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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코의 세계문화유산

동조궁 주변, 에도 시대의 유산을 찾아서

by 손경희

혼슈의 중앙부 내륙에 위치한 도치기현 닛코시는 난타이산을 비롯한 니코국립공원 등 산지가 대부분이다. 도쿄와 가까이 있지만, 고도가 높아 평균기온이 낮다. 강원도 태백이나 정선처럼 겨울에는 춥지만, 여름에는 시원한 편이다. 마찬가지로 저출산 고령화 문제와 소비 및 생산 위축에 따른 청년층의 대도시 이주 등의 문제로 인해 2022년 80,000명의 인구가 2025년 추계 71,000명으로 감소하고 있다.

닛코를 간다는 것은 에도막부 시대 세계문화유산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도쿠가와이에야스의 묘와 위패가 있는 사당인 도쇼구, 연분을 맺어주는 후타라산 신사, 동일본 최대 목조건축물 린노지 사찰 등 주변의 자연환경 포함 103점의 건축물이 199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쥬젠지에서 출발한 버스는 닛코 봉행사 앞에서 내려 동쪽으로 서서히 올라갔다. 먼저 후타라산 신사 누문에 도착, 도리를 지나 신사 마당에 설치된 원형구조물과 배전, 정면 5칸의 검박하지만, 위용이 보이는 곳이다.

난타이산의 옛 이름 따서 신사의 이름이 후타라산 신사이다. 신사의 입구, 신교는 세계문화유산 닛코의 신사와 절의 현관이라 불린다. 투명한 청록의 물살이 굽이쳐 흐르는 다이야강 위에 완만한 곡선으로 둥글게 세워진 길이 28미터, 폭 7.4미터, 높이 10.6미터의 아름다운 붉은 다리이다. 원래 8세기에 쇼도쇼닌이 두 마리 뱀의 도움을 받아 건설되었다고 하여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쇼군과 황제의 사자만을 위한 권력의 신성화 상징을 갖고, 현재의 형태는 1636년에 만들어졌다. 지금은 300엔을 지불하면 다리를 건널 수 있다. 신교를 붉은색으로 칠한 이유는 악으로부터 보호의 의미를 갖는다.

스크린샷 2025-10-17 100947.png 신교와 후타라신사

후타라신사 참배길은 즐비하게 늘어선 삼나무들이 고요함과 엄숙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높고 웅장한 도리이로 맞이하는 이곳 본사와 쥬젠지, 산 위의 오사 등 3곳이 있는데 닛코의 다른 신사들처럼 주홍색을 사용하고 있다. 배전은 참배객들이 기도하고 공물을 바치는 곳으로 맞배지붕과 우진각 지붕이 결합된 형식이다. 단순한 주홍색 건물로 향냄새가 은은하게 스며있다. 특히 본사의 경우, 황금 토끼와 행운의 토끼들이 행복, 행운, 그리고 사랑을 이루게 한다고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300엔을 추가로 내고 들어가는 신원 내부는 다양한 구조물이 있다. 나란히 자란 두 나무는 부부의 삼나무로 원만한 부부관계를 기원하는 곳이다. 화려하고 예쁜 히에신사는 건강운, 우측에 건강의 수호신 노란 원숭이가 서 있다. 축제에 쓰이는 가마 3개 보관하는 신요사, 대국전은 복과 풍요의 신을 모시는 곳으로 금전운과 관련 있고, 봉납된 타로마루 보검이 있다.

대국전 앞 둥글둥글 마루이시(丹石) 팻말에 ‘온화하게 살면 자연스럽게 사람은 행복해져요’라는 문구가 좋다. 붕우신사는 우정과 학문의 신을 모시고, 주변 개구리 상들이 귀엽다. 경내 안쪽에는 후타라 영천, 마시면 젊어지는 샘물의 동화처럼 눈병이 낫고 젊음을 되찾는다고 한다. 옆에는 닛코산의 각 봉우리를 본뜬 바위산에 이름을 적어놓고 갈 수 없는 사람을 위한 기도 장소를 제공한다. 한쪽에 사악한 것을 베어 없애고 좋은 인연을 이어준다는 인연의 검이 우뚝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엄숙한 신들의 마을을 거닐고, 일상의 모습을 되돌아보았다. 또한 어린 시절 즐겨 듣던 이야기 속의 주인공을 만나고 온 느낌이 들었다.

