해 백제와 고구려의 침공을 효율적으로 막았고, 경주 명활성을 보수하여 수도 방위에 힘쓴 인물이다.  진평왕릉은 고목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나무 아래에서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다. 너른 평야 한가운데 자리한 왕릉으로 호젓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느끼고, 바람의 소리, 봄이 오는 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곳이다.

 

경주 보문호의 아침
보문 단지 라한호텔


시가지에서 동쪽 약 10km 거리 명활산 옛 성터 보문호를 중심으로, 70년대 240만 평 규모의 온천 및 관광특구로 지정된 보문단지가 조성되었다. 우리 사회 변화와 코로나 방역 등에 의해 대규모 집단 관광은 감소하고, 소규모 그룹이나 소확행 등의 개별여행이 확산되면서 보문단지 주변의 상가는 트렌드에 맞는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규모보다 내실 있는 의미를 찾는 여행객들이 늘어나는 변화는 계속될 듯하다.


이곳 보문 호수의 최대 자산은 바로 호숫가를 빙 둘러있는 수양버들과 수양벚꽃. 봄이면 호수를 비롯 경주 전체가 온통 벚꽃 천지이다. 바람이라도 불면 꽃송이가 눈처럼 날려 환상적이다.


보문단지 중도 타워
스마트시티에서 본 중도 타워


라한 호텔 베란다에서 아침 일찍 호수를 내려다보니 벚꽃이 핑크색으로 호수를 감싸고 있다. 호텔 로비의 창 밖으로 보이는 벚꽃 뒤로 호수가 살짝 보였다. 이른 아침, 약 1시간 정도 호수 산책길을 따라  한 바퀴를 가볍게 마실 나갔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하늘은 푸르고 공기는 맑았다.

수변에 있는 작은 호수에 비치는 황룡사 탑 모형의 중도 타워(총각)와  경주 타워(처녀)의 비어있는 공간에 딱 들어맞았다. 2015년 봄에 경주시에서 두 탑을 결혼시켰다는 신문 기사가 떠올랐다.


경주타워와 중도 타워


문화 엑스포 상징물 경주타워는 이타미 준의 공모작이 도용된 것으로 알려졌고, 드디어 2020년 경주타워 디자인 저작권자로 공식 선포된다. 경주타워가 경주의 랜드마크로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은 황룡사 9층 목탑 형상을 건물에 투영해 음각으로 실존화한 디자인한 설계 때문이다.  문화예술인 저작권 보호는 물론 지적재산을 침해하는 일은 몹시 부끄러운 일이다. 그간 잘 보이지 않는 바닥 표지석을 걷어낸 뒤 가로 1.2미터 세로 2.4미터의 새 현판을 설치한 것은 당연하다.



3. 솔향 바람이다.


태종 무열왕릉과 소나무
태종 무열왕릉 주변 봉분



신라 29대 태종 무열왕은 진골 출신 김춘추로 선덕 · 진덕 두 조정에 걸쳐 국정 전반, 특히 외교 문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마지막 성골 진덕여왕이 승하한 후 화백회의 합의에 의해 왕으로 추대된 인물이다.

가야 왕족 출신으로 진골이 된 김유신은 7살 어린 왕족 김춘추와 친구로 지냈으며, 가문의 위상을 높여 결속을 다지는 기회가 필요했다. 결국 경주시가지를 오줌에 잠기게 한 꿈을 샀던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와 김춘추는 결혼을 하게 되었고, 입구에 이런 내용의 표지석이 만화로 그려져 있다.


다시는 천관을 찾지 않으려 했던 청년 김유신은 어느 날 술에 취해 집으로 가던 중 자신의 애마가 버릇대로 천관의 집으로 찾아간 사실을 알고, 그 자리에서 말의 목을 밸 정도의 결단과 의지가 강한 이야기, 옛날이나 지금이나 방법만 다를 뿐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서악동에 있는 고분 군 중 가장 아래쪽 둥글게 소나무가 호석으로 둘러놓은 곳이 무열왕릉이다.  높이 2.1m 화강암으로 제작되었으며 귀부와 이수만 남은 무열 왕릉비는 국보 제25호로 지정되어있다.

