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봄 일본에서 유학을 할 때였다. 대학을 들어간 후에 나는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알바 소개 책자를 보며 긴자의 한국식당 몇 곳에 전화를 했지만 대부분은 일본인 학생을 원했다. 나는 긴자거리를 돌며 몸으로 부딪쳐 보기로 했다. 좋은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나는 고민은 시간을 두고 하되 확신이 서면 바로 행동으로 옮긴다. 그러나 24살의 나는 서울의 명동 격이었던 긴자의 세련된 거리와 가게, 화려한 사람들 모습에 호기심을 안고 긴자 거리를 이 잡듯 뒤졌지만 원하는 곳을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지금이야 어디를 가더라도 넘치는 한국 음식점이지만 그때만 해도 많지 않았던 터라 유학생이 좋은 주말 일자리를 찾기란 여간 힘이 드는 일이 아니었다.
그때 나는 왜 그리도 그곳을 훔치며 다니고 싶었을까. 지금의 시간은 지나면 다시 오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하며 긴자 거리의 냄새를 마음껏 탐닉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마도 아시아 변방에서 온 청년은 자신의 목마른 호기심을 발산하기 위한 장소가 필요했을지도 모를 일이었을 것이다. 마음먹은 일은 쉽게 포기하는 기질이 아니었던 나는 온종일 긴자 거리를 휘젓고 다닌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마침내 한 고급식당 문에 붙어 있는 아르바이트 모집 안내문을 발견했다. 서슴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게 안은 오후 시간이라 한가했다. 아르바이트 문의 차 왔다고 하니 마른 체형의 매니저가 반갑게 다가와 나를 가게 한편으로 안내했다. 잠시 후 그가 오더니 그는 몇 가지 질문을 건네고 한 후에 일해도 좋다고 했다. 책상에 앉아 손가락과 입만 움직이는 것보다 몸으로 직접 부딪치는 현장에 더 빠른 길이 있다는 것을 다시 알게 했던 기억이다.
가게에는 일본인 아주머니가 3명, 재일 한국인 2세 아주머니와 일본인 매니저, 나보다 2살 많은 담배를 좋아하던 일본 여학생이 있었다. 버블이 붕괴되기 시작하기 직전의 긴자의 밤거리는 눈부셨다. 통유리를 통해 감빛 조명이 은은하게 비추된 바에서 양주 마시는 직장인들과 바텐더의 모습은 기억이 생생하다. 이때의 경험으로 나는 주위에 음식점이나 카페 등 요식업을 하려는 이가 있으면 일본을 가보라고 조언한다. 음식은 눈으로 먹는다는 일본인들의 가게를 체험하면 실패할 확률을 줄일 수 있다고 말이다.
주말마다 오후 5시에 가게로 가면 저녁으로 고기를 먹었다. 고기의 질은 그전에 이케부꾸로에서 아르바이트했던 곳보다 좋았다. 왜 고기가 이렇게 연하냐고 매니저에게 물어보았더니 일본의 소는 사료에 맥주를 첨가하니 그렇다고 했다. 그렇게 1년 동안 주말이 되면 긴자에 갔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쉽게 일자리를 검색할 수 있다. 최첨단을 달리는데 지금도 간혹 건물 사이에 있는 식당가를 지나다 보면 ‘주방보조 구합니다. 홀 서빙 구함’ 같은 안내 문구가 눈에 띈다. 그럼에도 현장에 가야 답이 보이는 경우는 많다. 거래처나 고객 관리를 위해서는 책상에 앉아 전화통을 붙들고 있는 것보다 직접 만나고 확인하는 것이 우선돼야 하는 일이 태반이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업종이든 사람 마음을 움직여야 길이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 대상이 기업 담당자든 일반인이든 말이다. 2022년이었다. 국가행사를 수행하는데 타 기관의 협조가 필요할 때가 많지만 어디 뜻대로 되는가. 그날도 타 기관의 협조요원을 구하는데 애를 먹고 있을 때였다. 협조를 구하던 기관이 인력이 부족해 더 많은 인력을 차출할 수 없다는 답변이 왔다. 담당은 연이어 수화기를 돌리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인력 협조를 구하는데 전자 공문 한 장 보낸 후에 원하던 답변이 오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그녀의 모습에 답답했다. 나는 담당 계장에게 직접 가서 설득을 해보면 다를 것이다, 협조를 받을 때까지 계속 가서 사정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만나서 대화하다 보면 해결책이 보이지 않겠냐고 했다. 그는 주저했다. 설득하는데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과거로부터 몸에 익은 습관에서 벗어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나는 담당이 아니지만 양해를 해준다면 내가 같이 가서 도우겠다고 했다. 그는 그럼 같이 가보자고 했고 우리는 협조를 구할 수 있었다.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시간은 삽시에 되돌릴 수 없는 과거가 되어간다. 빠른 손놀림을 자랑하는 소매치기가 있다 하더라도 시간의 은밀한 속도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그래서 시간은 존재하지 않고 단지 관념 속에서 느끼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우리는 과거에 사로잡혀 나오지 못한다면 어떨까. 시간이 훔쳐가 버린, 다시 찾아올 수 없는, 그 시간을 붙잡으려고 말이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노릇일 것이다. 과거와 미래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할 수 있는 용기를 내며 생활하는 것이야말로 오늘을 품격 있게 맞이하는 데에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