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은 노인이 돈이 절실하게 필요한 젊은 나를 이렇게 유혹한다면 어떠할까.
"원하는 대로 돈을 줄 테니 내게 시간을 주겠나?"라고.
그 유혹에 넘어가 돈과 내 젊음을 바꿀 수 있을까?
넷플렉스에서 패러다이스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끝까지는 가지 못했다. 주제가 너무 비현실적이고, 스토리 전개도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인상적이었던 것이, 시간을 저축도 하고 담보로 돈을 빌릴 수도 있다는 설정이었다. 영화 속에는 주인공이 아내의 시간을 담보로 돈을 빌렸는데, 그 돈을 못 갚자 은행이 담보로 잡아두었던 아내의 시간을 회수했고, 젊고 예쁜 그녀는 늙은 노인으로 변해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시간을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다."
라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돈이 많은 사람들은 죽지 않고 젊음을 유지하려고 할 것이고, 급전이 필요한 사람은 자신의 수명을 담보로 돈을 빌려야 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반면, 돈을 빌리지도 빌려주지도 않으며, 과거와 미래보다 지금에 충실하는 사람들이 행복할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가장 어려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오래전 출간된 모모라는 책에는 젊었다 늙었다 하는 호라 박사와 반 시간 앞을 내다보는 카시오페이아라는 거북이가 나온다.
'만약 나도 반시간 후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안다면 어떨까? 좋은 일이면 기쁘고 설레겠지만, 그 반대라면? 그러나 카시오페이아처럼 일어날 일을 미리 알 수 있어도 그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그곳에는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내가 하는 일에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새치가 유독 많았던 나는 20대부터 염색을 해왔다. 요즘은 머릿결에 좋지 않아 자주 하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데, 염색을 하기 전과 후를 비교하면, 오히려 흰머리가 있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낄 때도 있다.
100세 시대에 젊어지려는 욕망을 품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몇 번 가본 적이 있는 집 앞 염색방에는 매일 문전성시다. 사장님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기도 하지만 젊어 보이는데 머리 색깔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 겨울에 염색하고 났더니 사장님이 했던 말이다.
"십 년은 젊어 보이는 데요. 이러니까 사람들이 염색을 한다니까요."
젊어 보인다는 것은 듣기 좋은 말이다. 그래서 '지금'이라는 시간 안에는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자 하는 나의 마음이 머물고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래서일까. 여행도 갈 수 있을 때 가야 한다고 했던 아내의 말이 떠오른다.
지금이라는 명제 앞에서 내게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