귀부의 머리는 거북 모양으로 목은 높이 쳐들고 발을 기운차게 뻗고 있어 전체는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 연꽃 위 좌우 3마리씩 놓여 있는 용이 서로 상대방의 앞발을 꼬리로 이어 좌우대칭형을 이루고 있으며, 다리, 용의 비늘 하나하나 정교한 조각을 볼 수 있다. 왕릉을 둘러싼 소나무에서 호연지기의 기상이 느껴지는 곳이다.


신라 24대 진흥왕릉



무열왕릉 뒤로 4기의 봉분이 일렬로 쭉 늘어서 있는데 그 모습이 꽤 멋지다. 흑백사진으로 촬영하면 뭐가 더 그럴싸하다. 마지막 봉분을 둘러보고 왼쪽 사잇길로 나가면 벚꽃잎이 떠있는 연못이 나오고 연못 따라 왼쪽으로 올라가면  순수비를 건립한 24대 진흥왕릉이 나온다. 진흥왕은 한강유역 확보로 삼국통일의 기초를 다졌으며, 대가야를 정복, 국사 편찬 및 황룡사를 세우고, 화랑도를 창설한 인물이다.


높이 5.8m, 지름 20m의 원형 봉토 무덤으로 된 이 무덤은 자연석을 이용한 둘레석 몇 개만이 남아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왕의 무덤으로서는 규모가 작은 편이다.


동북쪽 비탈진 곳에 서 있는 삼층탑의  기단은 정사면체 모양의 커다란 돌덩이 8개를 2단으로 쌓은 독특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1개의 돌로 되어 있고, 몸돌에는 큼직한 네모꼴 감실을 얇게 파서 문을 표시하였다. 몸돌에 비하여 지붕돌이 커서 둔한 느낌이 든다.

이곳은 가을에 구절초로 가득하다고 하는데 아마 음악회도 열리는 듯하다. 서악동 뒷산에서 마을로 돌아 내려오는 길에 따뜻한 양기가 느껴진다.  


삼릉
삼릉 소나무 숲


삼릉을 보러 가기 전, 울창한 솔숲을 먼저 만나게 된다. 구불구불한 모양이 특징인 경주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이곳은 포토그래퍼의 성지로 아침 빛 내림, 설경, 안개 자욱한 솔숲 등 작품이 쏟아져 나오는 곳이다. 소나무가 울창하여 왕릉보다 더 매력적인 곳이다.  호젓하게 솔숲을 거닐다 보면 이내 삼릉과 마주하게 된다.


사적 219호 경주 배동 삼릉은 신라인이 신성시 여기던 남산의 서쪽 기슭에 있다. 신라 박 씨 3 왕의 무덤이라 전하나 확실한 기록은 없다. 그중 신덕 왕릉이라 전해오는 가운데의 무덤은  두 차례 도굴당하여, 내부를 조사한 결과 무덤 돌방 벽면에 병풍을 세워 놓은 것처럼 색이 칠해져 있는데, 벽화가 그려지지 않은 경주의 신라 무덤에서는 처음 발견되었다 한다.


망월사
9각호 속의 석탑


뿌리가 드러난 울창한 솔 숲 따라 500미터 정도 안으로 들어가면 경주 남산 기슭에 자리한 작은 사찰 망월사가 나온다.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가 태어난 나정과 포석정이 근처에 있다.

불교가 공인된 이후, 남산은 부처님이 거처하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존중되어 많은 사찰과 암자들이 자리 잡게 되었다. 지배계층과 관련된 사찰들이 주를 이루는 경주 도심의 평지 사찰과는 달리 일반 민중들과 관련된 작은 암자 등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망월사는 1963년 창건된 원효종 소속의 사찰로, 사찰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요사채 건물 몇 동과 삼층석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63호)이 이곳으로 옮겨진 이후에 세워진 듯하나 천왕문이나 금강문 대신에 삼문의 형식이 보이고, 대웅전도 아주 단출한 느낌이다.   