스크린샷 2025-10-17 101033.png 닛코산 봉우리와 마루이시


닛코 동조궁으로 들어가는 길 양쪽에 키 큰 삼나무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차분함과 엄숙함을 너머 옛 시절 영광들이 신성함으로 포장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선으로 휘어진 미끈한 돌길, 이끼 덮인 석축은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1616년 사망한 도구카와이에야스의 유언에 따라 사후 1년 뒤 1617년 닛코의 동조사로 이장되면서 유골이 이곳에 안장되었다. 동조대권현이라는 천황의 신호를 받고, 이후 전국에 500여 개의 동조사가 건립되었다, 1634년,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사당에 참배한 후 대규모 증축을 진행, 1645년 동조궁으로 승격되었다. 메이지 초기 상당수가 철폐와 통합의 수난을 겪으며, 현재 남아있는 동조궁은 130여 개소이다. 당시의 닛코 전도의 모습에서는 주칠 단청 건물이었으나 점차 옻칠과 다양한 색상의 조각품이 장식되어 위엄, 화려함을 담은 역사적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곳의 건축물 중 8개는 일본 국보, 34개는 중요 문화재, 신사의 검 2개는 국보로 지정되었다.

스크린샷 2025-10-17 101109.png 5층 목조탑과 도쇼궁 안내도

살짝 돌아보니 입구가 보이고, 도쿠가와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석조 도리를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웅장한 석조 도리가 서 있다. 중앙부 검은 배경에 황금 글씨로 동조대권현 신호가 적혀 있다. 불이문처럼 신과 인간의 세상을 구분 짓는 붉은 경계선으로 둘러진 돌계단을 오르니, 입구 좌측에 겹처마 양식의 붉은 목조 5층 탑이 버티고 서 있다. 1650년 후쿠이의 번주 사카이 다다카스가 기부한 이 건물은 소실되어 1818년 가문의 자손에 의해 재건되었다. 높이 36m, 지름 60cm의 기둥 4면에 사슬로 매달린 형태이며, 기단석에서 10cm 떠 있어 내진 내풍 및 습기와 병충 대응 전략이 보였다. 지붕에는 화려하게 채색된 공포 장치가 드러나 있다. 5층 목조탑은 아래 1층부터 각각 땅, 물, 불, 하늘, 바람을 상징한다. 탑 앞에는 지붕에 이끼가 덮여있는 석등이 묵묵히 오랜 세월을 지켜보고 서 있다.


한참 줄 서서 기다린 후 자판기에 1300엔을 지불, 입장권을 받고 계단을 올라 오모테문 안으로 들어가니, 왼편에 보고 싶었던 그 건물이다.!! 신큐사, 산자루

신이 타는 말의 마구간, 말의 안전을 기원하며 원숭이가 조각되어 있는데, 인간의 일생 탄생과 성장, 결혼과 다시 탄생의 과정을 8개의 조각으로 표현했다. 예부터 말의 병을 원숭이가 지켜준다는 믿음이 있어 무로마치 시대까지는 마구간에서 말과 함께 사육했던 습관이 있다. 그중 눈과 입, 귀를 가리고 나쁜 것은 보지 않고, 말하지 않고, 듣지 않는 세 마리 원숭이가 친근하다. 화엄사 입구를 비롯, 곳곳에 유사한 조각이 있지만, 귀에 무게를 싣고 입을 막고 있던 라트비아의 체시스에서 보았던 조각상도 사랑받는 곳이다.

