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시간을 묵묵히
최근 들어 아내도 고구마를 먹는다. 먹고 나면 체기가 올라온다고 멀리했던 아내다. 걷기도 열심이다. 나는 달린다. 헬스장에 가서 근력운동도 열심이다. 딸은 어엿한 직장인으로 성장해 간다.
겨울이다.
새벽, 공원이다.
걷는다.
달린다.
시간이 불어온다.
설렌다.
따스하다.
걷기만 하다가 달리기를 시작한 지 두 달이 되어간다. 걷고 걸었다. 건강을 위한 산책은 글쓰기의 퇴고의 기능이 추가된 지도 몇 년이 흐른다.
18년 전이다. 술과 담배로 잃어버렸던 건강에서 다시 온기를 느끼기 위해 걷고 걸었다. 아파트 단지 뒤편의 조그마한 산에 올라 걷는다. 시간이 불어온다. 설렌다. 공기 중에 희망이 피어오른다.
다음날에도, 또 다음날에도..... 그렇게 서서히 온기를 나는 되찾아 간다.
2025년이다. 달려볼까. 무릎은 괜찮을까. 망설이다가 결정한다. 달리기로.
새벽, 공원이다.
달린다.
겨울바람이 인다.
시간이 불어온다.
설렌다.
희망이 타오른다.
그때처럼.
여수다. 주말에 새벽이 되면 아침문을 열려고 집을 나선다. 학교 운동장으로 간다. 형과 누나들이 있다. 국민학생은 내가 유일하다. 그들의 맨 꽁지에서 운동장 문을 나와 오동도로 향해 박명에 달린다.
어둠이 걷히어 오자 오동도 다리 위다. 바다를 나는 바라본다. 해안선을 가르며 아침 해가 올라온다. 푸른 바다를 그가 태운다. 소년의 가슴이 타오른다. 설렌다. 따뜻하다.
1990년 일본이다. 겨울방학 때다. 새벽이다. 오토바이에 오른다. 뒤에는 전단지가 가득한 신문지 150부가 놓여있다. 집집마다 우체통에 신문 넣기를 한 시간 정도 지나자 해가 아침 문을 연다. 저 평야의 지평선을 태우며 올라온다.
나는 그를 바라본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시간이 불어온다.
설렌다.
따스하다.
59다. 근력이 떨어진다고 시간이 말을 걸어온다. 걷기와 달리기의 지속을 위해 근육이 필요하다. 시간이 불어온다. 건강한 삶으로 시간을 타고 싶다고..... 누구에게도 의지 안 하는 삶을 위해 달린다. 18년 전에는 할 수 있었을까. 그동안에 쌓인 시간의 힘으로 오늘을 달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밥 대신 고구마를 나는 자주 먹는다.
장모님과 식탁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데 아내가 호박고구마를 삶아 내놓자 뜨거운 호박고구마를 호호 불며 내가 말한다.
"살살 녹아요. 아주!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요. 기가 막힙니다, 어머니."
장모님은 갓 쪄서 나온 호박고구마가 뜨거워 모락모락 김이 나오는 속살에 연신 호호하며 말씀한다.
"자네가 아주 말을 맛있게 하네. 하하"
"하하하 그래요? 어머니 호박고구마는 폐에도 좋아요."
"아. 그래? 그럼 자주 먹어야겠네."
"제 건강 회복에 큰 도움을 준 것이 바로 이 호박고구마잖아요."
20년이 되어간다. 건강에 탈이 나고 그때까지의 시간과 이별을 해야만 했다. 나의 내적 외적 대변혁이 필요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웠다. 술과 담배와 헤어졌고, 어떤 모임에도 불참했다. 딸과 아내를 위한 절박한 심정이 온몸을 휘감았다. 짜고 매운 것을 멀리 해야 했기에 호박고구마는 최적이었다. 몸무게는 10Kg 이상이 빠졌다. 체력 회복이 중요했다. 미래보다는 지금, 현재에 충실했다.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딸이 성인이 되어 최소한 영어로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한 아내에게는 휴식 시간을 제공해 주고 싶었다. 그렇게 기러기 생활을 시작하며 호박고구마와 내 몸은 자연스럽게 둘도 없는 친구사이가 되었다.
어릴 적 어머니가 담그신 김장김치에 고구마 한 입. 베타카로틴 함유량도 높아 폐에도 변비에도 좋은 이 녀석은 내게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존재가 되어간다. 큰 냄비에 물 가득 붓고 불의 강약 조절을 거쳐 1시간 이상 푹 삶는 호박고구마. 물렁물렁해 체할 일도 없거니와 입에 살살 녹아들어 가는 그 맛에는 품격이 있다. 노력과 정성을 들인 것은 등을 보이는 법이 없듯이...
호박고구마는 그렇게 '건강지킴이'로서 내 건강을 유지하는 데 소리 없이 그 역할을 잘 수행해 주고 있다.
직장이나 모임에서 "내가 도와줘서 잘 해결된 줄 아세요."라고 얘기하는 이들을 본다. 칭찬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공치사를 해버리면 그 고마움이 반감한다. 반면, 호박고구마가 나의 건강을 묵묵히 지켜주듯, 깊은 강 속에서 조용히 흐르는 강물처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주변에 도움을 주는 사람에 대한 감사는 그 배가 된다. 연말이 되면 얼굴 없는 천사가 없는 이들을 위해 현금다발을 복지센터의 출입문 앞에 놓고 가는 소식을 언론보도로 접할 때도 그렇다.
하루는 아침 일찍 나와 사무실 청소를 하는 계약직 직원을 보면서 그녀의 동료들이 "너는 굳이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라고 했다는 그녀의 말이 생각난다.
소리 없이 긴 시간 동안 선을 행하는 이에게 행운이 찾아가리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그것은 온 우주가 알고 있다는 확신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나중에, 그녀가 한 국가기관에 무기 계약직으로 취업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보내왔을 때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