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힘들게 살아가기에는 길지 않은 우리의 삶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사회

by 날아라후니쌤

매일 아침 뉴스를 보게 되면 이념갈등으로 인한 의견 충돌을 확인하게 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무조건 틀렸다고 이야기합니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에도 서로의 의견을 이야기하다가 다른 사람들과 싸움이 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살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아 그렇구나.”하고 그냥 그대로를 인정해주면 됩니다. 성의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가치판단이 이루어질 때 갈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갈등이 긍정적인 것인가 부정적인 것인가에 관한 생각의 정립이 필요합니다.

과학이 발달하기 전에 천동설이 믿어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때 지동설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종교재판에서는 지동설을 이야기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실제와는 반대인 상황으로 믿고 있는 것이 맞다고 우긴 상황인 것이죠.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우스꽝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남을 험담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어떤 이유에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요? 본인의 단점은 전혀 알지 못하고 누군가를 쉴 새 없이 이야기합니다. 모든 상황을 종합 정리해보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는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소수의 의견이 무시되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생각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존중받을 수 있는 여건과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많은 사람을 험담을 하고 다니는 사람과는 과감히 손절하십시오. 나의 삶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상황을 험담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니 자신 외에는 모두 험담을 할 테니까요. 매우 악한 사람입니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좋은 방향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이해와 배려는 자신이 존중받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입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서 규칙과 규정을 만들고 살아갑니다. 물론 다수가 모두 옳은 결정을 하지는 못합니다. 때로는 소수의 의견이 맞을 때도 있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말로 정리되는 벤담이 제시한 공리주의는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의견은 무시해도 된다는 논리를 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나의 생각의 일부를 비워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만큼을 다른 사람이 채워줄 수 있도록 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일정 부분은 내가 채워주면서 그렇게 세상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모두 수용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면 같은 상황을 바라보더라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 실수로 큰 소리를 내더라도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길 수 있거든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어’가 아닌 ‘웃음을 주었어’라고 말입니다.

별것 아닌 일들로 세상을 힘들게 살아가기에는 우리의 삶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또다시 연휴를 맞이하는 시간에 이러저러한 일들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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