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퇴근길 문득 여행생각

세상의 모든 음악과 낯선 곳으로의 여행

by 고블린 연구소

퇴근길에는 KBS Classic FM ‘세상의 모든 음악’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즐겨 듣는다. 오픈닝 시그널 송으로 흘러나오는 ‘Tiger in the night’부터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곡은 많은 버전이 있는데, 피아노로 연주된 것도 있고 가사를 붙여서 노래로 만든 것도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주는 방송에 쓰이는 현악 오케스트라 버전이다. 여러 번 들어도 지겹지 않고, 왠지 여행자가 되어 다른 나라의 거리를 걷고 있는 기분에 휩싸이게 만든다.


‘세상의 모든 음악’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만큼 다양한 지역의 음악들이 소개된다. 티베트의 젊은 음악가들이 현대적인 감성으로 만든 명상곡이나, 아프리카 출신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부족 음악을 연주한 피아노곡을 들어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히트한 팝송을 자신들의 언어와 악기로 해석한 북유럽 연주자도 있고, 내용은 모르지만 왠지 구슬프게 들리는 포르투갈 파두도 흘러나온다.


익숙하지 않은 선율, 전혀 뜻을 알 수 없는 언어, 처음 들어보는 소리의 악기들이 다시금 낯선 곳으로의 여행 욕구를 자극한다. 코로나 이전에는 요즘과 같은 6월 하순이 되면 설레기 시작했다. 이맘때가 되면 봄철 내내 말의 번식과 출산 때문에 수고한 나 자신에게 여행이라는 선물을 주었기 때문이다. 백만 번도 넘게 검색해서 최저가 비행기 표를 찜하고, 각종 예매처를 비교 분석하면서 관광지 입장권을 예매했다. 바로 어제까지 고열로 시달리는 망아지에게 수액을 달아주다가도, 다음날 아침에는 들뜬 마음으로 머나먼 이국으로 10시간 넘게 비행하는 이코노미 좌석에 몸을 구겨 앉았었다.


클래식 음악은 잘 모르지만 베를린에서 베를린 필하모니 공연을 직관하면서 마음 뭉클했고, 덥고 습했던 싱가포르 동물원에서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하마에게 먹이를 주었다. 실비아라는 흥이 충만한 가이드와 에든버러 길거리를 누비면서 곳곳에 숨 쉬고 있는 해리포터의 흔적에 감동하기도 했다. 코펜하겐에서는 어렸을 때 막연히 동경했던 세계 해운의 절대 강자 머스크 본사 앞에서 사진 찍기에 바빴다.


여행길에서 만난 대부분의 현지 사람들은 이방인에게 관대하고 친절했다. 아무것도 안사고 뒤돌아 서는 뜨내기 관광객에도 소리 높여 ‘thank you for coming’이라고 인사해 주었고, 환승구역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는 동양인 가족에게 한참동안 자신의 시간을 나눠준 독일 할머니도 있었다. 북유럽 남자 특유의 엄청난 덩치와 팔뚝 근육을 가진 마트 직원은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우리가 필요한 물건을 구석구석 뛰어다니면서 찾아주었다.


나 자신을 위해 크고 작게 지출한 돈 중에서 지금까지도 전혀 후회되지 않는 것이 먼 곳 어딘가로 여행을 다녔던 비용들이다. 처음 가본 도시에서 아침에 눈을 뜨고, 구글 맵을 보면서 지하철에 발을 디뎠을 때의 두근거림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기억이다. 타국에서 마주친 온갖 종류의 운 좋았던 순간이나 불쾌했던 경험은 나를 좀 더 지혜롭게 만들어주는 추억이자 교훈이 되었다. 그 나이의 감성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것들도 많기 때문에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많은 곳을 가보려고 노력했다. 어서 코로나 시국이 잠잠해지고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집주인과 숙소 예약을 위해서 메시지를 주고받는 날이 다시 왔으면 좋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