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젠지 호수와 게콘 폭포
이른 새벽, 서둘러 우츠노미야 역으로 향했다. 보관소에 짐을 넣고, 여유롭고 한적한 플랫폼으로 내려가 6시 30분 닛코행 기차를 탔다. 창밖으로 스치는 촉촉한 삼나무 숲과 그 사이를 흐르는 강물은 투명한 세상을 뽐내고 있다. 북서쪽으로 약 42분 정도 달리니 닛코역 도착이다. 해발 543미터 지점이라 그런지 한여름이지만 공기가 꽤 상쾌하고, 시원하다. 맞은편에 근엄함을 갖춘 닛코 국립공원 위로 하얀 구름이 일어나고 있다.
연한 민트빛 벽면과 핑크빛기둥이 격식을 갖춘 닛코역.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로 고풍스럽고 우아하여 에도시대부터 이미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1890년 영업을 시작했으니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갖는 셈이다. 닛코국립공원 길목이라는 장점을 안고, 1906년 사철에서 국유화되었다. 도보 5분 거리 도부닛코역 앞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토요일 아침인데도 쥬젠지 호수로 가는 버스는 제법 붐볐다. 검도복 차림의 학생들과 가족들, 온천을 하려는 정갈한 노부인들. 창밖에는 깔끔한 시가지가 늘어서 있고, 둥글게 휘어진 붉은 신교와 힘차게 흐르는 하얀 강물이 한 폭의 그림이다. 50분 정도 지나니, 왼편에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쥬젠지 호수가 보이고, 이어 유모토 온천 버스 정류장 도착이다. 오른편으로 400미터 정도 슬슬 걸으니 게콘 폭포 주차장에 도착이다. 작지만 깔끔한 붉은 신사가 보이고,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니 게콘 폭포 전망대에 도착한다. 와아!! 멋진 풍경이다.
게곤 폭포는 이바라키현의 후쿠로다 폭포, 와카야마현의 나치 폭포와 함께 일본 3대 폭포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2단계 높이를 거쳐 무지개를 뿜어내며 우렁차게 떨어지는 폭포의 모습은 숨 막히는 절경이다. 여러 색으로 드러난 육각형 주상절리의 기둥들, 그 사이사이 자라는 푸른 나뭇잎들이 한 폭의 동양화이다.
게콘 폭포를 가까이에서 만나기 위해 유료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00M 지점으로 내려간다. 둥글고 습한 동굴 통로를 지나면 갑자기 거대한 물소리가 들린다. 계단을 오르면 나타나는 시원한 물보라, 크고 작은 물줄기들이 환상적인 경치를 선보인다. 97M 높이의 웅장한 폭포는 무지개까지 덤으로 보내주고 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
마그네틱과 간식, 기념품 등을 파는 매점에서 눈에 띄는 엽서가 100엔에 판매 중이다. 이야기는 1903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18세의 후지무라 미사오가 동경했던 그녀에게 다카야마 로기유의 ‘폭포로 가는 길’ 책을 건넸다. 책 여백에는 붉은 글씨로 쓰인 사랑 고백의 시들이 가득했다. 끝내 고백하지 못한 자신의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해 나무에 유서를 걸어두고 폭포에 떨어졌다. 이후 그가 나무에 걸어 남겨 둔 유서를 100엔에 판매하고 있다. 사랑, 참! 젊은 날의 사랑, 때로는 너무 뜨거워 데일 수 있다.
해발 1,269m에 형성된 쥬젠지호는 2만 년 전 난타이산이 분화하면서 만들어진 11.62km의 면적, 둘레 25㎞의 거대한 호수이다. 일본 내 고도가 가장 높은 호수로, 시원함과 청량함을 즐기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태백이나 정선처럼 여름 피서지로 알려졌지만, 가을 단풍의 아름다운 향연을 만나러 오는 사람도 많다. 호수 북쪽 난타이산은 고대부터 성산으로 숭배받는 산으로 하이킹 코스와 온천마을 등을 품고 있다. 남쪽에는 호수를 향해 가늘게 뻗은 반도가 있으며, 호수 안 고즈케 섬에는 승려 쇼도의 석비가 있다.
