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설국'의 그곳 아키타
일본 도호쿠의 북서쪽에 위치한 아키타는 곡창지대로 쌀이 풍부하고 좋으니 니혼슈가 다양하게 잘 개발되어 있다. 갓 지은 밥알을 으깨어 삼나무 꼬치에 굽는 기리탄포, 탱탱한 면발을 참깨 소스와 간장에 찍어 먹는 이나니와 우동, 그리고 눈으로 뒤 덮인 겨울 풍경이 서정적인 곳이다. 다자와코의 사탕 키스, 소설 설국으로 유명해진 혼슈 북서부 아키타를 향해 출발이다.
오전 7시 신칸센을 타기 위해 모리오카역에 도착, 기차여행의 백미 에키벤을 살펴보다 닭고기가 들어있는 아키타특산을 구입했다. 에키벤은 일본의 기차역에서 파는 도시락을 의미한다. 일본 전역에 판매되고 있는 도시락의 종류만 2000여 종 이상, 연간 판매량이 600만 개 이상이다. 오사카역에서는 100가지 이상의 에키벤이 판매되고 있으며, 전국 에키벤 경연대회가 매년 진행하고 있고, 약 300 업체가 참가한다. 2016년 수상은 아키타현의 명물 고시히까리 쌀로 지은 쌀밥에 양념을 더하고, 매콤 달콤 적당하게 간이 밴 조림 닭다리살 도시락이다.
편의점 도시락은 따뜻하게 데워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에키벤은 줄 서지 않고 기차 객실 안에서 편안하게 이동 중에 먹을 수 있고, 식어도 맛을 낼 수 있도록 진화하고 있다. 여행자들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가격 수준은 700엔!~1500엔 사이로 꽤 적정하다. 에키벤을 먹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열차로 누비고 다니는 에키벤 덕후와 에키벤 전문가로 통하는 저널리스트도 존재한다. 1885년 7.16일 우츠노미야 역에서 주먹밥을 대나무 껍질로 싸서 판매한 것이 시초라고 하며, 7,16일을 에키벤 데이라고 한다. 이후 다양한 지역에서 에키벤이 등장하며 일본 철도 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았고, 각 지역의 특색을 담은 한정판 에키벤을 맛보는 즐거움이 생겼다. 센다이에서 모리오카로 이동 중에는 우설 에키벤을 먹었고, 우츠노미야에서 센다이로 이동할 때는 주먹밥 백반 에키벤, 아키타로 이동할 때는 당연히 치킨라이스 벤토! 아오모리역에서는 가리비솥밥, 모리오카역에서는 연어와 연어알밥, 니코에서 조개와 채소로 만든 후카가와메시 등등 다양한 에키벤을 맛보았다.
지역의 맛과 문화를 체험하는 에키벤은 단순히 식사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일본 여행의 특별한 경험이다. 에키벤의 활약이 철도회사와 지역 산업의 수입원이 되고, 상호 윈윈하는 구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신칸센 ‘고마치’는 씩씩하게 서쪽으로 달린다. 오카마역을 지나면서부터 짙푸른 숲과 삼나무, 계곡과 하천 등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청량하고 좋다. 습하고 더운 여름날, 기차에서 바라보는 풍경 너머로 문득, 아키타 남부 에치고유자와 온천과 시미즈 터널이 배경이 된 소설 설국(雪国)이 떠오른다. 1968년 일본인 최초이자 아시아인으로는 2번째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가와바타 야스나리 작가는 계절의 변화를 관찰하며 자연 풍경 묘사 등을 위해 이곳에 직접 머물면서 작품을 집필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라는 소설 첫마디의 명문장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터널은 경계이면서 또한 객관의 세계에서 주관의 세계로 들어가는 또 다른 입구인 셈이다. 과거의 첫 만남, 현재의 두 번째 만남, 1년 후 세 번째 만남으로 시점이 나뉘며, 시마무라와 고마코 및 요코의 사랑과 애정의 심리 묘사와 눈 속의 마을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묘사는 이 소설의 백미이다. 온천여관에 머물며 직접 보고 느낀 것을 실감 나게 표현하여 사실성이 뛰어나다. 1년에 한 번 며칠 방문하는 시마무라를 진심을 다해 사랑하고 그에게 다가가려는 고마코의 시선, 그에 반해 그녀에게서 일정한 선을 긋고 밀어내는 시마무라의 시선, 시마무라가 기차에서 처음 만난 여자 요코를 바라보는 시선은 두 사람의 삶의 방향을 보여준다. 잠시 머물다 떠날 사람을 위해 샤미센을 연주하고 시를 읊조리고 애정과 사랑을 보이지만, 술자리가 끝나면 녹아서 사라지는 눈사람 같은 존재. 문득 사랑을 고민해 본다. 그가 머무르며 소설을 썼던 료칸은 1075년에 개업하여 950년의 역사를 가진 채로 여전히 성업 중이며, 료칸 내부에 가와바타 야스나리 및 설국 관련 자료와 당시의 방을 재현한 세트가 있다.
