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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목 Apr 09. 2017

마음이 안전한 공간. 서점.

서점은 마음의 거울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북트 방명록

장사가 안 되고 매출이 팍팍한 나머지 서점에서 책 읽기를 불허하는 곳들이 생기는가보다. 책을 안 사고 읽기만 하다가 나가면 눈에서 레이저를 쏴대거나 불편한 심기를 마음껏 내 비치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 불똥이 광화문 교보문고 넘어갔다. 책을 읽게 못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서점이 출판사 책으로 생색낸다는 이유다. 그렇게 읽기만 하면 책은 금새 너덜너덜 해진다. 출판사나 거래처 눈치볼 것 없이 반품한다고 한다. 이 피해는 고스란히 출판사가 진다. 화가 날만도 하다. 


이 이야기는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손님) 이야기와 얼추 들어맞는다. 판매자에게 피해가 돌아오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스타벅스가 발 디딜틈이 없다. 커피만 팔거면 테이크아웃을 해야 하고 자리를 만들었으면 허용하는 것이 옳다. 주인장 마음대로 사용 용도를 제한하고 가위질 하는 순간 그 공간은 사용하기 불편한 공간이 된다. 행동을 제한하는 문장이 벽에 걸리는 순간 고객도 떠난다.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내 의견은 사실 단순하다. 공간에 감정적 대응이 일어나지 않으면 선뜻 들어가지지 않는 것이다. 책을 사는 행위는 상당히 복잡한데 (그 어떤 구매도 단순함은 없다. 심지어 충동 구매조차도 복잡한 심경이 중복적으로 생겨난 결과이다.) 일종의 허들(저항감)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먼저 해결해주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서점에 들어가서 책을 사지 않는다는 얘기다. 한 번이라도 주인장의 불편한 심기를 느낀다면 그 사람이 다시 그 공간을 찾을 확률이 과연 있을까. 없을 것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주변에 알려서 거기 사장이 나를 불편해 했다며 적극적으로 어필을 할지도 모른다. 


서점을 하려는 사람들은 공간에 대한 일종의 환상이 있다고 본다. 실내 디자인이나 포인트가 되는 굉장히 주목성 있는 아이템들, 아니면 계속 오게할 상품들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안목으로 선택한 책들이 셀렉트된 서가에 가지런히 꽂혀있으면 뭔가 있어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걸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고 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서 그 공간을 교류하며 사용해야 한다. 그러면서 여기가 내 마음이 편히 쉴 수 있는 곳인지를 살핀다.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는 곳으로 사람들은 발길을 옮긴다. 


도서관이 아닌 서점에 사람들이 가는 이유는 '새 책'이 가장 빨리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번엔 무슨 책이 나왔나 보고 싶고 또 좋은 책이 있으면 구매하기 위함이다. 반대로 도서관에는 신간이 꽤나 늦게 입고된다. 누군가 재빨리 요청하지 않으면 말이다. 그것도 다른사람이 빌려가면 그걸로 끝이니까 언제 책을 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예약걸면 2-3주 정도 걸릴지도 모르고) 그러느니 차라리 서점을 가는 것이다. 


'좋은 책을 구매한다'는 얘기를 앞 절에 썼는데, 그것은 나와 결이 같은 다른이의 생각을 집어드는 것과 같다.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 나를 발전시켜줄 글들, 이야기에 본능적으로 끌린다. 과거에 읽었던 것이 현재의 나를 만들고, 읽고 싶은 책들은 미래의 나를 만들어 갈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서점에서 '최신판 나'를 접하게 된다. 그리고는 기꺼이 돈을 지불하여 읽고 만다. 서점에서는 마치 거울처럼 책을 들여다보면서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기대감에 서점을 찾고 사람들은 책을 고르고 읽는 것이다. 


기대감을 가지고 달려가는 서점. 그런 사람들을 받아줄 수 있을만큼 서점은 마음이 넉넉해야 하고 마음이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안전해야 한다. 심리적인 안정감은 인테리어에서도 느낄 수 있고 점원의 행동에서도 느낄 수 있고 진열되어 있는 책의 종류, 소품등으로도 느낄 수 있다. 모든것에서 총체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책이 단지 판매 상품으로만 유통되는 시절이 저물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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