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일상에서의 용기

by 김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내가 가장 먼저 하려고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주님께 드리는 감사기도다. 주님이 주신 시간에 감사하며 이렇게 나는 기도한다. ‘오늘 이렇게 새날을 맞을 수 있도록 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유혹에 연약한 제게 오소서.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


하루가 지나 한 주가 되고 한 달이 흐르며 일 년의 시간들의 반복 속에 노래한다. 하루를 마감하고 저녁에 기도를 하는 시간에는 다음 날에 올 새벽에 설레며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코로나로 입원 후 산책을 다시 시작한 지가 4개월 정도가 지나간다. 처음에는 산책 자체로서의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마음에 휴식을 제공하고 건강을 위해 느리게 걷는 행위만을 의미했다. 이 신체의 동작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운동으로 진화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전부터이다.


집 앞 공원은 700미터의 둘레길이다. 그곳에 갈 때마다 여섯 바퀴 이상 걸으려고 한다. 4킬로미터 이상을 걸어야 건강에 효과가 있다는 어느 의사의 말에 동의해서다. 네 바퀴째 때까지는 별 느낌이 없다가 다섯 바퀴째로 접어들면 몸이 가벼워지고 걷는 속도도 빨라진다. 물론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근육이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가 나의 뇌를 자극한다.


여섯 바퀴째를 돌고 나면 어김없이 들르는 곳이 있다. 산책길의 하이라이트다. 화장실에서 작은 생리적 행사를 치르는 것이다. 이 맛에 산책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설레는 시간이요 몸은 거짓말을 안 한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신장 기능이 활성화하여 몸의 독소를 빼주듯 소변이 맑고 거품은 안 보인다. 이렇게 산책할 때마다 나는 신체의 신비스러움에 감탄하는 순간을 반복하여 체험한다. 선물 같은 시간에 감사할 따름이다.


공원에는 여러 이웃들이 모인다. 그들 중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것은 여기만의 특징인지는 모르지만 가정주부들이 압도적이다. 산책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느릿느릿 가는 사람, 걸으면서 핸드폰에 열중인 사람, 달리는 건지 걷는 것인지 잘 구분이 안 가는 걸음걸이, 수다 떠는 데에 더 열중인 주부들, 간혹 남편과 나왔는데 서로 뭐가 그렇게도 맘에 들지 않았던지 급기야 목청을 높이며 싸우다가 먼저 간다면서 휙! 하고 뒤돌아 가는 아주머니 등 다채롭다. 주 하느님이 주신 여러 삶처럼.


그들 중에 유난히 조용하며 부드럽고 힘차고 빠른 걸음걸이를 하며 걷는 한 여성이 있다. 걸음걸이는 마치 야생마가 걷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힘찬 것을 넘어 위풍당당하다. 순간 무릎이 시원찮아서 마음껏 걷지 못하는 아내의 걱정도 하며 '아! 내 아내도 저렇게 걸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러움 섞인 혼잣말을 해본다.


그러면서 그녀처럼 나도 빠른 걷기를 시작해 본다. 처음에는 힘들었다. 나름 운동 좀 했다고 생각하며 지냈던 나는 '나도 참 운동을 멀리하고 살았나 보다. 이렇게 느리다니!'하고 중얼거리며 걷는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 그분이 보이면 나는 천천히 걷다가도 빠르게 움직였다. 따라잡아보기라도 하듯이. 그러나 쉽지가 않았다. 그녀가 워낙 빨랐다. 걷기에 분명 상당한 내공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걸음걸이도 그분처럼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반복 행위가 습관이 되기 시작하고 오늘도 걷기와 러닝을 병행하며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하체 근육의 움직임을 경험한다. 이러한 반복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건강에 대한 간절함에서 출발하여 시간이 지나며 보이는 신체의 변화에 대한 설렘이 아닐까.


음식도 언어도 시간을 두고 곱씹으면 맛이 남다르고 깊이가 있다. 주님의 이름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매일 주님의 이름을 음미하면 그분이 우리 마음으로 들어와 쌓인 먼지들을 쓸어버리지 않을까. 산책 후에 몸의 독소가 땀으로 빠져나오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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