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2023년 2월에 발행했던 브런치북 <시간이 주는 힘>에 수록된 글 중에서 일부를 발췌하여 수정, 보완한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설레는 시간은 언제쯤일까? 초등학교 때 첫 등교일과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날은 설레지 않았을까? 아마 기대와 긴장 등의 감정들이 뒤섞인 날이었을 것이다. 반면 시간이 지나면서 누구에게는 설렘이 희망으로 또는 실망으로도 바뀌어 갔을 것이다.
내가 일본으로 유학을 갔을 때는 설렘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1988년 내가 유학 갔었을 때 만 해도 우리의 경제 규모는 일본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많은 유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했다. 그곳은 어학 실력을 키우는 장소도 제공했다. 많은 사람들과 접하면서 일본어에 익숙해져 가면서 새로운 단어를 알아가는 보람과 낯선 곳에서 오는 긴장감이 기다렸다.
지금까지 살면서 설레던 순간은 많았다.일본 유학길에 일본 도쿄 나리타 공항을 나와 겨울의 외로운 공기를 마시며 신칸센에 오르던 일, 대학 합격 통지를 받던 날, 이성친구와 첫 데이트 하던 날, 첫 직장에 출근하던 때, 결혼식장에서 사회자가 “신랑 입장” 하는 소리에 식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걷던 일 등이다. 그중에서도 딸이 세상에 나와 만난 시간은 설렘과 희망으로 나를 감쌌다.
새로 만나는 시간, 장소, 사람 등에 우리는 설레기도 긴장도 한다.
오늘은 휴직 후 새 발령지로 출근하는 첫날이다.그날 시곗바늘은 오전 6시 3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하철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행운이 따랐는지 빈자리 한 곳이 보였다. 덩치가 큰 두 청년의 사이를 비집고 앉으며 가방 안에서 책을 꺼내 책장을 넘기다가 차 안을 둘러보았다. 전화를 하거나 대화를 하는 사람은 없다. 열차가 철로를 지나면서 "찌~익, 덜커덩" 하는 소리만 들렸다. 그래서인지 스피커에서 역명을 알리는 여성의 목소리는 그날따라 크게 들렸다.
내가 이 시간에 경의선 열차를 타는 것이 처음이다. 낯설었지만 사람들이 하나 둘 내리기 시작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1991년 일본 도쿄에서 학교를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오전에 있는 첫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일찍 집을 나서야 했다. 대학은 3개의 캠퍼스가 있었는데 내가 전공하는 신문방송학이 있는 사회학부는 도쿄에서 야마노테선을 타고 신주쿠역에서 내려 다시 교외선(우리의 경의선)으로 갈아타고 약 1시간을 가야 했다. 가는 내내 지하철 창밖으로 보이는 미증유의 광경에 설렜다.
추억 속에서 일어나 보니 시간이 어느새 오전 7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열차 안에는 곳곳에 빈자리가 많이 보였다. 그래서인지 역에 도착할 때마다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차가웠다. 차 안의 한 편에서는 젊은 남녀의 대화소리도 아스라이 들렸다. 반면 정거장에 멈출 때마다 건너편 철로를 지나가는 차량의 바퀴에서는 삐익!ㅡ하는 소리는 요란스러웠다. 창문 너머로는 성냥개비 모양을 한 길쭉한 아파트들이 꼿꼿하게 서서 답답하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틈에서 감빛으로 여물어가는 아침노을이 “오늘 하루 행복해!”라며 내게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다.
나는 글의 퇴고를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산책을 할 때면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는 행운을 누리곤 하는데,새로운 새벽을 약속하는 저녁노을은 조우할 때마다 이렇게위로를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