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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목 Jul 30. 2019

일은 왜 하게 된 걸까.

몰라서 묻는 게 아니잖아요.

9개월 이상 일을 엄청 하다가 일이 뚝 끝나버려서 할 게 없길래 그간 하지 못했던 자잘한 일들을 하나씩 해 치우며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 나간 며칠이었다.  미뤄놨던 일들을 하나씩 들춰내니 그래도 역시 하나하나가 묵직하니 양이 많다. 저녁엔 지인들을 만나 맛있는 것을 얻어먹고 또 얻어먹었다. 불과 지난주만 같았어도 안 나갔을 만남인데 일이 없으니 나가기도 하고 그렇게 된다. 얻어먹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일에 대한 이야기건  남녀 간의 이야기건 이것은 우리 모두의 살아있는 이야기다. 이렇게 사이가 좋아도 우리가 일로 만났다면 관계가 지금처럼 좋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건넸다. 일이라는 것이 돌아가는 현실은 왜 비인간적이 된 걸까 생각해 보았지만, 답은 더 멀리에 있는 것 같고, 혼자 일 하는 게 적성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내가 권이 만큼 어렸을 적에는 세상이 온통 작았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의 세상이란 학교와 집, 교회와 동네 골목 정도의 거리 정도, 그리고 가까이 살고 있는 친척집의 위치 정도뿐이었다. 이 정도로 작은 세상에는 힘든 일이나 걱정거리 같은 것은 없다. 겨울이 되면 연탄불에 올려둔 커다란 물통을 내려 옆집 친구와 쫄쫄이를 구워 먹는 것부터 시작해서 동네 친구들과 눈싸움을 하고 딱지 먹기를 하고 공부할 의지 같은 것은 하나도 없어서 뭐 재밌는 놀이 없나 동네방네 친구들 찾아다니는 게 일이었다. 그러다가도 저녁나절 어머니가 밥 먹으라는 소리가 대문 앞에서 울려 퍼질 때 즈음에야 친구들도 흩어졌고 집에 들어가 식구들과 같이 밥을 먹고 저녁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신나게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면 내일은 또 뭘 하며 놀지 고민을 하다가 잠에 골아떨어지곤 했다. 삶이나 생계에 대한 고민이나 걱정은 하나도 없었고 대학을 졸업하고도 없었다. 


가정이라는 튼튼한 울타리가 나를 보호해 주기 때문이었고 그 과정 사이에서 나는 아무런 생계의 걱정이 없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안건 그 이후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생계의 현실에 맞닥뜨리고 나니 엄마 아빠라는 든든한 버팀목의 자리에 내가 대신 들어가야 하는 걸 미처 몰랐었다. 사회가 그렇게 돌아가고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몰랐고 그렇게 이 도시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에서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까지 타협하고 사는 것일까 마음속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것이 뭔지도 모르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삶을 살아가다가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한참이 지나 정신을 차려보니 나 역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어떤 것이 나의 삶을 이끌어 줄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시키는 일을 해서 내 삶의 앞가림을 해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반 친구는 그때 이미 술 담배도 했고 집에서 아버지가 시켜서 연탄배달도 마다하지 않고 했었다는데 그렇게 인생의 무계를 먼저 알게 되었을 때 기분은 어땠을까. 사라진 동심은 누가 찾아줄 수는 있었을까. 


사람이 자라서 일정한 나이가 차면 어른이 되는 것이 사회적인 약속이지만, 그러자마자 완충 없이 생계에 내 팽개쳐지게 되면 사회에 발을 내딛자마자 이리저리 얻어터지다가 제정신이 들어 고개를 들었을 때 이미 지나간 10년 20년은 과연 제대로 된 내 삶이었을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돌이켜본다면 내가 나답게 살았던 때가 어린 시절밖에 없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다. 오직 나로서 존재하던 시절이었고 그 심연의 밑바탕에 그렇게 굳건히 나로 존재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문득문득 어렸을 적이 생각날 때마다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보다 성숙한 시민 사회의 일원이 되어가지만 그 속에서는 응당 지켜야 하는 내 동심까지도 생계에 매몰되는 사태는 막아야 되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나는 혼자 일하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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