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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목 Aug 27. 2017

생각만 해도 넘나 기쁜 것

  대학교 이후에 처음으로 그림이란 걸 다시 그려본 것은 가족과 함께 갔던 제주에서다. 우리는 2주간 있었으므로 이곳저곳 천천히 돌아다니며 제주를 즐겼고 밤에는 숙소 근처 카페에 들어가 이야기하며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렸다. 나는 사진을 한 장 찾아서 노트에 밑그림 없이 그냥 그리기 시작했다. 묘사랄것까지는 없고 그냥 보이는 대로 그림을 그린 것이었다.


  전에는 이렇게 그려본 경험이 없었는데 그림을 조금씩 완성하다 보니 아 이게 일정한 모양을 갖추면 사진과는 다르더라도 비슷한 느낌을 주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굴이 그랬다. 이전 같으면 그리다 말았을 전혀 엉뚱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전체를 그려놓고 보니 뭔가 비슷한 그런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그리다가 완성을 한 적이 없었다. 그리다가 아닌 것 같으면 말았던 거지. 그게 그림뿐이었나.


  그러한 생활을 십수 년째 했다. 공부, 사업, 글쓰기, 콘텐츠 제작, 원고 작업등 나의 삶에서 하다 만 것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다행히도 몇몇 것들은 혼신의 힘을 발휘하여 마무리를 할 수 있었으나 언제나 문제는 그 '혼신'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정상적으로 하면 마무리할 수 있는 것들을 나는 혼신을 기울여야만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랬던 나인데 어느 순간 끝까지 마무리를 잘 짓고 있는 모습을 그림 그리면서 본 것이다.


  9년간 사업을 하면서 내가 많이 변해 있었다. 마무리라는 걸 하는 사람이 되었다니. 책도 세 권 냈고 기타 강좌도 꾸준히 업데이트하게 된 것이다. 마무리를 하려고 노력하기는 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에너지를 많이 쓰지는 않았던 것이다. 내가 별로 인식하지 않을 정도라면 평범한 수준의 마무리였다는 것을, 다는 아니더라도 얼마만큼은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정도까지는 성장한 것이다. 나이 마흔에야 다른 사람들 수준까지는 오게 된 것이다.


  나는 더, 더, 조금 더가 싫다. 성격이 받쳐주질 않는다. 관심이 성과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들 하는 것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천천히 내 갈길 가는 것이다. 혼신은 가끔만 해야지. 대신 마무리가 없는 일들을 시작해야 겠다. 그게 그림 그리기, 글쓰기, 생각하기, 생활 같은 일들이다. 정말이지 생각만 해도 넘나 기쁜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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