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함을 견디고 시간을 쌓으면서 어떤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래서 노력은 천재를 이긴다는 말도 있다. 어쩌면 노력하는 자가 천재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일상에서 시간의 누적이라는 효과 안에는 어떠한 힘이 담겨 있을까.
나는 고구마를 자주 먹는다. 저녁 식사로 밥 대신으로 할 때도 있다. 하루는 장모님과 식탁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데 아내가 고구마를 삶아 내놓아 한 입 먹으면서 내가 말했다.
"살살 녹아요. 아주!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요. 기가 막힙니다. 어머니."
그리고 다시 뜨거운 호박고구마를 호호 불며 이렇게 말했다.
“살살 녹습니다요. 하하하 "
그러자 장모님은 갓 쪄서 나온 호박고구마가 뜨거워 모락모락 김이 나오는 고구마의 속살에 연신 호호하며 "허허 자네가 아주 말을 맛있게 하네" 하셨다.
그러자 내가 다시 이렇게 말했다.
"하하하 그래요? 어머니 호박고구마는 폐에도 좋아요."
그러자 장모님이 다시 말씀했다.
"아. 그래? 그럼 자주 먹어야겠네"
그리고 내가 또 이렇게 말했다.
"제 건강 회복에 큰 도움이 준 것이 바로 이 호박고구마잖아요."
어릴 적에는 어머니가 담그신 김장김치에 고구마 한 입. 베타카로틴 함유량도 높아 폐에도 변비에도 좋은 이 녀석은 어느새 내게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큰 냄비에 물 가득 붓고불의 강약 조절을 거쳐 한 시간 이상 푹 삶는 호박고구마. 물렁물렁해 체할 일도 없거니와 입에 살살 녹아들어 가는 그 맛에는 품격마저 숨어있다. 그렇게 노력과 정성을 들인 것은 등을 보이는 법이 없듯이 호박고구마는 소리 없이 17년간 그 역할을 잘 수행해 주고 있다.
호박고구마와 같이 나의 건강에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금주금연이다. 그렇다면 술을 끊고 내게 어떤 변화가 왔을까.
술과 끊고 안 보이던 것이(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무관심했다고 할 수 있다.) 눈에 들어왔다. 그중 하나가 돈의 가치다. 술자리를 안 하니 돈 나갈 일이 줄었다. 한때는 '그 많은 돈을 술자리 대신 우량주식을 한 주씩 샀더라면 얼마나 많은 가치가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두 번째는 건강이 좋아졌다. 퇴근 후 도착역에서 집까지 시간 가깝게 걷기를 하는 것은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술과 친할 때는 다음날에 정상적인 몸의 상태를 유지하는 하는 것이 어려웠으나 지금은 매일 정신이 맑다. 늦은 나이에 공무원시험에 도전하고 합격을 하기까지 술을 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세 번째는 담배와의 이별이다. 그 독한 냄새와 이별한 데는 술과 헤어질 때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담배를 즐기는 사람들은 알다시피 식후의 담배 한 모금은 꿀맛이다. 가족과 산책을 한 후에 항상 "먼저 들어 가"하고 골목길에 가서 담배를 피우고 집에 들어가서는 시치미를 뗐다. 담배라는 놈은 술보다 끊기 힘든 녀석이었다.
담배를 끊기 위해 얼마나 처절했냐면 이랬다. 얼마 전에 지인이 어떻게 담배를 끊었냐고 물어 이렇게 말했다.
"담배 한 갑을 사면 한 대를 피우고 나머지를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그렇게 몇 달을 반복했더니 어느 날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나머지를 버리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 아니 도대체 이 연기를 마시는데 쓰는 돈이 도대체 얼마야! 하루에 한 갑 꼴이니 한 달이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생각을 한 후로 나는 담배에 손을 안 댔고 가족과 산책을 하고 난 후에도 같이 집에 들어간다.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어졌다. 거짓을 말하면 얼굴이 빨개지는 나의 모습도 그 후로는 볼 일이 없어졌다.
한 번은 회사 동료와 대화하면서 그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이제부터 회식이 있으면 술잔에 사이다를 따르고 마실 생각입니다. 그런데 담배는 아직입니다."
그러자 나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잘하셨습니다. 술을 끊으면 그동안 안 보이던 소중한 것이 많이 보일 겁니다. 그리고 담배도 아마 끊게 될 겁니다."
집에는 실내자전거가 자리 한 곳을 차지하고 있으며 눈이나 비가 올 때 이 녀석을 탈 때면 지루함을 방지하기 위해 유튜브를 보거나 음악을 듣지만, 야외에서 하는 운동보다는 시간 가는 것이 더디고 1시간 이상을 탈 때는 무료함을 견뎌야 한다.
지루함.....
아래는 모임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고 온 아내와 얘기했던 내용이다.
"영화 어땠어?"
내가 물었다.
"별로야. 너무 지루해."
아내가 말했다.
넷플릭스에서 지정생존자라는 시리즈를 시청할 때다. 출연자들의 연기가 좋고 박진감 있는 전개로 눈을 떼지 못했던 드라마는 시즌 1, 2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즌1을 보고 난 후 시즌2를 보는데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비슷한 내용의 전개가 이어져 재미가 반감해서 끝까지 보는데 인내가 필요했던 기억이다. 다음은 극 중에 주인공이 했던 대사 중 한 문장이다.
"기다리는 것이 가장 어려워요."
목표를 달성해야 할 때에도 지루함과 싸워야 하는 경우가 있다. 늦깎이 공무원이 되고자 공부할 때는 똑같은 수험책을 10번 이상 보느라 혼이 났었다. 매일 무료함과 싸움이었다. 직장생활도 비슷한 경우가 있지 않을까 싶다. 매일 똑같은 출퇴근 길에 사무실에 도착하면 어제 보았던 같은 얼굴들에 비슷한 일을 반복하면 지겨울 때가 있다. 똑같은 것 혹은 비슷한 일들이 반복이 될 때, 누군가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 떠오르는 단어.
'기다림'
목표를 이루고자 앞으로 나아갈 때나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에서
책을 보거나 글을 쓸 때에
산책을 할 때나
산에 오를 때에도
인내는 늘 우리 곁에 두고 지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기다림 후에 찾아오는 기쁨을 맛보는 것이야말로 삶에 있어 최고의 보람 중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