1시간 정도 달리다 보면 다이센 시의 오마가리역을 지나 08시 30분쯤 아키타 역에 도착한다. 역사에 들어서니 2018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붉고 파란 도깨비 ‘나마하게’와 1931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아키타견 동상이 반겨준다. 할리우드 영화 하치 이야기로 알려진 충성스러운 아키타견 하치코, 세상을 떠난 주인을 매일 기다렸던 하치코의 동상은 도쿄 시부야역 앞에 세워져 있다. 천장의 등불이 이곳이 칸토축제 고장임을 보여주고 있다.
역에서 서쪽으로 900미터 지점에 자리한 아키타 현립미술관으로 향했다. 미술관 앞마당에는 수많은 인파들이 모여 칸토 묘기대회를 펼치고 있었다. 긴 대나무 장대에 많은 등을 매달아 놓은 간토를 ‘사시테’라 불리는 실력자들이 손바닥, 이마, 어깨, 허리 등에 얹고 균형을 잡는 묘기를 펼치고 있었다. 한 손으로 칸토를 올리고 다른 쪽 팔을 넓게 펴 균형을 잡는 히라테, 이마로 지탱하는 히타이, 어깨로 버티는 카타, 난이도가 가장 높은 코시는 손가락으로 칸토를 받아서 사이사이 비켜 허리에 올려놓고, 상체를 옆으로 기울이며 발을 벌려 균형을 잡는 고난도 기술이다.
그들을 목청껏 응원하는 팀원들의 북소리와 외침이 광장을 가득 채우고, 둥글게 모여든 사람들은 으랏차 즐겁게 응원하고 있었다.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가족 혹은 친구, 직장인들 다양한 그룹이 참가하고 있었다. 지역 사회 살아있는 축제 한마당을 즐기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묘기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실수하여 눈물 흘리고 다독이는 모습들, 지켜보는 사람들 입에서도 탄식과 탄성이 흘러나오고... 등불 들어 올리기 묘기 겨루기 잔치, 실속 있는 주민들의 축제 한마당을 제대로 만났다.
여름철 병을 쫒고, 악귀를 물리치는 의미로 시작된 칸토 마츠리는 매년 8월 3일부터 8월 6일까지 운영하고 있다. 낮의 묘기대회를 거치고 밤이 되면 더욱 화려해진다. 조명이 들어온 벼이삭 모양의 등불을 대나무 장대에 엮은 칸토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사시테들의 묘기를 만나며, 260여 개의 장대등이 즐비하게 늘어선 화려한 행진이 시작된다. 칸토는 긴 장대에 등을 매달은 것으로 5미터에서 12미터 규모, 최대 46개의 장등을 들고 행진하는데 무게가 50KG 되는 것도 있다. 가히 도호쿠 지역의 3대 축제라 부를만하다.
