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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목 Jun 03. 2018

에세이, 엣세이, at say

    글을 쓰는데 이유가 있었던 적은 없다. 이것은 욕망이었고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삶의 일부였고 하지 않으면 안 될 의무 같은 것이었다. 자려고 누우면 글자들이 살아 움직여 머리 속에서 돌아다니느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일어나 글을 쓰려고 하면 그들은 언제나 흩어져 숨어버렸다. 그렇게 글쓰기를 시작했다. 어떤 방법으로 써야 하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쓰기 시작했고 산으로 가는 글을 그대로 바라보며 어떻게든 글을 마무리했다. 분량을 신경 쓴 적도 문장을 신경 쓴 적도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은 단순해졌고 생각이 단순해지는 만큼 문장도 간결해졌다. 문장을 잘 쓰는 책을 읽어본 적이 있지만 그것이 내 글쓰기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시행착오를 거치게 되니 나는 내 글을 쓰고 있었다. 


    말하자면(at say) 30대 중반부터 시작한 글쓰기가 40대를 넘어가는 중인 것이다. 소설을 쓴 적도 시를 쓴 적도 없다. 그저 생각을 정리하고 하루의 감정을 글로 쓸 뿐이었다. 일기와는 다르게 생각을 깊이 다루고 그날 무얼 했는지 시간순으로 정리한다거나 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저 생각, 생각의 과정에 대해 썼다. 내 머리에서 문학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은 접었다. 문학성이 필요 없는 소재 위주의 글이라면 모를까. 재미 삼아해볼 만은 하겠지만 그것이 가능하리라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아니 생각은 했었다. 나도 언젠가는 단편을 쓰면서 나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이다. 


    마음을 따라 시작했을 뿐이고 그저 내 삶의 결이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글쓰기에 노력을 기울인 적은 없다. 그저 A4 한 페이지를 채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썼던 것뿐이다. 내용이 쓰레기 건 뭐건 상관없이 분량을 채워도 보고 심혈을 기울여 딱 한 줄만 적어보기도 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체계적인 과정으로 글을 써보기도 했다. 뭐가 됐든 글은 나왔다. 다행인 것은 글을 혼자 감춰두지 않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올렸다는 것이다. 대상을 염두하고 글을 쓰는 것은 혼자만의 일기와는 다르다. 일정 수준의 형식과 퀄리티를 갖춰야만 하기 때문이다. 좋은 문장의 소설들이 이런 글을 쓰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글의 느낌과 정서, 문장에서 느껴지는 태도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다양한 문장의 시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누군가 보면 형편없는 수준이겠지만 실상은 그것조차도 몸부림이었다. 그런 연습의 과정들을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어디론가 향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까지나 연습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이상이 나올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과정 만으로도 만족하며 즐겁게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과정에서 얻어지는 좋은 경험들이 내 삶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성공을 인생의 어느 한 순간에 만난 최고 전성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럴리는 없을 것이다. 성공은 과정의 결과이며 마침표일 것이다. 판가름은 죽었을 때 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연습 외에 다른 무슨 할 말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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