호수 둘레길 트래킹을 해보려 왼쪽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푸른 나무, 잔잔한 바람, 파란 호수를 바라보며 1km쯤 걷다 보니, 호수와 이름이 같은 쥬젠지(충선사)에 도착했다. 삼림 속에 고요히 자리 잡은 이 절은 784년 쇼도쇼닌에 의해 창건되었다. 주젠지 호수에서 천수관음의 모습을 보고, 그 상을 카츠라 나무에 조각했다고 전해지는 1200년 된 천수관음상이 있다. 11면 6미터, 42개의 팔로 구성되어 있으며, 온화한 표정으로 사람들의 소원을 듣고, 고통을 없애주는 자비의 부처이다. 관음 영지 18번 참배처로서 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곳이다.
계단을 올라가면, 기도의 도장인 오다이도가 있다. 오대명왕의 상을 둘러보다 천장을 바라보니, 대운룡이 마치 하늘을 떠다니는 듯했다. 소원성취의 범종, 혹이 있는 거대한 혹나무, 연명수라고 불리는 샘물 등도 있다. 소원 성취의 부처님께 드리는 500엔의 배관료가 전혀 아깝지 않다.
고도가 높아 시원한 여름을 즐길 수 있어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피서지로 곳곳에 대사관 별장과 휴양시설이 남아있다. 메이지 유신에 큰 영향을 준 영국의 외교관 어니스트 사토가 고향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주젠지호를 유달리 사랑하여 1896년 호숫가 남쪽에 영국 대사관 별장을 지었다. 2008년까지 이용되었으나, 2010년 도치기현에 기증되어 현재는 관람료를 받고 일반 공개되고 있다. 진한 빛깔의 2층 창가 자리에서 그림 같은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며, 오쿠닛코의 역사와 영국 문화 전시 및 홍차와 스콘 등을 즐길 수 있다.
닛코지역의 삼나무와 얇은 판자로 만든 체스 무늬 외관의 특별한 건축물이 보인다. 일본과 서양식이 혼합된 2층 목조건물은 기품 있는 이탈리아 대사관 별장 기념공원이다. 삼나무 껍질을 얽어 1층 천장을 만들어 공간을 구분한 건축가의 기술이 뛰어나다. 호수 주변의 고풍스러움을 즐기며 한걸음 한걸음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유모토 온천지구로 돌아와 이곳의 명물 유바 소바를 맛보려고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유바는 두유를 끓였을 때 표면에 생긴 얇은 막을 걷어 올려 겹겹 둥글게 말아서 만든 식재료이다. 깔끔한 육수와 부드럽고 탱탱한 면발이 잘 어우러진 맛난 소바였다.
버스를 타고 닛코로 돌아가는 길은 국도 120 루트. 내리막길 전용인 제1이로하자카 오르막길 전용인 제2이로하자카 고개에 총 48개의 급커브가 존재한다. 오래된 일본어 알파벳인 "이로하"에서 유래되었으며, 도로의 48개의 곡선은 그 알파벳의 각 음절을 나타낸다. 이곳의 8 자 곡선 도로는 날카롭고 급하게 돌아가는 커브로 유명하다. 닛코 자연의 풍부한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로 널리 알려져 있고, 각 곡선지역의 뷰, 주변 산과 계곡의 숨 막히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도로의 비틀림과 회전은 주의를 요구하며, 이곳을 지나가는 이들에게 스릴 넘치는 여행이 된다. 운전자와 오토바이 라이더들에게 인기 있는 경로이다. 내리막 도중에 있는 아케치다이라 전망대 케이블카를 타고 게콘폭포와 호수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닛코로 다시 고고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