아키타 현립미술관으로 들어가기 전, 도로 맞은편 연꽃이 넓게 펼쳐진 센슈공원으로 건너갔다. 산뜻한 바람을 맞으며, 고운 자태로 피어나는 흰색과 분홍색의 연꽃 호수를 거닐었다. 이곳은 사진작가들 사이에는 소문난 명소인 듯 곳곳에서 찰칵찰칵!! 오른편으로 돌아가면 19세기에 화재로 소실된 구보타 성 복원된 망루와 입구, 그리고 유적 표시 등이 곳곳에 서 있다. 맞은편 예술극장 밀하스는 현대적 건물로 1층 북카페에서 책을 읽을 수 있고 큰 나무들이 시원함을 더해주었다.
아키타를 찾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아키타 현립미술관!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2층으로 올라가는데 계단 구조가 세모 모양이다. 기존 미술관의 삼각형 지붕을 모티브로 삼아 디자인했다. 차와 쿠키를 주문하고 창가 1열에 앉았다. 냉방기 영향이 있겠지만, 시야가 더욱 시원한 공간이다. 그림 같은 풍경, 만나고 싶었던 공간이 눈앞에 펼쳐진다. 공간을 즐기고, 여유를 부리면서 창 너머 한계를 벗어나는 사색의 시간이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2013년 완공한 미술관은 1층의 옥상을 물로 채워 수면의 효과를 살렸다. 수면에는 하늘이 보이고, 건너편 공원의 나무와 밀하스 건물이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다가온다. 원주의 뮤지엄 산처럼 물을 이용한 반영의 아름다움과 주변의 경치를 끌고 들어오는 차경을 담았다.
이곳은 서양식 회화 작가로 널리 인정받는 후지타 쓰구하루의 작품을 다수 소장하여 전시하고 있다. 후지타는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냈기 때문에 일본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특히 365 ×2050cm 크기의 대형벽화 '아키타의 행사'는 미술관의 메인 작품으로 상설 전시하고 있다. 아키타 옛 모습과 칸토 축제 등의 모습이 담겼다. 아키타 전통 공예관은 전통 행사와 민속 예능을 자료와 영상으로 알려준다. 아트리움 전시장에는 실물 크기의 칸토 등불이 있고, 실제 손에 들고 공연을 경험해 볼 수 있다. 길 건너 아카렌칸 뮤지엄은 붉은 벽돌과 흰 벽의 조화가 돋보이고, 현대적인 세련미를 갖추고 있다.
다시 역으로 돌아와 기차를 타고 1시간 정도 동쪽으로 달리니 다자와코 역에 도착. 1번 버스를 타고 다자와코로 향했다.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남녀 주인공 사탕 키스를 나누던 장면으로 유명해진 곳이다. 15분 정도 지나니 수심 423M 에메랄드 빛깔의 고운 호수가 보인다. 성수기에 운영하는 보트 투어를 예약, 시계 반대 방향으로 호수를 한 바퀴 빙 돌아보았다. 고자노이시 신사의 붉은 도리이가 수면에 비춰 붉은 대칭을 만들어 내고, 부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거대한 삼나무의 푸른 대칭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특히, 조각가 후나코시 야스타케가 1968년에 완성한 타츠코 동상은 비취색의 호수 속에 황금빛 청동상으로 우아하게 서 있었다. 영원한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관음보살에게 백일기도를 올린 타츠코, 샘물을 모두 마셔 100일 후 용으로 변하고, 천둥과 폭우로 인해 샘은 호수로 바뀌게 되었으며, 그녀는 호수 신이 되었다는 전설을 모티브로 했다. 타츠코 공주가 목욕하는 모습으로 제작되어 우아한 선과 아름다움이 돋보였다.
바로 옆에는 타츠코를 신으로 모시는 우키키 신사가 있다. 미용과 인연을 맺는 데 효험이 있는 신사로 참배객들이 많이 찾는다. 다양한 수상 레포츠, 호수 둘레의 수많은 코스를 따라 하이킹을 할 수도 있다. 캠프장과 호스텔, 호텔도 많아 여름철 휴가지로 인기가 많다.
다시 다자와코 역으로 돌아가는 길, 역의 플랫폼에도 타츠코상이 새겨져 있다.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 보니 ‘인향 천리’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인품이나 덕행은 멀리까지 영향을 미치며, 좋은 말과 행동이 널리 퍼진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겉모습도 좋지만 내면의 가치와 품행이 아름다움의 근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