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쳐다봅니다

by 임성규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 하늘 한번 쳐다보고 / 또 한 모금 입에 물고 / 구름 한번 쳐다보고”


어릴 때 읽었던 강소천의 닭이란 동시이다. 뜰 안에 노는 병아리들을 보며 어떻게 이렇게도 잘 그려냈는가 하고 어린 마음에도 감탄을 했었다.

병아리들을 보면 그 동시가 생각나고 그리고 정말 힘들고 어려웠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정말 못 견딜 것 같았는데 그 어려움을 “하늘을 쳐다보며 물 한 모금 마셔가며” 이겨왔기에 지금 그 기억을 떠올리면 입가에 웃음이 머금어진다.


1990년 초 20년 이상 다니던 직장(한국은행 은행감독원)을 그만두고 감정평가사 사무실을 냈다. 크게 준비 없이 자신감만 가지고 전직을 했는데 정말 말이 아니게 어려웠다. 일감이 없다. 일감이 없으니 수주를 위해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다 결국은 그나마 자신이 있는 금융기관의 담보평가 업무를 타깃으로 했다.

그리고 은행들을 찾아다녔다. 전직에서 거들먹(?)거리며 검사를 다니며 은행원들의 잘못을 찾아내어 문책을 하고 다녔던 그곳을 이제는 업무를 수주하러 다녀야 했다. 그땐 나에게 그렇게도 친절하고 상냥했던 은행원들이었는데 이젠 잘 만나 주지도 않는다. 기왕에 거래하는 감정평가 기관이 여럿 있는데, 만나면 추가해서 또 일을 달라니 그렇게 하는 것도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업계의 실정도 모르고 잘 아는 은행 지점장들을 바로 만났다. 잔뜩 반갑게 맞이했다가 명함을 내밀면 금세 표정이 변한다.

“왜 그 좋은 곳을 그만두고 이렇게 고생을 하십니까? 지금 거래하는 감정평가사도 여럿 있고 그 일은 창구 담당자들과 대리 차장들이 하는 일이라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제대로 말을 붙여보지도 못하고 돌아서는 귓가에 들릴 듯 말 듯

“저 양반, 사고 치고 감독원 그만둔 것 아닌가?”

하는 중얼거림도 들린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대로 있으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밖으로 뛰어나와 하늘을 쳐다보며 눈물이 들어가라고 눈을 껌뻑거렸다.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은행들을 찾아다녔다.

이제는 작전을 바꾸어 창구 담당자들부터 설득을 시작했다. 설득 되어야만 대리 차장 등 책임자를 만났고 대리 차장의 양해를 받은 후에야 지점장을 만났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을 쳐다봐가며 그리했고 그래서 나름대로의 성과도 있었다.

S 은행 한 지점을 타깃으로 하고 아침부터 담당 창구 직원을 찾았다. 명함을 주니 언뜻 보고 그냥 책상 위에 놓아버린다. 그리고 일이 바쁘다며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 직원 일이 마무리되면 말을 붙여보겠다고 한 시간 이상을 그 직원 앞에 앉아 기다렸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그 직원은 일어나더니 실내화를 벗고 구두를 신는다. 마침 구둣주걱이 없는지 책상 위에 놓아둔 내 명함으로 구두를 신는다.

‘찍’하고 내 명함이 찢어진다. 내 자존심과 내 몸이 그냥 찢어지는 거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사람 좋은 직장 그만두고 나가더니 그 친구도 별수가 없네.”

이 말만은 듣지 않으려고 어떠한 수모도 박대도 참아가며 감정평가사로 성공하려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것만은 참을 수가 없었다.


밖으로 뛰어나와 하늘을 보았는데 아무리 하늘을 보고 눈을 껌뻑거려도 그날은 정말 눈물이 멈춰지지 않는다. 그냥 실컷 울어나 보자 하고 소주 한 병들고 한강 고수부지로 갔다. 강가에 낚시꾼들이 여러 대의 낚싯대를 펼쳐놓고 강물만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 번쩍 낚싯대를 들어 올리며 하늘을 본다. 하늘에서 붕어가 펄떡거린다.

풀썩 웃음이 났다. 나는 눈물을 참으려고 하늘을 보는데 그 사람들은 하늘을 보니 붕어가 잡히는구나!

"그래, 나도 계속 하늘을 보자. 하늘을 보는 것이 눈물을 참으려는 것만 아니고 낚시꾼들이 하늘을 보며 붕어를 잡듯 희망을 보려고 그러는 것 일수도 있다.”

라고 생각을 하니 마음을 다시 다져먹을 수가 있었다.


명함을 다시 만들었다. 이번에는 찢어지지 않도록 비닐로 된 명함을 마련했다. 은행을 찾아다니며 그 명함을 돌렸다.


“너는 비닐로 만들어졌으니 받는 사람들이 구두를 신어도 찢어지지 않겠지! 그래, 나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나도 하늘을 더 자주 보겠다. 그러면 눈물만 참아지는 것이 아니고 희망도 찾아지는 것이다.”

라고 확신하면서 또다시 각오를 다졌었다.


병아리가 물 한 모금 먹고 하늘을 쳐다보는 것은 하늘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물을 삼킬 수 있는 힘이 없기에 물이 저절로 넘어가라고 그러는 것이라 한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때 내가 자주 하늘을 쳐다보며 눈을 껌뻑거린 것은 눈물을 참으려고 했던 것만도 아니고 희망을 찾으려고 그리했던 것만도 아니고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 살려달라고 기도를 드린 것” 같다고 생각이 든다.


오늘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 하늘 한번 쳐다보고 / 또 한 모금 입에 물고 / 하늘 한번 쳐다보고"

하느님께 감사하며 기도를 드려본다. 이렇게 푸른 하늘을 웃으면서 감사하며 쳐다볼 수 있는 은총을 내게 주신 하느님께 또 한 번 더 감사를 드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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