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따라 다르게 흐르는 시간

by 김곤

라디오 방송의 인기 척도는 청취율에 따라 좌우된다. 청취자의 수가 많으면 진행자의 인기도 올라가고 해당 프로그램의 수명도 길다. 그 인기의 비결은 무엇일까. 배철수의 음악캠프 진행자였던 배철수 씨는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30년간 자신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 술, 담배, 그리고 저녁 약속이 없었다고 했다. 자신의 통제력이 뛰어났다는 방증이다.



여기서 잠시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가자.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것은 꾸준함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내가 매일 산책을 하는 것은 이제 15년이 넘어간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할 것이다. 아내도 나와 산책을 같이 했던 때가 있었다. 내가 건강이 안 좋았던 때다. 매일 같이 걸었다. 그러나 아내는 요즘 자주 한다. 무릎이 아파서다. 대신 자전거를 탄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 양이 많으면 차로 움직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자전거를 이용한다. 아내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한다. 생전 어머니는 건강을 위해 매일 새벽이 되면 집 인근에 있는 산에 가셨다.


재일교포 야구선수였던 장훈 선생은 은퇴 후의 건강비결이 매일 걷는 것이라고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1시간 이상은 걷는다고 한다. 건강한 사람들의 생활은 늘 규칙적이다. 자신에게도 엄격하다. 고인이 된 송해선생님은 지하철을 이용하며 몸을 움직였다고 했다.



지금은 퇴직했지만 나와 근무했던 국장님 이야기다. 그는 21살에 공무원이 되었다고 했다. 60살에 퇴직을 했으니 39년간 공직생활을 한 것이다. 성실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기간이다. 한 분야에 수십 년을 종사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한 번은 내가 물었다.

"국장님. 그만두고 싶은 때는 없었어요?"

"왜 없어. 당연히 많았지.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더라고. 그냥 이 일이 내 운명이거니 하고 여기까지 왔어"라며 밝게 웃었다.


그가 '이것 밖에 없더라고'라고 말에는 '성실'이라는 단어가 담겨있다. 40년 가까이 곁눈질 없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자부심도 묻어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은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무의식 속에 습관이 되고 운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야구팬이라면 누구가 아는 선수가 있다. 메이저리그와 일본리그에서도 활약했던 구대성 선수다.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지금도 선수로 등판하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1969년생으로 알려져 있다. 현역이라니 대단한 일이다. 일본에는 미우라 가즈요시라는 축구선수가 있다. 67년 생에 지금도 현역인 그는 90년대 일본 축구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였다. 최근 한 언론에는 그가 포르투갈리그 2부로 이적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두 선수가 오래도록 현역에 있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열정과 자신에 대한 엄격한 통제력을 바탕으로 시간을 관리했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중학교 때(1970년대 후반)는 나이가 60이 되면 할아버지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누가 할아버지라고 하면 버럭하고 화를 낼 것이다. 나도 60이 몇 해 안 남았다. 그러나 할아버지라는 호칭에는 낯설 것 같다. 아직 청춘이고 할 일도 많다. 기대수명도 길어졌다. 100세 시대가 오고 있다고 한다. 오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 아내와 모처럼 장모님을 모시고 나왔다. 커피숍에 마주 앉으며 장모님이 내 누나 소식이 궁금하셨는지 이렇게 말씀했다.

"자네는 누나하고 연락하지?"

"그럼요."

"누나 나이가 몇이야?"

"올해에 70이 되시죠."

"좋은 나이네. 나는 그때 친구들하고 여행도 많이 가고 했는데..."

"그럼요. 70이면 아직 젊죠. 한창입니다."

예전에는 이런 내용의 대화를 한다는 것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오래된 부부들은 살다 보니 같이 살 운명이 되었다고 말한다. 내가 아는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다.

"금방이야. 같이 살다 보니 50년이 넘었어. 도중에 헤어지고 싶은 생각도 수없이 했지."라며 "그래도 어쩌겠어. 운명인 것을." 하고 덧붙였다. 그 운명이라는 단어 안에는 긍정이라는 의미도 숨을 쉬고 있을 것이다. 시간은 그저 그렇게 지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은 운명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내가 22살에 일본으로 공부하러 갔을 때였다. 그때까지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우연히 어머니와 외삼촌의 대화에서 오간 한마디가 계기였다.


"우리 막내 일본에서 공부하면 어떨까요."


그렇게 시작해 일사천리로 진행한 일본유학이었다. 운명처럼 다가온 그 시간에 청춘을 걸고 스스로 결정하고 밀어붙였다.


하루는 아내가 이렇게 얘기했다.

"나 성당에서 성경공부하는데 좀 도와주라."

"그럼 나도 이번 기회에 글 좀 써볼까?"


그렇게 운명처럼 다가온 글쓰기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한때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지만 추운 겨울을 보내듯 방황만 하다가 포기했었다. 드라마 PD에 목말랐지만 이루지 못하고 회사원으로 살면서 많은 음악을 들으며 지냈던 시간이 지금 글쓰기의 초석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래는 내가 50이 넘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 때 노트에 붙여 놓고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봄날을 기다리며 보곤 했던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의 말이다.


당신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면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활용하라. 거기에 황금 같은 기회가 있다.



시간은 마음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 오는 시간이 포근하든 춥든 간에 소박하면 소박한 대로 크면 큰 대로 상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이용하느냐 아니면 이리저리 너울대냐는 오롯이 자신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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