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 단호박수프를 먹었다

by 김곤

오랜만에 서울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보았다. 예전에도 있었던 일이지만 무릎이 아픈 후로는 가지 못했다. 내가 명동을 가는 이유는 미사를 보러 가는 것 외에 한 가지 목적이 더 있다. 바로 걷기 위해서다.


예전대로라면 경복궁역에서 하차하여 광화문을 가로질러 종로, 청계천, 을지로를 거쳐 성당으로 간다. 그러나 오늘은 그곳들을 생략하고 을지로 3가 역에서 내렸다. 무릎이 아직 온전하지 않고 아내가 감당할 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귓가를 스치는 일본어를 들으며 지하도를 지나, 계단을 올라가자 성당에 도착한 시간이 11시. 웅장한 전자 오르간 소리에 한 주간을 돌아보고 성당 문을 나서는 시간이 12시. 손목의 묵주 팔찌가 별로라고 했던 말을 기억했는지 아내는 나를 데리고 선물방으로 간다. 이것저것 해보지만 왜 그리도 다 큰지 아니면 큰 키에 비해 내 손목이 얇아서인지 죄다 맞지 않아, 마음을 비우고 지금 것에 만족하기로 한다.


그리고 몇십 년 간 명동의 한복판에서, 코로나가 창궐할 때도 유일하게 기다란 줄을 만들었던 그 칼국수집으 발걸음을 재촉한다. 역시 가게 앞에는 사람들로 북적여 분점으로 가보지만 그곳도 마찬가지. 포기하고 갈까 하다가 아내와 나는 본점 앞 대기 대열에 합류한다. 잠시 우리의 순서가 되어, 칼국수와 콩국수를 하나씩 주문하고 공짜인 사리는 추가. 각자가 두 가지 음식을 푸지게 맛보는 데는 최상의 조합. 우리 부부다.


잠시 후,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 틈을 지나 그곳을 나오고, 다음 행선지는 명동에 오면 꼭 들르는 햄버거 집이다. 아내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고 하지만. 아내와 딸이 있던 싱가포르에 가면 꼭 먹었던 추억도 있고 해서 나는 이곳에 오는 것이 좋다. 가게 안 2층으로 올라갔더니 자국산 햄거버집에 있는 일본인의 모습을 보고 일본에서 대학 다닐 때 한국식당을 찾던 옛 추억이 문득, 떠오른다.


"아침에 학교 가는 길에 집 앞 식당에서 먹었던 카츠동은 달달했고, 오전 수업을 마치고 가는 대학 내 식당에도 김치는 없고 단무지만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 한 달이 지나면 김치찌개를 먹고 싶은 욕망이 올라오지만 그때만 해도 많지 않았던 한국식당. 그만큼 김치찌개 가격도 학생인 나의 호주머니를 열기에 녹록지 않았다. 그래도 짜고 단맛에 지친 내 입가의 휴식을 위해, 나는 신주쿠 거리의 고급 한식당에 들어가 김치찌개를 시켜 먹곤 했다."


조금 전 먹었던 국수는 어느새 소화가 다 되었는지 들어가는 배는 따로 있는지, 우리는 햄버거 한 개와 어니언치즈프라이를 주문해 싱가포르에서의 추억과 같이 나누어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하고, 밤식빵으로 유명한 성당 지하 베이커리에 갈까 고민한다. 나만 좋아하는 이유로 반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아내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아내가 제의한 무릎에 좋다는 신발을 보기로 하고 건거편 백화점으로 갔다. 서울에 살 때만 해도 자주 들렀던 그곳은 고양시로 이사 온 후로 자주 가지 않은 탓인지 이제는 익숙지가 않다. 인산인해로 정신없이 간 매장에서 마음에 드는 신발을 하나 골라 신어 보지만 구미가 당기지 않자 광화문으로 가자는 아내의 말에 그곳을 나온다. 얼마 전부터 먹고 싶다고 노래하던 내가 좋아하는 단호반수프를 먹기 위한 그녀의 배려다. 서로 무릎은 괜찮냐며 챙겨주고 가다가 헌 책방과 음반 상점들이 즐비했던 추억의 자리. 바로 청계천 다리 위에 도착하자 내가 "와 좋다!"라고 하자 아내가 "사진 안 찍어?"라는 소리에 나는 버튼을 누른다. 추억의 저장소에.


다시 걸어서 도착한 광화문. 아내는 딸의 재킷을 산다고 옷가게에 들어가고, 나는 거리에서 해찰의 시간을 조금 보낸 후, 단호박수프로 유명한 곳이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아내가 오고 수프를 주문해 아내는 조금 먹다가 배부르다고 중단. 남겨진 것은 차지. "오늘은 저녁 안 먹을게" 하면서 다 비운다. 단호박을 좋아하는 것을 확인이라도 해주듯이.

내가 먹었던 단호박수프

집에 가기 위해 어느 역이 편할까 의논 후에 단호박수프로 부풀어진 배를 줄일 안국역까지 걷기로 한다. 목적지 역에서 내린 후에는 10분 정도 걸어서 집에 도착. 이번에는 실내 자전거 타기를 45분, 고무밴드로 근육운동을 15분간 하고 갈무리한다. 선언했듯이 저녁은 안 한 채.


삽시간에 써 내려간 이 문장들과 더불어 나의 걷기가 아스라이 한 단계 진화해 간다는 소리를 내 안에서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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