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를 바라며

by 김곤

어느 날 무릎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

"실내 자전거를 타시면 도움이 됩니다."


"아... 네."




병원을 나서자 문득 옛 생각이 났다. 하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이라는 자부심을 어깨에 메고 다녔다. 새벽 햇살을 등에 지고 운동장을 돌았던 그 시절. 육상, 축구, 씨름, 농구, 야구 등 못하는 운동이 없을 정도의 소년이었다. 공부에는 일도 관심 없는 나를 못마땅해하신 어머니의 잔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새벽에 일어나 달리기를 했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집 앞 구멍가게에서 우유 한통을 음료수처럼 마셨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덕도 있지만, 매일 우유를 물처럼 마셨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까지 교실 , 나의 자리는 항상 맨 뒤였다. 그 가게는 공식적인 나의 우유 공급처였다. 어머니는 막내아들이 가면 어머니 이름을 대고 맘껏 먹고 마실 수 있게 했다. 그래서 친구들도 덤으로 온갖 것을 공짜로 먹을 수 있었다. 매달 말이 되면 가게에 가서 정산을 하셨는데, 어떤 달은 왜 그리 많이 나왔냐고 물어보시곤 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추궁하지 않으셨다. 내가 친구들을 몰고 다닌 것을 아셨기에.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그때의 추억 하나가 더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그날도 새벽에 일어나 학교 운동장을 돌고 바닷가에 도착해 바다를 볼 때였다.


'바다 저편에서 아침 기지개를 켜며, 온 바닷물을 태워 삼키듯, 길게 그어져 있는 해안선을 찢고 벌겋게 이글거리며 솟아오르는 아침해의 모습에, 어린 나는 감탄을 금치 못하고, 그의 웅장함에 가슴을 쫙 펴고 희망을 품는다.'


그때의 추억은 지금도 나에게 버팀목이 되어준다. 어려움을 있을 때는.




나는 언제부터인가 실내 자전거를 잊고 살았다. 그것은 정적인 것에서 오는 고루함보다 자연에서 느끼는 진보함을 좋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6년 전에 처음 만났던 실내 자전거는 얇아진 내 허벅지를 원래 두께로 돌려주지 못해도, 수술 후 건강회복에는 일등공신이었다.


한동안 멀리했던 터라 친구를 오래간만에 만난 것처럼, 무릎 보호를 위해 걷기의 진화를 위해 몇 달 전부터 실내 자전거를 타고 있다. 예전에 페달을 밟았을 때보다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16년 전 신장 이식을 하고 난 후 살아야 한다는 목표가 있어 가능했다면, 지금은 나의 하체를 한 단계 진화시키기 위한 행위에서 오는 행복감이 더 각별하다.

이전에도 무릎이 아팠던 적이 있다. 10년 전쯤이다. 공원에서 내리막길을 달리는데 갑자기 왼쪽 무릎에서 우직...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후부터 무릎에 통증을 한동안 달고 살았다. 유년 때 무리한 운동으로 수술을 했던 이력이 있어 늘 조심했던 자리였다. 그 후로 한동안 산책도 멈추었다. 그리고 다시 걷기를 10년.




일 년 전부터 시작한 글쓰기. 그날 공원이나 길가를 걷는 것은 단순히 건강을 위한 기능에서 언어들과 산책하는 사유의 시간으로 진화해 갔다. 글쓰기를 하고 난 후에 산책을 나가면 부유하는 문장들을 메모하기 위해 발걸음을 멈추고 가고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허벅지의 근육도 두꺼워지고 사유의 힘도 단단해졌다. 그렇게 걷기는 글쓰기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어느 날 찾아온 빨간 신호. 이번에는 오른쪽 무릎이다. 10년 전 그때처럼. 산책을 멈춘 후 달이 지나고, 실내자전거를 타기 시작한다. 전에 타며 가지고 있던 지루함을 버리고 몰입을 가져오니 자전거 바퀴의 돌아가는 속도는 더 , 자연에서 사유와 산책을 위한 의지는 궤적을 그려갔다.


다시 미치도록 걸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글쓰기도 그리 되길 바라고,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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