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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곤 Mar 09. 2024

단호박 같은 사람

기 발행글(단호박이 좋다, 단호박 기질)을 수정, 보완한 입니다.



내게 있어 음식은 두 가지 기능을 한다. 하나는 몸, 하나는 마음의 건강을 위함이다. 16년 전 수술을 한 후부터 어떤 것을 먹느냐가 중요했다. 짜고 매운 음식은 피하고, 좋아했던 술담배를 끊으니 간식에 손이 자주 갔다. 고구마, 단호박, 단팥빵, 팥시루떡은 지금도 내가 자주 먹는 간식이다. 그들은 몸보다 마음을 위한 수고를 더 할 때가 있다. 그중 단호박은 솥에 푹 쪄서 먹으면 어떤 야채를 섭취했을 때보다 영양이 많아 좋다. 특히 단호박 수프는 추운 마음까지 녹여주기도 하는데, 처음 먹었던 것이 35년 전 일본에서 대학 다닐 때였다. 일본인 숙모는 주말에 단호박을 삶아 정성스럽게 수프를 만들어 주곤 했는데, 은은한 노란색 빛깔의 맑은 수프는 타국에서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던 마음을 달래주기에 넉넉했다.          




가족들과 점심을 하러 한 카페에 들렀을 때다. 아내와 딸은 파스타와 스파게티를 두고 어느 것을 먹을지 핑퐁 게임하듯 의견을 주고받는 사이 나는 단호박 수프를 선택했다. 단호박은 맛도 일품이지만, 야채의 제왕으로 알려져 있어 먹으면 다른 야채를 섭취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특히 비타민과 황산화 함유량이 많아서 노화 방지와 암 예방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사람의 기질 등을 나타낼 때도 쓰이곤 하는데, 단호하게 상대방의 제안에 거절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을 두고 단호박 같은 기질이 있다고 한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도 거침이 없고 한 번 결정을 하면 번복하는 경우가 드물다. 


예전에는 먹기로 했던 점심 메뉴를 다른 것으로 하면 안 되냐고 아내에게 물었던 적이 가끔 있다. 그러면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또 바꾸는 거야?"  

   

그녀는 번복이 없다. 무슨 일이든 한 번 결정을 하면 그대로다. 부부도 닮아간다고 하던가. 그래서인지 나도 요즘 아내와 비슷하게 변해간다. 일상에서 번복하는 일이 별로 없다. 고민을 안 하니 마음도 편하다. 번복하고 싶을 때는 "욕심이야. 비워"하고 마음을 비운다.     




일상에서 '빠른 순간의 선택'은 시간도 절약하고 일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메뉴를 선택할 때, 모임에 입고 나갈 옷을 고를 때, 친구와 약속을 하면서 언제, 어디에서 만날지 결정해야 할 때 주저 없이 하면 마음이 편하다. 남는 시간을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고 시간을 소중하게 쓰는 습관도 생긴다.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가. 누구나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평등하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에 차이가 날 뿐이다.


외국계 보험회사에 근무했던 후배는 영업할 때 고객의 결정을 기다리다 보면 애간장이 녹을 때가 있었다고 한다. 어떤 고객이 결정을 안 하고 미루면 다른 고객과의 미팅 일자를 잡는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는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하는 매 순간을 맞이한다. 그러나 그것이 간단치 않을 때도 있다. 오늘 어떤 반찬을 할까 모임이 있을 때는 무슨 옷을 입고 나갈까 하고 고민하며,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미래의 목표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결정을 미루기도 한다. 자신이 없어 이게 안 되면 저걸 하면 되지 라며, 늘 대안을 모색하기도 한다. 그래서 결국 고민만 하다가 시간만 흘려보내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인생에서 어떤 길을 선택해서 갈 때 시원하게 트인 고속도로인 경우는 드물다. 가다가 좁은 골목길에 눈도 비도 내리는 질퍽거리는 길도 만난다.   



인간관계에서는 어떨까. 누군가에게 연락해서 만나려고 할 때 상대방이 안 만나주면 어쩌지 하거나 괜히 연락해서 곤란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다가 차일피일 미루곤 할 때가 있다. 일단 연락해 보면 될 일도 미리 일어날 일을 상상하며 드라마를 찍는다. 심지어 안 좋은 결말의 시나리오로. 그래서 단호박이 되면 상대방도 나도 편한 경우가 많다.     


퇴근 후 친하지 않은 상사가 술 한 잔 하자고 할 때나, 점심시간에 원하지 않은 동료나 상사가 같이 밥 먹으러 가자고 할 때가 있다. 그럼 참 난감하기도 하다. 마음속으로는 싫은데 같이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기도 하고. 한 번쯤은 함께 갈 수 있겠지만, 매일 보는 사람들이라 바로 거절하기에는 좀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자주 권유를 할 때는 단호한 거절을 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김 대리 같이 점심할까?"라고 물어오면,

" 아..... 그게.... 네."라는 것보다 "과장님 오늘은 제가 약속이 있어서요. 다음에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혹시 '내가 거절을 하면 혹시 상사에게 미움을 받지는 않을까.'라는 두려움을 안고 생활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러하다면 한 번은 뒤를 돌아보시는 것은 어떠할까. 나의 자존감이 낮아진 것은 아닌지.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얽힌 우리 일상에서 거절이라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많다. 특히 금전이나 청탁 등을 해올 때가 그렇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단호해야 한다. 도와주고 나누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되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어야겠다.


며칠 전의 일이다. 직장 동료 A가 B에게 "아까는 너무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 본의 아니게 큰소리로..." A는 퇴근 때도 B에게 "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라고 하는 모습을 보았다.     


살면서 단호박의 기질을 발휘해야 하는 경우는 많다. 사과, 용서, 배려, 인정, 공감...... 등을 할 때 더 그렇다. 자신이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상대방이 잘했으면 잘했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할 때가 많은 것이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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