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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목 Oct 25. 2018

기대되는, 기대되지 않는

기대되는 것이 없다는 건 뭔가 삶의 한 부분을 버티게 해주는 기둥이 점점 가늘어지고 있다는 기분을 들게합니다. 가늘어지다가 어느 순간에는 부러질 수도 있을것입니다. 어렸을 때는 소풍 가는 것 만으로도 너무 즐겁고 신이 나서 전날부터 들뜨고 기대가 되는 것이죠. 아침에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씻고 옷 입고 일찍부터 기다리는 그런 설레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샌가 그런게 정말 사라진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어제 레슨 받으시는 분과 얘기하다보니 문득 알겠더군요. 그나마 저는 일을 유동적으로 하니 틈틈이 즐거운 것들을 하려고 하는 편이어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다 하더라도 나름 즐거운 삶이긴 합니다만, 그분은 잠깐 생각해 보더니 그래본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했습니다.

분위기가 그닥 심각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만 한 번은 생각해 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설레는 일이라고는 별로 없어서, 해외 여행을 간다고 해서 심지어 제 꿈인 우주 여행을 가서 지구의 모습을 본다고 해도 그렇게 기대되고 설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와 정말 대단하구나 하며 감탄은 하겠지만요. 인생 최고의 꿈이라고는 해도 잠못자고 설레는 일이란 이제 정말 없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나이가 들면 설레는 일들이 점차 사라지긴 하는것 같습니다. 살면서 많은걸 겪게되면 시간이 갈수록 역치가 커지기 마련이니 나이를 먹을수록 감흥이 떨어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 같아 보입니다. 개인의 취향이나 반응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질 얘기인 것 같기도 하고요. 감정적으로 요동하는 편은 아니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동대문역사역에서 헤어졌고 저는 전철을 타고 집앞에 도착해 걸어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메세지가 하나 왔습니다.

"손 꼽아 기다리진 않아도 수요일에 기타배우는 건 좀 기다려지는 시간같아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생각해보니 16년 9월쯤 처음 왔어요. 이렇게 오래 있어도 괜찮은가 싶게."

그러게요. 어느덧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네요. 그런데도 여전히 기다려지는 시간이 된다니 그 말이 보람이 됩니다. 가을 소풍처럼 기대와 설레임이 지속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일 빨리 마치고 기타 치러 가야지" 라는 즐거움이 삶의 한켠에 잘 가꾸어지고 있다면 그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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