스크린샷 2025-10-17 101150.png 신큐사와 산자루

맞은편 이끼 낀 석등 사이로 고급스럽게 서 있는 자주색과 황금색의 줄무늬, 지붕 아래 코끼리 상이 조각된 상신고 외 2개의 건물이 이어지는데, 교토의 정창원을 참고하여 만든 것이라 한다. 행사용 갑옷이 3,000벌 정도 보관된 이곳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이토록 화려한 세상에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한 중층의 윤장 건물에 마음을 빼앗긴다.

스크린샷 2025-10-17 101233.png 코끼리상 부조의 상신고와 석조 도리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석조 도리를 지나 계단을 오르니 북을 치는 고로와 종을 치는 쇼로가 양쪽에 날렵하게 서 있다. 규모와 구조는 거의 비슷하나, 세부장식 외 보관하는 내용이 다르다. 우리 사찰의 범종각에도 종, 북, 목어, 운판이 있어 만물의 생명에 자비를 기원하고 있다.

그리고 중앙부에는 현판이 붙은 양명문이 보인다. 교토 어소의 동쪽 정문 양명문의 이름을 따왔다. 중국과 일본의 건축문화가 결합된 요메이문!! 가로 7M. 세로 11M, 2층 구조에 담겨있는 황금빛 웅장함과 정교하게 만들어진 508개 조각! 신화 속 동물, 인물, 꽃 등 부조 형태로 만들어놓고, 약 24만 장의 금박이 사용되었다 한다. 기둥과 천장의 섬세한 채색, 특히 흰색은 조개를 갈아 만든 호분으로 배경을 이루어 화려함이 대단하다. 기둥에는 익살스러운 원숭이, 문의 좌/우측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좌상 조각이 배치되어 있다. 당시 15,000명의 장인과 많은 인력이 동원되어 1년 5개월 만에 완공했다.

양명문 뒤편 오른쪽 기둥은 문양이 반대인데 장인이 만들어놓고, 너무 완벽한 나머지 신이 질투하여 저주 내릴 것을 두려워해 일부러 한 개를 거꾸로 제작했다고 전해진다. 너무 멋있어 바라보면 해지는 줄 모른다는 히구라시노몬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요메이문 왼편에 동인도회사에서 가져온 샹들리에, 오른편에는 조선통신사가 가져온 조선 범종이 매달린 종각이 있다.

요메이몬의 뒤편 신요샤는 미나모토노 요리모토. 이에야스, 히데요시 등의 가마를 모셔놓았는데, 가운데 도쇼구의 주신 이에야스 가마가 있다. 매년 봄가을의 행진할 때 가마꾼 55명이 짊어지는 무게는 800kg이다. 1965년에 새로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 박물관에 전시 중인 이전 가마의 무게는 1120kg이다.

스크린샷 2025-10-17 101336.png 본전에서 바라본 양명문과 신요사

본전을 수호하는 가라몬(唐門)은 천황이나 장군, 신분이 높은 귀족만 드나들 수 있었는데, 중요의식 외엔 폐쇄 중이라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갈 수 있다. 당문은 배전 바로 앞 아치형 지붕이 특징인 문으로, 역시 호분으로 하얗게 칠해 놨으며, 정면에 보이는 승룡과 강룡의 조각상이 눈길을 끈다. 문 전체를 장식하고 있는 다양하고 섬세한 조각의 수는 무려 600개 이상이다. 지붕 중앙 상단에는 있는 조각상은 금테로 고정되어 있어 밤을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을 한다. 문 앞쪽 중앙에는 고대 중국의 전설 속 황제 순임금이 앉아 있어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이상적인 정치이념에 대한 경의를 표하려고 배치했다.

