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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블린 연구소 Oct 17. 2023

월병이야기

중국인 부부와의 인연.

‘월병’이라는 말을 들어봤지만 먹어본 적은 없었다. 아니면 언젠가 맛은 보았지만 그게 월병인지 몰랐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대만으로 휴가를 간다고 하니 대만인 친구가 월병추석세트를 부탁한다고 했다. 대만, 중국 사람들은 추석 때 꼭 먹는 과자라나. 원하는 상품 사진과 함께 어디서 사야하는지 구글맵으로 찍어서 보내왔다. 거기는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펑리수도 맛집이니 필요하면 거기서 사라는 충고와 함께였다.


 타이베이 시청 주변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한참 헤맨 끝에 백화점 지하에 위치한 점포에 들어섰다. 사진을 보여주니 점원이 마침 몇 개 안 남았다고 했다. 네모난 스테인리스 깡통 안에 네 블록으로 나눠진 노란색 과자들이 정성스럽게 포장되어 있었다. 가격은 1230 타이완 달러로, 우리 돈으로 5만원 정도였다. 가격은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지만, 20센티 정도 정사각형에 높이 10센티 정도 되는 철재 케이스와 과자의 부피하고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부지런히 관광지를 도장깨기 해야 하는 입장에서 쇼핑백을 따로 들기는 번거로웠다. 어떻게든 배낭에 욱여넣고 다음 목적지로 발길을 옮겼다. 9월 하순이었지만 대만은 여전히 무더웠고, 가방에 더해진 벽돌 한 개 중량은 은근히 부담스러웠다. 1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더 무거워지고, 쇼핑백을 들더라도 한 개 더 사야 할 것 같았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농촌에 일손이 부족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일하는 시골에는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사람들을 일상적으로 만나게 된다. 장씨 부부를 알게 된 것도 말목장에서다. 그 중국인 부부는 목장에 딸린 숙소에서 기거하면서 일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나 정도 되는 키에 마른 체구로 한 손에는 높은 확률로 담배가 들려있었다. 뒤에 나이를 알고 보니 나하고 몇 살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었는데, 검은 피부와 깊은 주름 때문에 은연중에 삼촌뻘은 되겠구나 생각하고는 했다. 자그마한 키의 아주머니는 항상 스카프와 마스크로 얼굴 전체를 싸매고 있어서 전체 얼굴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아주머니는 그 큰 마사를 틈만 나면 쓸고 닦고 했으며, 한 켠에 작은 텃밭까지 일궜다. 목장 사장은 자리에 없는 경우가 많아서, 진료나 검사할 때 이들하고만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복되는 일이 대부분이라 말이 통하지 않아도 크게 어려울 건 없었다. 정말 필요하면 통역기를 돌려서 거칠게라도 의사소통을 하기도 했고.


 이들 부부와 알게 되고 두 달정도 지난 일요일이었다. 번식철이라 일요일 오전에도 출근해서 검사할 농가들이 있었다. 그래도 오후에는 느긋하게 사무실 일을 하면서 쉴 생각이었다. 모처럼 맞이하는 휴일 오후였다. 넷플릭스 틀어놓고 진료기록 정리하고, 엑스레이 사진도 검토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내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장씨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어서 놀라긴 했지만, 얼마 전에 나의 목장을 수리하는데 장씨 부부가 용접을 해준 일이 생각났다. 나는 목장 사장에게 부탁한 것이었고, 부부는 어차피 일하는 시간에 와서 한 것이라 따로 사례는 하지 않았다. 물론 씨에씨에 인사를 하면서 사무실에 있던 캔커피를 건네기는 했었다.


 장씨는 스마트폰 지도를 보여주었다. 번역기를 통해서 읽은 그의 말은 ‘여기 근처인 것 같은데, 저희를 여기까지 안내해 줄 수 있어요?’였다. 얼핏 보니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도에 깔려있는 지명이 눈에 익은 것이 부근인 것 같았다. 밖을 살피니 시동이 걸려있는 트럭 조수석에는 아주머니도 타고 있는 듯했다. 선뜻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해야 할 일도 있었지만, 더 솔직히 말하면 사무실에서 쉬고 싶었다. 번식철에는 일요일이라도 한가한 오후를 맞이하기 쉽지 않다. 이런 귀중한 휴일 오후를 침범받고 싶지 않았다. ‘내가 왜?’라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워 부즈 따오.(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중국어를 말했다. 아저씨는 알겠다면서 뒤돌아섰다.


