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깁기 인생

by 임성규


‘짜깁기’란 말이 있다. ‘짜집기’로 종종 잘못 쓰이기도 하는데 짜깁기란 ‘직물의 찢어진 곳을 그 감의 올을 올려 본디대로 흠집 없이 짜서 깁는 것 또는 기존의 글이나 영화 따위를 편집하여 하나의 완성품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양복도 옷감을 수선하여 입던 시절에는 짜깁기가 많이 이용되었지만, 요즈음은 옷감을 수선하는 일은 거의 없으므로 어떤 사실이나 행위를 좋지 않게 비판할 때 짜깁기란 말이 인용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1970년 인천에서 직장을 다니며 서울 서대문에 있는 야간 K대학을 다녔다. 낮에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곧바로 기차 또는 고속버스로 장시간 통학을 하다 보니 밤이나 낮이나 항상 양복 차림일 수 밖에 없었다.


그 시절 양복은 기성품이 없고 반드시 전문 양복점에 가서 맞춰 입어야 했으며, 그 값도 만만치 않아 장기 월부도 했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처럼 양복을 여러 벌 가질 수 없었기에 대부분의 샐러리맨들은 단벌신사였고 그런 세태를 반영하여 ‘단벌신사’란 영화도 있었고, 노래도 유행했었다.



"처음으로 양복을 맞췄습니다. 세칭 일류 양복점에서 좋은 모직 천을 비싼값으로, 그것도 장기 월부로 했습니다. 그 양복을 입을 때마다 기분이 우쭐했고 가슴이 뿌듯하기까지 했습니다. 바지에 칼 같은 줄을 세워 깨끗하게 입었으며 세운 바지의 줄이 뭉개질까봐 밤에는 요 밑에 반듯하게 깔고 자기도 했습니다. 바짓가랑이에 흙이라도 묻을까봐 걸음걸이까지 조심했고, 먼지라도 묻을까 조심조심 털고 다녔습니다.


늦은 퇴근길이었습니다. 피곤이 온 몸을 감싸서 서 있을 힘도 없을 정도였기에 택시를 탈까 했는데 마침 시내버스가 왔습니다. 헐레벌떡 탔는데 자리가 거의 없었습니다. 두리번거리다 보니 버스 뒷부분에 빈자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염치불구하고 뛰어가서 눈치보지 않고 털썩 앉았습니다.


찍! 소리가 났습니다. 좌석 끝 부분에 못 같은 것이 살짝 삐져나와 있었는데 양복바지 윗부분이 거기에 걸렸습니다. 황급히 손을 대어보니 아뿔싸! 새 양복 엉덩이 쪽에 조그만 구멍이 났습니다. 지난달 장기 월부로 마련한 새 양복인데 어쩌란 말인가?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속이 쓰렸습니다. 눈앞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새 양복바지를 세탁소에 주어 짜깁기를 했습니다. 비싼 양복이라 촘촘히 올을 올려 정성껏 했기에 감쪽같았습니다. 짜깁기를 한 부분이 어딘지도 모를 만큼 깨끗했습니다.


양복을 다시 입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끼던 새 양복이 새것 같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잘 보이지도 않는데 짜깁기한 바지 부분이 자꾸 신경이 쓰여 벗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 때부터 양복을 마구 입었습니다. 구겨져도 대충 다려입고 흙이 묻어도 대충 툭툭 털고 세탁도 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양복은 정말로 헌 옷이 되고 말았습니다. 처음 마련했을 때 그렇게도 아꼈던 그 양복이 장기 월부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옷장 한구석으로 밀쳐져 있었습니다.


인생도 양복과 같습니다. 한 번 실수하고 무너졌다고 절대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그 실수를 인정하고 무너진 부분을 다시 짜깁기하면 새로운 삶을 다시 살 수 있고 반드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낮에 좋은 대학 못다니고 밤에 이렇게 어렵게 학교 다닌다고 실망하거나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장소가 어디든지, 낮이든지 밤이든지 열심히 노력하시면 됩니다. 지금의 어려움을 자신의 모자란 인생의 흠을 짜깁기한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상은 당시 야간 K대학에서 정치학을 강의하시던 Y대학의 L교수님이 첫날 신입생들에게 하신 강의의 요지이다. 그 내용이 너무 좋아 감격했고, 너무나 감명을 받았기에 어려울 때마다 머리에 떠올렸고 오늘날까지도 잊지 못하는 ‘짜깁기 인생’이란 특강이었다.

50년이 훨씬 지났고 나는 나의 삶을 짜깁기 인생으로 살아왔다. 비록 야간상업고등학교와 야간 단과대학이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여 좋은 직장에 취업도 했고 능력을 인정도 받았다. 늦게이지만 학사도 되었고 석사 학위도 받았다. 마흔이 다 된 나이에 감정평가사도 되었고 업계에서 원로라는 지위와 명성도 얻었다. 나름대로 내 삶을 짜깁기 하며 잘 살아왔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그런데...

공부 잘하고 똑똑하고 부모의 도움 없이도 카이스트 공학박사가 되었고 한의사 자격까지 취득했다고 자랑했던 큰 딸 아이가 갑자기 췌장암에 걸렸다.


긴 시간 3번의 큰 수술, 10여 차례의 방사능 치료 수십 차례의 항암치료를 했다. 있는 힘을 다 모아 같이 투병하고 치료하고 울면서 매일 기도도 했다. 한때 좋아지기도 했었고 다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또 그러나 지난 2월에 나는 그 아이를 기어이 하늘나라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평생 공부만 하다 뒤늦게 제 길을 찾아 제 뜻대로 제 삶을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도 않은 아이였는데... 안타깝고 안쓰럽고 눈앞이 캄캄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이를 어쩌나! 그러나 그렇지만... 이렇게 계속 맥 놓고 울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내 삶을 또 짜깁기 하려한다.


“그래 짜깁기 하자! 완전하게 되지 못하여 흠이 좀 보이면 어떠냐! 내 삶에 여벌의 바지는 없고 이 바지는 아직 10년 이상을 더 입어야 하는데... 좀 많이 찢어졌다고 흠 없이 짜깁기할 수 없다고 그냥 버릴 수는 없으니 어찌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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