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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목 Jul 20. 2019

인생 곁다리

"기타 왜 치세요?"

사람들이 기타를 치는 이유가 무엇인지 도저히 모르겠어서 물었다. 많고 많은 취미 중에 통기타라니. 프라모델 조립하는 취미처럼 모으는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운동처럼 몸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며 영어 공부처럼 인생에 중요한 지식이 되지도 않을 기타를 왜 배우려 드는지 그것이 궁금한 것이었다. 배워서 공연을 할 것도 아니고 목적성이 뚜렷한 것도 아닌 취미인데 무엇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길래 기타를 배우려고 하는 것인지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기타를 치고 싶어서 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러서부터 통기타는 집에 굴러다니는 장난감 같은 존재였다. 있으니까 조금 뚱땅거려보고 엄마가 사온 기타 교본을 펼쳐서 G코드도 한번 잡아보고 손가락이 짧은 초등학생이라 광활한 지판위의 기타줄을 제대로 누를 수 없었다는 것에 아쉬워 하며 그렇게 그저 집안 어디엔가에 쳐박혀 있었던 일상의 소품이었을 뿐 내 삶에 들어온 적이 없던 것이 기타였는데 정신을 차린 어느날 나는 기타를 안고 있었고 내 앞에는 열심히 C#m코드와 사투를 벌이는 여성분이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냥요"

그녀는 코드가 잘 잡히지 않아 집중하던 찰라에 들어온 질문이라 시덥잖게 대답을 했고 인생을 목적성 없이 사는 것이 가장 큰 죄라고 여겨왔던 내 삼십대 세계관을 사정없이 깨뜨리는 발언을 했다. 그냥도 치는구나 기타를.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심심한데 기타나 한번 배워볼까?라는 굉장히 사소하고 의미 없는 일상의 즐거움을 찾아다니는 사람을 이해하기는 커녕 목적이 없다면 기타를 왜 배운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기타를 그냥 배우는 사람들의 속 마음은 어떨까.

"재미 있어요? 배우는거?"

"치는게 재밌어요. 일 끝나고 뭔가 배우러 다니는 그런 느낌도 좋고요."

C#m코드는 초보가 잘 잡을 수 있는 코드는 아니다. 많은 노래에 등장하지만 제대로 잡고 연주하는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고 소리가 잘 나기는 커녕 제대로 잡지 못해 좌절하고 심지어 그만두는 경우도 생긴다. 그런데 그녀는 꿋꿋이 노력을 한다. 일단 손가락으로 자세라도 잡고싶은 마음이 간절해 보였다. 손가락이 작아 바레코드를 잡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지만 검지를 꼿꼿이 세우고 나머지 손가락을 열심히 구부려서 필요한 위치를 누르면 영락없이 검지도 함께 구부러지는 일이 반복됐다. 마음같지 않다.

"원래 C#m코드는 소리가 잘 안 나니까 신경쓰지 마시고 손가락이 코드를 누를 위치에 적당히 이동할 수 있도록 움직여서 누르는 연습만 해 보세요."

한 시간 내내 C#m가 들어있는 연습 곡을 연주한 그녀는 레슨을 마친 후 물을 한 컵 마시고 집으로 돌아갔다. 잘 치겠다는 생각이 없다는 건 뭘까. 궁금해지기 시작했지만 혼자서는 그걸 알 방법이 없었다. 기타를 가르치려면 잘 쳐야 했기 때문에 레슨 때 사용할 곡들도 연습하곤 했지만, 돌이켜보니 나 역시 연습이란 걸 딱히 해본 적이 없는지라 어찌보면 나도 잘 치겠다는 생각이 없이 기타를 쳐 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잘 해야된다는 생각이라든지 실수해서는 안 된다는 경우는 살면서 얼마 되지도 않았고 음악을 전공하지도 않았으니 압박감 심한 음대 입시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며 기타를 삶의 곁다리에서 쳐왔던 것이다. 언제나 기타는 내 옆에 널부러져 있었고 누가 치건 말건 그 자리에 항상 널부러져 있었다. 기타줄은 언제나 높이 솟구쳐 올라와 있어서 수리를 받아야 했지만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그저 기타를 뚱땅거리며 칠 뿐이었다. 손가락이 조금 아프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원래 있던 곳에 팽개쳐 놓으며 어후 기타가 왜이래?라고 생각하며 곧바로 일상으로 빠져드는 것이었다. 그녀의 대답과 내 생각이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별다른 목적성을 가지고 살았던 것은 서른 즈음의 아주 짧은 기간이었을 뿐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목적 없이 대충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있으면 하고 없으면 안 하고 돈 벌면 좋고 안 벌면 안 좋고의 반복이었던 삼십대였던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나에게 기타를 왜 치느냐고 물었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뭐, 있으니까. 그냥 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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