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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블린 연구소 Dec 20. 2023

호찌민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보트피플이 되버린 나와 내 친구.

1. 옛날에 몽골사람은 말위에서 태어나서 안장에서 숨을 거둔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요즘 호찌민 사람들은 아기때부터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해서 평생을 오토바이와 함께하는 것 같았다. 그래선지 오토바이 위에서 모습이 항상 여유로웠다. 차량사이를 질주하는 와중에도 뒤에 앉은 학생은 어디 붙잡지도 않고 스마트폰 삼매경이었다. 짧은치마를 입은 젊은 여자는 옆으로 앉아서도 앞에 운전하는 친구와 끊임없이 조근되고 있었다. 때로는 달리면서 다른 오토바이 사람과도 대화를 하고 있었으며, 헬멧을 쓰고 엄마품에서 하품을 하던 꼬마는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처음와본 베트남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메콩강 같은 오도바이 물결이었다.


2. 우리는 고대 독문과 95학번 동기인데, 나는 제주도서 말수의사를 하고 있고, 친구는 프랑크푸르트가 아닌 호찌민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자정에 호찌민 공항에 도착하는 일정인데도 녀석이 마중나온다고 해서, 내심 이 놈이 오도바이 몰고 나오면 어쩌지 했다. 막상 입국 게이트를 나오니 친구 개인기사가 달려와서 내 케리어를 대형 승합차에 실어주었다.

 살길을 찾아서 떠났던 많은 보트피플처럼 우리도 20살때 전공과는 전혀 다른 분야에 뿌리내렸다. 안그래도 문송한 시대에 그중에서도 더 인기없는 독문과지만 난 내 전공을 후회해본적이 없다. 다른 동기중에는 전공을 살려 잘사는 애들도 있고, 그 시절에 배웠던 독일어와 문학이 지금의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 주었다는걸 느낄 때가 많다. 한가지 아쉬움이라면 그시절에 연애사를 비롯한 온갖 신변잡기때문에 전공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하지 않은 점이다.


3. LA에 코리안타운이 있다면, 호찌민에는 푸미흥이란 지역이 있다. 그곳에서 친구 소개로 고대 95학번 두 분하고 인사도 하고 식사도 했다. 우리와는 달리 공대출신이었다. 아무튼 자연스럽게 나의 이야기를 하다보니 다들 놀라거나 새롭다는 반응이었다. 하긴 내 주위에는 온통 말수의사들뿐이지만,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수의사라는 직업이 흔하지 않을 뿐더러 말수의사는 그야말로 처음 접해보는 분야였다. 본의 아니게 대학을 두번다닌 굴곡진 전력까지 더해지니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스토리가 엄청 특이하다고 생각했나보다. 남의 눈에 띄지않고 가늘고 길게 가자는게 평생의 모토였는데, 살다보니 '유퀴즈에서 혹시 섭외전화 안오세요?'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외국을 가보면 높은 확률로 그 나라에 살고 싶고, 다른 이들의 삶이 부럽기도 하다. 매년 똑같이 반복되는 제주도 금악리 프랙티스가 지루할때도 있다. 하지만 멋져보이는 해외에서의 삶도 한달도 아니고 2주 정도만 하면 사람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걸 다시 또 깨닫는다. 일도 마찬가지고. 예전에 영화에서 들었던 인상적인 말이 떠올랐다. '지금 니 구두가 초라해보이는 건, 니가 이미 신고 있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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