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좋은 이유

by 김곤

우리 사회가 사이비종교 문제로 시끄럽다. 그래서 직장에서도 자연스럽게 종교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기회가 있었다. 하루는 동료들과 점심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가수 A의 아버지가 목사님이시라고 하더라고요. 혹시 아시나요?"

한 동료가 내게 물었다.

"그럼 알지요. 아마도 그분이 꽤 괜찮은 목회자라고 알려져 있죠."

내가 말했다.

"저는 종교가 없지만 그런 분이라면 인정합니다. 물론 그분을 잘 모르지만 알려진 대로 탈 권위적인 목사님이 틀림없다고 하면 말입니다."

동료가 다시 말했다.

"그렇습니다. 저는 성당을 다니지만 종교에 벽을 두고 있지 않아서 그런 훌륭한 분들의 설교를 들으러 교회도 가끔 갑니다."

내가 다시 말했다.



하루는 아내와 인근 커피전문점을 찾았을 때였다. 우리 가족(모시고 사는 장인장모님은 교회에 다니신다. 두 분도 우리도 종교에 대한 편견이 없다)이 다니고 있는 성당의 새 신부님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성당에 새로 신부님이 오셨잖아. 오늘 강론을 듣는데 권위적인 모습을 볼 수가 없었어. 새로 임명된 구역의 봉사자들을 제대 앞으로 모시고 그들과 같이 신도들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도 좋았어"

지난 주말에 아내에게 내가 말했다.

" 자매님은 강론 때 신부님도 우리와 똑같이 하느님의 부재에 대해 고민을 한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소탈하고 격의 없어 보여서 좋았대"

아내가 말했다.



권위란 무엇인가. 네이버 사전 등을 보면 남을 지휘하거나 따르게 하거나 복종시킬 수 있는 힘 또는 일정한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위신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가. 권위를 부여받으면 그것을 남용하거나 권위적인 모습을 종종 본다. 권위 있는 이가 권위적이면 그 권위는 가치를 잃는다. 직장에서는 소싯적 자신을 잊고 부하 직원들을 대하는 상사가 있다. 그들은 자신의 업적을 최고라고 여긴다. 선임이나 부하들의 업적을 별 것이 아니라고 치부하는 경향을 보이곤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것은 '갑질'이다. 식당에 가면 일하는 분들에게 막대하거나 학교에서는 후배에게 단체나 모임에서는 먼저 들어왔다고 잘난 체한다.


가정에서도 권위적인 부모들이 있다. 자녀들의 눈높이보다 자신들의 기준점을 적용해 아이들과 틈을 만든다. 권위적인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그렇게 하면 안 돼! 내가 어릴 적에는..."라는 식으로 말한다.


시대도 변했던가. 그러한 부모들은 자녀들이나 아내나 좋아하지 않는다. 황혼이혼을 하고자 하는 분들 중에는 수십 년간 남편으로부터 복종을 강요받고 그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아내들이 많다고 한다. 번 밖에 없는 인생 나도 이제 내 인생 제대로 살아보자는 의지의 반영일 것이다. 아이들이 가출하는 것은 권위적인 어른들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처절한 몸부림일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에게 부여된 권위를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높은 지위에 올라간 정치인이나 공직자, 사업가, 유명인 중에는 자신이 똑똑해서 또는 훌륭해서 그곳에 있다고 여기는 이가 있다. 자신의 노력이 성공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으나 이 세상에 과연 자신의 힘만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있던가! 거의 없지 않던가. 아니 전무할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도움 혹은 희생이 없이 이룰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그곳에는 부모, 배우자, 친구, 형제자매, 동료, 상사, 스승, 국민.... 등이 있어 가능한 것은 아닐까. 권위적이지 않은 당신이 좋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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