9각의 연못 한가운데 세워놓은 망월사 삼층석탑, 연못 안에 탑이 있는 경우는 처음 보는 광경이다. 독특한 모양새를 갖추었다. 극락세계를 상징하는 연꽃처럼 이 탑의 지붕돌에 연꽃무늬가 있다고 해서 '연화탑'이라고도 한다.  뒤쪽에 위치한 삼성각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1칸의 규모로 내부에는 칠성탱과 산신탱 그리고 특이하게 선덕여왕을 보살로 그린 그림이 봉안되어 있다. 그 옆에 자리한 어여쁜 칠성각 또한 육각형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곳곳에 재미있는 건축물들이 많이 보였다.


 근처 식당에서 오리탕을 먹는데 독특한 절임 반찬들이 많았다. 콩잎, 석이버섯, 명이나물, 특히 머위장아찌는 향긋한 풍미와 함께 입맛을 자극했다.



4. 일상에 부는 바람이다


금장대에서 바라본 풍경
선사시대 암각화


2012년 중창하여 공개된 금장대는 서천과 북천이 만나는 예기청소 위에 세워져 있다. 형산강변을 내려다보는 풍경에 취해 기러기도 쉬어갔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경치가 빼어난 곳이다.  

금장대가 위치하는 구릉 전체는 고분군이며,  경주의 오랜 역사를 품고 있다.  넓은 평지에 가장 큰 물가에 자리하여, 선사시대 기록이자 예술작품인 암각화를 비롯, 부처님에 대한 공덕을 쌓고자 했던 금장사지, 그리고 화랑의 수련터, 조선시대 건물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적이 작은 한 공간에 모여 있다.

금장사 바로 아래에 새겨진 암각화에는 오랜 세월 비와 바람에 깎이고 씻긴 옛사람들의 흔적을 있다. 석장동에 새겨진 그림은 짐승 발자국, 사람을 태운 배 1척 등 실물을 그린 것 외에도 방패 무늬나 고깔 무늬 같이 추상적인 그림도 있다는데 탁본을 해보지 않아 선명하게 찾기는 어려웠다. 희미한 흔적이 있는 듯했으나 그저 돌벽으로 보였을 뿐이다.


예기소의 봄기운
예기소 둘레길


내려오는데 예기소, 애기청소라고 부르는 곳에 배 한 척이 떠있다. 3개의 하천이 합류하여 물줄기가 소용돌이치고 깊은 소를 만들어 낸 곳이다. 이 곳 연두색 잎들에게서 봄의 기운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테크 길이 쭉 이어져있는 예기소가 바로 1936년에 발표된 김동리의 단편 소설 무녀도의 배경이다.


서화와 골동품으로 손꼽히는 나는 할아버지에게서 부녀가 달포 머물다 간 후 무녀도를 그려놓고 떠나간 사연을 듣게 된다.   

경주읍성 외부 5리쯤에 있는 조그만 마을에 무당 모화의 집이 있다. 절간에 있을 것이라 믿었으나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어 돌아온 욱이와 말을 못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낭이 두 남매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욱이가 잠결에 성서를 찾으러 부엌으로 가 보니, 모화는 아들과 자신의 사이가 멀어지게 한 '예수 귀신'을 쫓아내려 성서를 불태우려 하고 있었다. 욱이가 모화를 말리는 순간에, 모화가 실수로 굿에 사용하는 칼로 욱이를 찌르게 되고, 결국 욱이는 모화의 간호에도 불구하고 숨을 거둔다. 반미치광이가 된 모화는 결국 죽은 여인의 넋을 건지는 마지막 굿판에서 신들린 듯 굿을 하다가 강물에 빠져 죽는다.

그 뒤 낭이는 한동안 앓아누웠고 떨어져 살던 아버지가 찾아와 그런 딸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핀 후 나귀에 태워져 어디론가로 떠나가 무녀도를 그려 남기는 이야기이다.


 삶 속에 수없이 존재하는 갈등이 있게 마련인데, 상대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끌어오거나 행동의 기어를 바꾸거나 다양한 메시지의 전달이 있겠지만, 최고의 방법은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데 있다. 모화와 욱이 둘 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설득의 과정보다 자신만이 옳다고 여기는 다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관계에서 혹은 직장에서 나도 모르게 모화처럼, 욱이처럼 행동했었을 것이다.