본전은 거대한 용이 그려진 천장화가 유명하다. 용의 머리 바로 아래에서 손뼉을 치면 독특한 울림이 생겨 우는 용(나키류)의 음향 효과를 만날 수 있다. 에도시대 초기 바람이나 지진의 진동을 조절하는 당시의 혁신적인 기법이 적용되었다. 섬세하고 화려한 색채로 치장되어 있으며, 신도교와 불교의 요소가 결합된 양식의 특징을 보여준다. 신이 된 역사적 인물, 도쿠가와이에야쓰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화려함과 섬세함, 색채감이 돋보이는 건물이었다.

스크린샷 2025-10-17 101523.png 본전 당문과 고양이 그림

삼나무 숲이 울창한 가운데 무덤으로 가는 길, 동쪽 회랑 돌계단 입구에는 두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나무로 된 문이 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때문인지 문루 앞뒤에 새겨진 새와 고양이를 올려보며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다. 히다리 진고로의 작품으로, 모란꽃 안에 잠자는 고양이는 닛코를 대표하는 상이기도 하다. 기념주화로 제작될 정도이며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진고로는 고양이를 닛코와 이에야스의 정신을 상징한다고 생각하였으며, 해당 일화가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울지 않는 새를 두고 어떻게 할 것인가? 에 대해 오다 노부나가는 급진적이고 과감한 성격답게 울지 않은 새는 필요가 없다 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울지 않으면 자신이 울게끔 하겠다고 말했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울지 않은 새는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말로 유명한 일화이다. 고양이는 아무리 깊이 잠들더라도 경계와 사냥을 위해 실눈을 뜨고 잔다는데 눈을 감고 푹 잠들었다는 것은 자신이 잠든 묘터가 더없는 명당이라는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언으로는 ‘사람의 일생은 참으로 버거운 짐을 지고 가는 먼 길과 같다. 그러니 절대 서두르지 말아라. 인내는 무사 장수의 근본이고, 분노는 순간의 적이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해발 약 650m여 지점에 5m 높이의 청동 오사보탑이 나온다.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유해가 안치된 이 무덤은 육각형의 5단 석축 위에 4단 대리석을 쌓고, 문양을 넣은 1단 위에 철재 조형물을 올렸다. 앞쪽은 물고기를 입에 문 새와 해태상을 닮은 동물 등을 배치했고, 둘레를 돌난간으로 돌려놓았다. 이 청동탑 앞, 향로, 화병, 촛대 삼구족은 조선에서 보낸 것으로 제사에 쓰이는 물건들이다. 당시의 것은 아니며 1812년에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만든 것이다.

닛코 동조궁은 당시 조선과도 인연이 닿은 곳이다. 1636년(인조 14년) 동조궁 완성된 시점에 조선 4대 조선 통신사가 에도를 방문했을 때다. 본래 통신사들은 에도에 도착하면 쇼군을 만나 국서를 전달하고 답신을 받아 조선으로 돌아가면 임무가 끝난다, 닛코 동조궁을 방문해 달라는 강권에 의해 처음 방문한 4대 조선 통신사(1636), 처음 참배한 5대 조선 통신사(1643)와 6대 조선 통신사(1655)까지 3번의 조선통신사가 동조궁에 방문 및 참배했다는 기록과 방문 흔적이 남았다. 현재도 양명문 앞에는 인조가 보낸 동종이 걸려 있으며, 이에야스의 시신이 안장된 청동탑 앞 삼구족도 인조가 보낸 것이다. 6대 조선 통신사 때에도 막부는 다이유인(大猷院)에 걸어둘 어필을 요청했는데 효종은 ‘영산법계숭효정원’ 어필을 보냈고, 현재 린노지에서 보관 중이다.

스크린샷 2025-10-17 101557.png 조선통신사 행렬도와 도쿠가와이에야스 무덤

내려오는 길 왼편으로 거대한

린노지는 서기 766년 쇼도쇼닌이 주젠지 지역에 처음 불교를 들여오면서 사본 용사로 창건, 1655년 윤왕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소박한 오두막이던 사찰은 수 세기를 거치는 동안 아름다운 건물과 신사가 있는 거대한 단지로 발전했다.

