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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목 Feb 10. 2016

무언가를 배우는 방법.txt

다 똑같지 뭐,

배움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비슷하다. 기본 원리는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듯 천천히 하는 것이다. 천천히, 자기 페이스대로 배우는 거다. 어떤 아이는 만으로 3살이 넘어도 말을 잘  못 하는데 그렇다고 아이가 장차 자라 말을 못 하는 일 따위는 없다. 어떤 아이는 8개월부터 말을 시작했지만 방금 전 그 아이와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순간이 되면 기본기라는 것은 비슷해진다. 그리고 그것 만으로도 실력이 된다. 내 것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손에서 놓지만 않으면 그것은 어느새 내 손에 들어와 있다. 말하기, 글쓰기, 그리기 등이 비슷한 맥락이다. 


기본기. 학습목표나 진도가 없었으면 아마 나도 수학을 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수학의 기본기가 없으니 평생 잘할 수 없을 것이다. (배우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만약 햇볕 따뜻한 어느 봄날 창가에 앉아서 열심히 손짓 발짓을 해가며 즐겁게 산수 문제를 풀고 있을 그때 혀를 끌끌차던 선생님이 그 자리에 없었다면, 느린 나에게도 수학을 즐길 시간이 한 학기 정도 주어졌더라면, 초등학교 1학년 1학기의 산수 시험처럼 나는 언제나 100점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본기 자체만으로 즐기는 경우는 다양하다. 앞서 말하기와 그리기 등이 그렇다. 아기가 처음 말을 할 때는 다들 영상으로 찍고 친정어머니에게 전화하고 난리가 난다. 계속 말하라고 시키고 귀엽다고 칭찬하고 그리고 더 해보라고 재촉한다. 어버버~ 하는 말도 아닌 말을 들으면서 냉정한 잣대를 들이밀지 않는다는 것이 조금은 생경하다. 반대로 초딩들이 그림을 그릴라치면 아이고 이게 무슨 비행기냐 낄낄 하면서 비아냥 댈 터인데. 아기들이 말을 하면 칭찬을 받는다. 실력이 비해 나이가 적다면 우리는 칭찬을 받는다. 신동들이 그렇다. 6살 아이가 영어를 하면 어른들은 놀란다. 20세라면 모를까 6세 아이가 저렇게 유창한 영어라니. 하면서 말이다. 


어른이 되면 이러한 칭찬을 받기가 힘들다. 27세의 여성이 처음 그림을 그려본다고 하면 남에게 보이기 부끄러울 것이다. 동료들에게 그림을 보여주면 일단 꺄하하 이게 뭐야 소리를 듣게 마련이다. 30세의 남자가 기타를 처음 배운다면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이 부끄러울 것이다. 이미 우리는 부끄러움이 뭔지 안다. 초등학생만 되어도 안다. 기본기를 배울 수 없게 되는 때가 있는데 그것은 누군가에게 부끄러움을 당했을 때다. 그러므로 상대의 미숙함을 인정해주고 격려해줄 수 있는 환경이라면 실력이라는 것은 내 것이 된다. 기본기를 닦을 수 있는 환경에서 우리는 자라야 한다. 


무언가를 배울 때는 기본기를 쌓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 부족할 때 우리는 욕을 먹는다. 남자들은 군대에서 이것을 겪어서 잘 안다. 여자들은 여군들만 알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비인간적인 처사임에도 우리는 이것을 가지고 사회로 나가 부하 직원이나 우리 자녀들에게 그대로 사용한다. 그것도 못하니, 이 병신아 그렇게 해서 이거 언제 다 끝낼래, 방금 가르쳐 줬는데 그걸 왜 못해, 한 번만 더 실수하면 그땐 정말 죽는 거야. 사회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실수가 아님에도 지금 당장 고수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다그친다. 미숙함은 죄가 된다. 미숙함은 죄가 아니다. 


우리는 평생을 배우는데 처음부터 잘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바로 앞의 일에만 집중하고 하나를 완성하면, 다음 하나를 완성하고 또 하나를 완성하며 그 과정에서 재미와 흥미를 느낄수록 우리는 천천히 기본기를 쌓게 된다. 그제야 자신감이란 게 생기고 내 실력으로 들어와 내 것이 된다. 안심하게 된다. 무얼 배우든 이것은 마찬가지다. 자전거를 배우거나 만들기를 배우거나 보드를 배우거나 언어를 배우거나, 길고 긴 실패의 시간이 쌓여야 한다. 어버버 한 아가들은 말을 시작하자마자 칭찬을 받았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미 어른이 된 우리는 이해력도 있고 인지 능력이 있으므로 칭찬만이 동기부여는 아니다. 설익은 밥을  떠먹지 말고, 있는 그 자체로 느긋하게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말하기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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