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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목 Dec 29. 2016

1,000 걸음쯤은 걷습니다.

한심함을 넘은 근육 수축수준.

눈이온 연트럴파크

걷는 일이 좀처럼 없어 점심을 먹을 때면 언제나 멀리 있는 식당을 간다. 이 시간이 하루 중 유일하게 혼자서 길게 걷는다. 출퇴근은 자가용으로 하며 일 할 때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책상 앞을 지킨다. 삶이 정적이고 격하지 않으며 살며시 다니는 것이 일상이다보니 격정적인 경우가 없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더 빠르고 활기차게 걸었다. 그렇게 맥도날드로.


평소엔 연트럴파크를 걸었다. 추워지면서 그만 두게 되었는데 역시 걷는 것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런 운동도 하지 않고 가끔씩 스트레칭을 조금 할 뿐이었다. 도대체가 아무런 운동도 하지 않았다. 걷는 것이 유일한 취미이자 생각의 시간이다. 전국의 아재들이 등산복을 걸치고 마르고 닳도록 다니는 등산도 NO. 웨이트 트레이닝도 NO. 자전거도 NO. 나는 그저 걷는다. 그것이 나와 가장 잘 맞는다.


처음엔 생각하기 위해 걸었다. 운동을 하려는 의지는 전혀 없으므로 스스로 걸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던 중 걷는 것이 생각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어디선가 읽고 나서부터 점심을 먹은 후 30분간 걷기 시작했다. 봄 부터 가을까지 별 일이 없으면 걸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의도적인 생각이 아닌 자유로운 생각. 그냥 떠오르는 것을 생각하고 따라가는 것. 인식을 흐름대로 놔두는 것이다. 의도한 생각을 떠올리지 않고 그저 걷다보면 음 꽃이 피었네 개울에 물이 너무나 The Love군. 강아지가 내 다리를 핥고 있군 같은 상황이나 의식 저 너머에 있던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잠재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 핸드폰은 꼭 꺼야 한다. 흐름을 방해하는 유일한 요소는 순간의 전기 스파크 같은 무의식적 반응에서 온다. 카톡 카톡을 듣고 본능적으로 화면을 봐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로서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은 깨지게 되고 현실로 강제 소환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핸드폰을 꺼야 한다.


많은 것을 떠올렸다. 지금의 상황, 사업적인 생각들, 어떤 주제에 따른 내 의견, 생각 차이 다른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추측, 감정, 난 그때 왜 그랬을까 자괴감이 들고 괴로워. 으응? 잠자리네. 등등의 모든 망상같은 것들은 다 떠오른다. 내재 되어 있던 내면적 부산물들이 약속이나 한 듯 천천히 모두 떠오른다. 그렇게 움직임은 두 발에 맡긴 채 머리는 내면을 여행한다. 그러니 30분이 생각보다 짧다. 그렇지만 더 걷지 않는다. 이 이상은 운동이 될 것이기 때문에.


아이폰 건강앱을 열면 하루에 1,000 걸음도 걷지 않는 경우를 직면한다. 나는 걷기를 포기한 것인가. 열심히 움직이자를 외치며 밥 먹으러 가면서 하루에 10분, 왕복 20분을 걷는 것이다. 이 추운 겨울에도 꿋꿋이 멀리 있는 식당을 찾아 다니며 걷는다. 간신히라도 살아있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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