1867년 사무라이 막부가 막을 내린 후 새 정부는 신토와 불교 분리 명령을 발령했으나, 닛코는 두 개의 신사와 하나의 사찰 시스템을 형성했다. 신토는 3대 산인 난타이산, 뇨호산, 타로산을 신으로 여겼으며, 린노지는 세 부처인 천수관음, 아미타여래, 마두관음을 이 산의 화신으로 여겼다. 일본 천태종 3대 본산 중 하나로 남성적이고 웅장한 면을 갖추었다. 15개의 크고 작은 사원이 경내 배치되어 있으며, 국보인 다이유인 등 다른 중요 문화재가 있다. 최대 규모의 본당인 삼불당에는 아미타여래, 천수관음, 마두관음이 각각 8미터 정도의 높이로 안치되어 있다.

인왕문을 지나 왼편의 이천문, 다이유인 최대 규모의 이천문이 시선을 압도한다. 검은색과 붉은색, 금색의 조화가 고급스럽다. 조부를 지극히 존경한 나머지 '죽어서도 조부를 모시고 싶다, 조부 곁에 묻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그의 사후 2년 후인 1652년에 세워졌다. 정면의 대유원이라는 편액은 고미즈오 천황의 친필이다. 돌계단을 오르면, 전망소 안내판에 ‘천계에서 인간계의 전망을 조망해 보라’는 글귀가 있는데, 이곳이 천상계임을 말해주고 있다. 또다시 만나는 금박의 화려한 문은 본전으로 들어가는 야차문으로 4명의 야차가 색깔별로 지키고 서 있다. 다시 당문이 나타나는데, 규모는 작지만, 금박의 비율이 높아서 무척 화려하다. 배전 내부 천장에는 140마리 금빛 용그림이 있지만, 역시 특별 행사가 없으면 만나보기 어렵다. 역시 세계문화유산에 포함되어 있으며, 22개의 국보와 중요문화재, 담장에 315개의 석등이 늘어서 있다.

스크린샷 2025-10-17 101656.png 거대한 니텐몬과 본전과 배전이 결합된 다이유인

그리고 등장하는 이에미쓰의 실제 영묘이다. 다이유인! 역시 출입 외벽에는 황금빛이 치장되어 있어 시선을 사로잡는다. 벽면까지 금박으로 치장되어 있어 교토의 금각사가 떠 오른다. 조부를 모시고 있는 도쇼구를 모방하지 않으려고 다른 양식과 치장으로 세워졌다. 또한 이에야스가 잠들고 있는 동조궁을 향하게 하여 존경의 의미를 표현했다고 한다. 도쇼구가 흰색과 금색을 기조로 하여 검은색의 포인트를 준 것에 비하여 다이유인은 금색과 검은색을 기조로 하여 적색의 포인트를 주었다.

린노지를 나와서 신도교에서 약 2km 지점에 위치한 닛코역까지 걸어갔다. 시가지는 규모가 크지 않았으며 전통적인 일본 건축물들이 늘어선 조용한 거리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도쇼궁 지역을 살펴보느라 더운 날씨에 많이 걷고, 이것저것 둘러보느라 배도 고파서 카스테라와 빙수를 먹으러 들어갔다. 닛코는 맑은 물과 추운 겨울 날씨 덕분에 깨끗하고 부드러운 천연 얼음으로 만든 빙수가 유명하다. 닛코의 카스텔라는 도쇼구의 화려함을 담아 표면에 금박을 올려놓았다. 말차맛을 시켰는데 촉촉하고 부드러운 식감과 은은한 단맛이 피로를 풀어주었다. 딸기 빙수는 딸기 위에 연유와 두유를 듬뿍 얹어 달콤하고 사각사각한 맛이 일품이었다. 이제 힘을 내서 센다이로 고고싱!

스크린샷 2025-10-17 101747.png 말차 카스테라와 딸기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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