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의 끝은 유난히 으스스했다. 잔뜩 흐린 날씨와 같이 꼭 비라도 올 것 같고 무슨 일이 일어 날 것 같아 마음이 답답하다.
자정이 다되어가는 시간에 의사인 셋째 사위가 전화를 걸어왔다.
“아버님 어머님, 여기 병원입니다. 큰 처형이 몹시 아픕니다. 내일 일찍 댁으로 가겠습니다.”
새벽같이 찾아온 사위가 울먹거리며
“큰처형이… 큰처형이…췌장암…췌장암...”
그리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보인다. 이게 무슨 일인가! 눈앞이 캄캄하고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큰 딸은 너무 똑똑하고 일찍 철이 들어서 아픈 손가락이었다. 딸 셋 늦둥이 아들 하나, 사남매의 맏이어서 그랬는지 너무 일찍부터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하는 아이였다. 공부도 썩 잘했다. 누가 제대로 봐주지 않았는데도 학교에서 항상 칭찬만 받는 학생이었다.
중학교 입학 후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학부모 면담신청이 왔다.
“너무 똑똑한 학생입니다. 이번 입학생 중 지능지수가 가장 높은 학생 중 하나입니다. 잘 살펴 주세요. 이런 아이들이 잘못되면 그냥 더 평범해 질수도 있습니다.”
과외도 하지 않고 학원도 보내지 않았는데 학교 성적이 항상 전교1-2등이다. 3학년 1학기가 지나고 딸이 말했다.
“아버지 저 과학고등학교에 갈래요. 서울에 과학고등학교가 신설되는데 선생님이 그 학교 참 좋다고 했어요.” 다음날 다시 말했다.
“선생님께서 과학고 입학을 위해 따로 공부한 것이 있느냐고 물으셔서 없다고 했더니 그럼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과학고등학교 기출문제집을 사서 한번 풀어 보라 했다.”
하면서 그 책을 사달라고 한다.
그런데 딸아이 그 문제집을 풀다가 운다. 거기에는 자기가 풀 수 있는 문제가 거의 없다고 한다. 밤새 끙끙거리며 씨름을 하다가 다음날 학교가서 선생님에게 묻고, 그 다음날 또 울고 끙끙거리고 그렇게 한두 달을 보내고 시험을 봤다. 그런데 도저히 가망이 없다고 한다. 열 문제 중 다섯 문제는 어떻게 풀었는지 모르겠고 나머지는 손도 대지 못했으니 도저히 합격을 바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합격을 했다.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 새벽에 학교 기숙사에서 연락이 왔다.
“딸애가 너무 아파 병원 응급실로 보냈으니 빨리 가시라”고.
대장이 꼬였던 것이다. 너무 한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만 있어 생긴 것이다. 중학교 때 선행학습을 따로 하지 못해서 학교 수업을 따라 가지 못하니 저 혼자 따로 밤샘공부를 하다 그 병에 걸린 것이었다.
그런데도 2학년때는 우등상을 탔다. 그리고 카이스트에 조기 입학을 해서 그곳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20대에 공학박사가 되었고 국책연구원의 연구원이 되었다. 그러다 당시 열풍처럼 불었던 벤처기업에 합류를 했었는데 그 바람이 사그러질 때 그 애는 실직자가 되었다.
대학강단으로 진로를 찾겠다고 대전 C대학의 연구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거기서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또 좌절을 했다. 교수의 길 그것은 실력만으로는 국내 공학박사 학위만으로는 될 수 없다는 것, 외국명문대학의 학위나 주위의 강력한 추천이나 후원이 없으면 거기에도 길은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 일을 계속 할 수가 없었다.
1년이 지난 다음 딸애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서른 다섯의 나이에 다시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을 봤고 전과목 1등급을 받아 대전에 있는 한의대에 입학을 했다.” 라고.
그리고 마흔이 넘은 나이에 한의사가 되었고 한의원을 개원했다. 그러나 그 길 역시 순탄치가 않았다. 첫해부터 고생이 시작 되었다. 늦은 시작과 심한 경쟁으로 자리가 쉽게 잡히지 않았고 침을 잘못 맞아 병이 악화되었다고 꼬투리를 잡아 금품을 요구하는 악덕 소비자를 만났고 잘못이 없음을 말하고 응하지 않아 고소까지 당하였다.
지난 가을 딸아이를 만났다. 이제 겨우 얼굴에 화색이 든다.
“악덕 고객의 시달림도 혐의없음으로 끝났고 개업 3년차가 되어 이제 한의원도 자리를 잡았으니 걱정 마시라고, 늦은 나이까지 부모님 마음고생시켜드려 죄송하다.”며 웃는다.
가슴 속의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내려 앉은 듯 했고 똑똑한 딸을 아비가 제대로 살피지 못해 그 애의 진로를 그르쳤다는 후회가 조금이나마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불과 석달전의 일인데 이제 그 애가 아프다 한다. 그냥 아픈것도 아니고 어쩌면 치료조차 할 수 없는 너무나 큰 아픔이라니 이를 어쩌나,,, ,,,!
췌장암 그것을 수술을 받지 못하면 6개월을 채 견디지 못하는 것인데 발견이 늦는 병이어서 병원에 온 환자의 80%이상이 암조직이 너무 커졌거나 아니면 타 장기에 전이가 되어 있어 수술조차 못한다 한다. 다행이 수술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완치율(5년생존율)은 겨우 20%밖에 되지 않는 무서운 병이라 한다. 딸아이도 암 조직이 너무 커서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했고 유일한 희망은 정말 힘든 항암치료를 잘 견디어서 크기가 줄어 들면 수술을 시도해 볼 수는 있지만 그 확률이 10%도 되지 않는다 한다.
“주님 왜 이러십니까! 제가 뭐 그리 큰 잘못을 했습니까! 제 나이 12살 때 마흔네살 어머니 불러 가셨으면 그만이시지 어찌 그나이의 딸 마저 또 데려가시려 합니까! 용서하십시오 그러지 마시고 제 딸 그저 살려만 주십시오. 하느님...!”
4년이라는 긴 시간... 세 번의 큰 수술을 했다. 여러번의 시술도 했다. 십여 차례의 방사능치료 수십차례의 항암치료를 했다. 있는 힘 다 모아 같이 투병하고 치료하고 울면서 기도도 했다. 딸애는 견딜 수 없는 극심한 통증을 참으면서 기도했다.
“주님 저 10년만 더 살려주세요. 그러시면 저 막내 둘째아이 대학입학 하는 것 볼 수 있습니다!”
나도 기도 했다. 4년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교회에 갔다.
“주님 매일 기도하겠습니다. 약속드리니 제가 기도할 수 있는 시간까지 만이라도 제 딸 살려주세요.”
이렇게 기도했다. 한 때 좋아지기도 했었고 다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기도 했다.
2023년 2월 6일, 딸애는 내 앞에 누워있다. 바짝 마른 몸 그 몸에 그어진 수많은 수술자국을 분홍색 수의로 가리고 누워있다. 그래도 얼굴은 편안하다. 기도하는 모습이다.
“너 지금 뭐라고 기도하고 있나? 이제 너는 한줌의 재가 될 것인데 그래도 아직 살려달라고 기도하고 있느냐?”
주님 왜 이러십니까! 이제 저도 기도 그만 하려합니다. 죽으라 기도해도 주님이 제게 주실 기도의 응답은 이제 받을 수 없어졌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