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무기력해지는 곳에서의 옳은 선택이란 무엇일까.
FBI에서 1년 8개월의 범죄 소탕 경력이 있었던 것이 무슨 소용인가. 오늘 나(케이트-여주인공)는 법이 존재해도 무용지물일 수도 있다는 것을 눈 앞에서 목격하고 화가 솟구쳐 올라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이런 상황을 듯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닳고 닳은 CIA요원 맷으로부터 "여기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보고 흡수하라"는 요구가 너무나도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영화 시카리오의 주인공은 케이트(FBI), 맷(CIA), 알레한드로(정체불명의 작전 컨설턴트) 입니다. 셋은 미국 국경 엘페소에서 벌어지는 멕시코 마약 소탕작전에 합류합니다. 그리고 소탕합니다. 끝.
일반적인 마약 영화라면 폭탄이 예술적으로 터지고 총알을 난사하고 수 백 명이 죽어 나가는 비주얼 가득한 액션 영화를 생각시겠만 이 영화는 너무나 현실적인, 그래서 더 비이성적이고 기괴한 영화입니다.
기괴1. 총을 맞으면 정말 저렇게 한 번에 퍽 하고 죽을 것 같은, 내가 진짜 총을 맞으면 저렇게 고깃덩어리가 되겠구나.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총알은 건조하고 끔찍할 정도로 빠르게 사람들을 죽입니다. 얌전하게 총을 맞고 죽지 않습니다. 실제 총 맞는걸 본 적이 없음에도, 다른 영화에서 총 맞는 영상과는 전혀 다른 감상을 받습니다.
사람이 총에 맞아 죽는 것 보다도 더 서늘한 것은 사람 죽이는 것을 '업무 처리하듯' 아무런 감정 없이 실행하는 사람들 입니다. 이 특수부대 요원들은 너무나 전문적으로 처리합니다. 총구를 격하게 움직이지도 않고 촤라락. 촤라락. 긴장감 없이 메마르게 죽입니다.
기괴2. 사막 한 가운데 있는 도시 엘페소. 그곳에는 마약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우리를 건드리지 마라는 뜻으로 관련자들의 신체를 훼손해서 저렇게 다리 위에 걸어두었습니다. 마치 법을 조롱하듯 너네들도 우리 건드리면 이 꼴 날 줄 알아 하는거죠.
법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살인의 권력을 무자비하게 사용하고 보란듯이 진열합니다. 우리가 영화로 알고있는 마약범죄자들은 하나같이 영화가 잘 포장을 해주었는데 드니 빌뇌브 감독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듯 합니다. 이렇게 죽여서 걸어놔도 너희의 법은 너희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묘한 뉘앙스가 서늘한 느낌을 줍니다.
기괴3. 멕시코 국경지대. 평화롭게 동네에서 아이들이 축구를 하는데 타다다다 총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모두 얼음. 사람들은 긴장한 얼굴로 총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지만 몇 초가 지나지 않아 심판의 경기재개 휘슬이 울리면서 축구는 다시 시작합니다.
어린이들의 순수함과 무법의 폭력이 공존합니다. 삶은 법질서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지만 어린 아이들의 축구 경기는 규칙에 맞게 잘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감 없는 현실이 영화가 주는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언밸런스한 위화감을 느낀 것은 영화 곳곳에 굉장히 많은데 스포가 너무 많은지라 중요한 몇몇 곳은 빼두었습니다.
세 장면.
인상 깊었던 세 장면을 골라봤습니다.
초반부에 차량이 시내를 달리는 씬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뭔가 굉장히 날카롭고 와일드하며 둔턱을 넘을 때 조차 속력을 줄이지 않는 긴박감이 있습니다. 차량 다섯대가 따닥따닥 붙어서 달리는 그 모습인데 앞뒤로 무장 경찰들이 더 붙습니다. 약간 의아했던 것은, 이 장면이 꽤나 깁니다. 장장 6분입니다. 의미없어 보이는 그 부분이 있으므로 해서 영화의 전체적인 배경이 느껴집니다. 대화도 별로 없습니다. 몇 분간은 대화도 아예 없습니다. 계속적으로 도시의 분위기만 보여줍니다. 기관총을 장착한 멕시코 경찰들의 위협적인 모습과 황량한 황토색의 도시의 속살이 정말 어떤 색인지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아주 멀리 떨어져서 찍는 샷입니다. 목소리도 멀고 테이크도 깁니다. 멕시코에서의 불법적인 행동에 대해 케이트가 항의하는 장면인데요. 그런데 이걸 보고 있자면 내가 멀리서 저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 현장에 내가 있는 것 같은 느낌 말이죠. 몰입도가 높습니다.
마약 카르텔의 주범도 자기 가족과는 화목합니다. 매일밤 다른 가족을 죽이는 인간이 이렇게 가정적으로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괴리감은 오랜만이네요. 그렇지만 알레한드로가 도착하자 죽을 것을 예감하는 듯 경직된 모습입니다. 저는 마약 범죄자라면 모름지기 산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더럽고 누추한 움막 수십채가 있는 곳을 생각했는데, 저택이네요. 이 후로는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여기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