이제껏 살아온 내가 버려야 할 두 마리의 개, 선입견과 편견에 대해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보다.


황룡사지
분황사 옆 구황동 당간지주


분황사와 황룡사지 사이의 너른 들판은 계절별로 아름다운 옷을 갈아입는다. 매년 다양한 화초를 심어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몇 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채꽃물결이 펼쳐졌던 봄 풍경에 싱그러운 초록이 입혀졌다. 지난해부터 이 일대에 청보리를 심었다. 바람 따라 흔들리는 초록빛 물결이 온몸으로 봄을 말한다. 대표적인 경주의 봄 인생 샷 남기는 한 곳이 되었다. 청보리밭 중앙의 구황동 당간지주와 함께 한 컷을 담고, 동양 최대 사찰이었던 황룡사지를 둘러봤다. 해질녘 황룡사지에 붉게 물드는 석양과 대비되는 청보리밭을 마음에 담아보자.


황리단길
황리단길 맛집 동리


황리단길은 황남동과 이태원의 경리단길을 합쳐진 단어로 “황남동의 경리단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1960-70년대의 낡은 건물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옛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거리이며, 인근의 첨성대, 대릉원의 관광지를 함께 둘러볼 수 있어 경주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전통한옥 스타일의 카페나 식당, 사진관등이 밀집해 있어 젊은이들의 많이 찾는 곳이다.

동리는 한옥을 개조해서 만든 밥집이다. 테이블이 몇 개 안되다 보니 1시간 이상 줄 서고 기다린 후에야 먹을 수 있었다. 정갈한 한옥으로 되어 있으며 깔끔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음식 맛이 좋았다.



5. 경주 사람 카페 krug


카페 krug 외관


경주 법원과 검찰청 입구에 위치한  카페 krug에 들어서면 통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햇빛에 실내는 온통 따뜻한 빛으로 물들고, 나뭇결의 자연스러움으로 가득 찬다. 카페 krug 건실하고 젊은 사장 내외가 요란하지 않게, 소박한 듯 정겹게 맞이해준다. 깔끔한 분위기에 맞춰 입구에 놓은 청색 의자가 편하게 쉬어가는 곳임을 알려준다.  


젊은 아내는 경주 곳곳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과 경주의 특별한 풍경, 정감 있는 사진을 엽서로 전시하고 있다. 지난가을에 찍어놓은 쭉쭉 뻗은 노란 은행나무 마을과 붉은색 옷을 입은 좌판대 할머니의 엽서가 나의 마음을 뺏는다. 젊은 아내는 디자인을 공부한 인재라 청색 빛으로 경주를 걷는 사람 모양의 배지를 만들어 전시 중인데 솜씨도 뛰어나고 감각적이다.


빛이 가득한 카페 krug 내부


최근 이 젊은 부부가 '경주 걷기와 말들'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경주 오릉 근처에서 나고 자란 젊은 남편 눈과 마음에 아로새겨진 풍경은 봉긋한 왕릉과 소나무. 오래된 엽서처럼, 옛 사진처럼 남아있다. 느린 호흡으로 경주의 구석구석을 걸으며 건강은 물론 소요유를 통한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심력과 안력이 길러진 터이다. 그들에게 용기와 통찰을 주었던 걸음이 담긴 10가지 코스를 사진과 디자인으로 기록한 핸드북이 발간되어 두권 샀다.


친구야, 카페 krug 젊은 부부가 보여준 경주와 경주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곳을 우리도 가볼까!

각 코스별로 사진을 보여주고, 함께 걷는 이야기들을 담았는데 읽는 순간 따뜻함이 전해진다.


카페 krug 내부
카페 krug의 음료


카페 krug에서 마셨던 시원한 백과향의 맛이 자꾸만 자꾸만 그립다. 피와 단짠단짠한 쿠키들까지도.....

어쩌면 글도 쓰고 디자인도 하면서 경주에 머물러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용기와 신념이 더 좋았는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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