 트럭이 차를 돌려 목장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사무실 블라인드 뒤에서 지켜보았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저 사람이 만약 너에게 사업상 중요한 사람이라도 그랬겠냐는 생각이 심장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어차피 사무실에 빈둥거릴 거면서 한 시간 정도도 나누어줄 여유가 없느냐고 자책했다. 한편으론 어렵게 얻은 나의 시간에 왜 이런 기로에 서게 되었는지도 짜증이 났었다. 하지만 그때는 두고두고 그날을 후회하게 될 줄 정말 몰랐다.


 이들 부부는 바쁜 번식철에 갑자기 일정을 변경해도 불평 없이 내 스케줄에 맞춰 주었다. 드센 말들을 갑자기 마방에 준비시킨다거나, 혹은 검사시간이 늦춰져서 말을 마방에서 몇 시간 동안 관리해야 할 때의 수고로움을 잘 알고 있다. 점심때가 지나서 검사를 하러 가면 장씨 아저씨는 먹는 시늉을 하면서 밥은 먹었냐고 묻는다. 내가 아침부터 못먹었다고 하면, 진료 끝나고 내가 초음파 기계와 진료기록부 등을 정리하는 사이에 아주머니는 사라진다. 차에 타보면 어느 사이엔가 조수석에 샌드위치나 삶은 고구마와 함께 바나나우유, 두유 등이 놓여 있었다. 망아지가 심하게 아파서 대학병원에 입원하게 될 때도 있는데, 아저씨가 병원 한켠에서 쪽잠을 자면서 망아지 젖도 먹이고 수액도 맞추고 한다. 진심으로 말을 생각하는 건 나보다 장씨 아저씨라고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언젠가 아저씨의 스마트폰을 볼 일이 있었다. 배경화면에는 정통 가족사진이 펼쳐져 있었다. 아주머니 양옆으로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매가 아주머니와 팔짱을 끼고 있었다. 아저씨는 반발쯤 떨어져서 근엄한 아버지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은근히 올라간 입꼬리는 감추지 못했다. 못 본 척했지만, 복잡한 마음이 밀려들었다. 당연하게도 그 부부도 누군가의 부모이고 소중한 가족일 터였다. 혹시 그런 사람들보다 내가 조금이라도 우월하다는 속마음이 사소한 눈빛이나 무심한 행동에서 드러났던 것은 아닌지 두고두고 되돌아보았다. 남들 앞에서는 고상한 척, 교양있는 척, 착한 척했지만 무의식중에는 이기적이고, 차별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날 일요일 오후가 두고두고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아저씨 아들이요 중국에서도 공부 잘한데요. 내년에 대학교 시험 보는데 그래서 그때까지만 여기서 일한다 해요. 문제는 걔 누난데 아마 팔에 장애가 있데요. 그래서 자식들 때문에 돈이 많이 든다고 맨날 하소연하더라고요" 아 x발. 이게 무슨 소설이나 드라마도 아니고 무슨 설정이 이렇게 전형적이냐. 정말 이럴 거야? 난 언제쯤이나 어른이 될지 반성했다.


 여행을 다녀와서 추석이 되기 전에 목장을 찾았다. 선물을 건넸더니 장씨는 담뱃불을 붙이며 빙그레 웃었다. 달려나온 아주머니는 너무 고맙다고 했다. 그래도 가슴속 벽돌이 가벼워 지진 않았다. 사실 요즘도 궁금하다. 그때 가려던 곳에는 그래서 찾아갔느냐고, 거기는 무슨 이유로 가려고 했는지 말이다. 그래도 묻지는 않았다. 시동을 걸고 보니 옆에 아주머니가 텃밭에서 키운 옥수수 한 봉지가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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