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안경 - 오기가미 나오코

고속도로를 달리면 지나가는 풍경을 볼 수 없다.

by 윤현민
아무리 성실히 한다해도
휴식은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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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아닌 행동들을 두 시간이나 보고 있자면 이게 무슨 영화인가 싶을수도 있다. 다섯이서 앉아서 몇 분간 빙수만 먹는다거나 이쪽 화면으로 등장해서 저쪽 화면으로 지나갈 때까지 수 십초를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영화가 바로 안경이다.

우리는 주말을 기다리고 휴일을 고대한다. 나만의 시간을 갖거나 쉬고 싶어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티비를 본다거나 뒹굴거리는 시간이 우리는 필요한 것이다. 몇달 전에 비행기 티켓 예약하고 그 날만을 고대하며 설렘으로 기다리는 이유도 일단은 현실을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직히 생각해보면 그것은 단순히 일상을 탈출하고 싶은 일탈이 아닌 그러지 않으면 그자리에 쓰러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서 나오는 기제인 것이다. 본능적으로 사람은 소모되는 것을 안다.

그래서 무작정 떠나기도 하고 여행을 하기도 하고 거처를 옮기면서 새로운 삶을 맞이하려 노력한다. 나를 살리기 위한 본능적 움직임이다. 때로는 직장도 그만 두면서 나를 찾아 떠나는 갖가지 모험에 스스로를 맡긴다. 그리고 그곳에서 맞닥뜨리는 것은 모두 동일하다. 나, 그리고 사색이다.

그것은 상당히 생소한 일이다. 어떤이는 나를 맞닥뜨리면 당황스러워 하거나 회피한다. 기존의 삶 속으로 다시 기어 들어가 안락함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주인공처럼 쓸데 없고 무거운 가방을 거추장스럽게 끌고다니면서 과거에 연연하게 된다. 사색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생길 때부터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 못생기고 성격 더럽고, 질척대고, 때론 한 없이 감정 조절이 안 되고, 다 퍼붓고 싶은 부끄러운 나의 모습 말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내가 제일 잘 알지." 라고 얘기하는 많은 사람들은 실제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무방비 상태인 나와 맞닥뜨렸을 때, 나에 대해 사색할 때, 정말 내가 원한 모습이 어떤 것인지 비로소 그림을 그려가게 된다. 확고했던 나 자신의 신념들이 하나씩 무너지면서 온전히 내가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고서야 비로소 침전되어 나를 맞이하게 된다. 심플하고 담백한 나. 이 외에는 어떤것도 연연하지 않게 된다. 삶에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우리는 너무 많은 힘을 쓰고 있고 어떻게든 잘 하려고 노력하고 애를 쓴다. 그래서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해 초초해하고 걱정으로 밤을 지새운다. 누군가의 시선에 신경쓰며 더 좋아보이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영화 안경은 인생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천천히 풀어내고 있다. 문제는 이것을 단어로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느리게 그리고 섬세하게 보여준다. 강의하듯 구구절절 설명 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를 살아가는 것으로 얘기한다. 삶을 느리게 살 필요가 있는 것은 생각보다 우리 삶이 너무 빠르고 목적지로만 가려하기 때문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면 지나가는 풍경을 볼 수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차를 타고 가다가 무심결에 자신의 안경을 바다에 떨어뜨린다. 하지만 이미 그런 것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니까. 진짜 나를 구성하는 것은 사색으로 이루어진 나 자신이니까.


초조해 하지 않으면 언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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