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와 격려가 있는 시간
일상에서 만나는 설레는 시간은 언제쯤일까? 초등학교 때 첫 등교일과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날은 설레지 않았을까? 기대와 긴장 등의 감정들이 오간 날이었을 것이다.
살면서 설레던 순간은 많았다. 일본 유학길에 도쿄 나리타 공항을 나와 외로운 공기를 마시며 신칸센에 오르던 일, 대학 합격 통지를 받던 날, 이성친구와 첫 데이트 하던 날, 첫 직장에 출근하던 때, 결혼식장에서 사회자가 “신랑 입장” 하는 소리에 식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걷던 일 등이다. 딸이 세상에 만난 시간은 설렘과 희망으로 단연 가득했다.
새로 만나는 시간, 장소, 사람 등에 우리는 설레기도 긴장도 한다.
휴직 후 새 발령지로 출근하는 첫날이다. 시곗바늘은 오전 6시 35분을 가리키고 있다. 지하철 안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 시간에 경의선 열차를 타는 것이 처음이다. 낯설지만 사람들이 하나 둘 내리기 시작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다. 1991년 일본 도쿄에서 학교를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던 기억이 떠오른다. 오전에 있는 첫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일찍 집을 나서 학교로 가는 내내 지하철 창밖으로 보이는 미증유의 광경에 설렜다.
추억 속에서 깨어 보니 시간이 어느새 오전 7시를 훌쩍 넘기고 있다. 열차 안에는 곳곳에 빈자리가 많이 보인다. 다음 역에 도착할 때마다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차갑다. 열차 안의 한쪽에 젊은 남녀의 대화소리도 아스라이 들린다. 정거장에 멈출 때마다 건너편 철로를 지나가는 차량의 바퀴에서는 삐익!ㅡ하는 소리는 요란스럽다. 창문 너머로는 성냥개비 모양을 한 길쭉한 아파트들이 꼿꼿하게 서서 답답하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틈에서 감빛으로 여물어가는 아침노을이 “오늘 하루 행복해!”라며 위로를 건네는 것 같다.
최근에 나는 코로나에 감염됐다. 오랜만에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며 영화에 푹 빠져 보냈다. 그동안에 수고한 나를 돌아도 보고 격려도 할 수 있어 감사했다. 자신만의 시간은 나를 돌아보기도 하고 격려도 하고 위로도 할 수 있다. 어떤 학자들은 하루에 10분이라도 반드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광활한 들판을 배경으로 혼자 서 있는 주인공을 클로즈업하는 대서사의 영화 속 장면처럼, 그 시간만큼은 나를 격려하고 응원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 일 때 뭐 하세요?”
라고 내게 물으면 어떤 답이 나올까.
요즈음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예전에는 혼자 지낼 일이 많지 않았다. 내가 혼자 많은 시간을 지내기 시작한 것은 술과 담배를 끊고 혼자 생활하면서부터다. 아내와 딸이 외국에 있고 술과 담배를 안 하니 모임에 나갈 일도 친구를 자주 만날 일도 많지 않았다. 이때부터 나는 혼자 지내는 일에 익숙해져 갔는지 모르겠다.
오래전부터 하고 있는 산책은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퇴고 과정으로 성장해 갔다. 산책을 나가면 자연이 말을 걸어오고 어느새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들과 대화한다. 그러면서 그들과 서로 격려하고 위로한다.
나는 혼자 있어도 바쁘게 생활한다. 그 원천은 글쓰기와 산책이다. 글쓰기를 하면서부터는 시간 가는 줄 모를 때가 많다. 어쩌면 글쓰기를 시작하면서는 혼자 있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가끔 고독을 느끼며 그리운 사람이 떠올라 아쉬울 때도 있지만 모든 것을 다 가지면 무미건조한 생활이 될 것이 두려워 금시에 괜찮다고 나를 위로한다. 모자란듯하면서 아쉬움도 남아야 내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듯.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지 않듯이.
내게 주어진 시간의 가르침은 많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정이 긍정으로 변하며 설렘을 맞기도 하고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기 시작하여 용기도 얻는다. 그러면서 세상을 배려하며 공감하는 열린 마음을 갖는다.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 주어지는데, 지나면 돌아오지 않는 시간 앞에서 겸손의 가치를 배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혼자 있는 시간은 더 그렇다. 그 시간은 나와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으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줄었다. 처음 몇 번은 나와라, 그래도 얼굴 좀 보자. 라며 모임에 나올 것을 권유하다가 나는 저녁에 안 나간다. 가족하고 지내야지. 라면 어느새 연락은 성기고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아지며 그러한 날들에 익숙해져 간다.
인간관계가 넓다고 하는 사람을 주위에서 본다.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생활하기에 그의 일상은 늘 바빠 보인다. 경조사에 모임에 눈코 뜰 새가 없다. 그러한 그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 그는 자신과의 관계는 어떠할까.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을까. 어느새 주제는 나에게로 전이된다. 요즈음 나의 하루는 글쓰기로 시작하고 산책으로 갈무리한다. 글쓰기 할 때는 무아지명에 빠지면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산책은 그날 쓴 글에 대해 사유의 공간에서 언어 알갱이들과 대화하면서 퇴고를 한다.
2017년이다. 나는 혼자 기차에 오른다. 늦은 나이에 공무원시험을 통과하고 첫 발령지로 향한다. 혼자의 시간을 갖는다는 생각에 설렌다. 젊었을 때 유학을 위해 추운 겨울 도쿄 나리타공항을 나오면서 찬바람을 맞으며 다가올 파도를 해쳐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던 생각이 부유한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열차는 초록빛으로 포장한 드넓은 논바다를 지나자 몇 십 년 전 그날, 나리타에서 숙소로 가는 초고속 열차 안에서 미숙한 인공 빛으로 창문 너머를 비추던 검고 광활한 자연을 보며 걱정과 설렘이 공존했던 부드럽고 따뜻하게 너울대던 물결소리가 들린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위로와 격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