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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May 28. 2023

동촌 유원지 보트 타기 기억

1986년 군복무 후 대학 복학 그리고 4학년 때 교생실습을 할 때 기억입니다. 5월에 대구 동촌중학교에서 교생실습을 하게 되었고, 어느 정도 실습에 적응되어 가던 날 경북 상주에 있던 지금의 아내가 중학교로 찾아왔습니다. 지금도 예쁘지만 당시에도 아내는 정말 예뻤습니다. 시골 출신이지만 하얀 피부에 오똑한 콧날에 이목구비가 선명하여 제가 첫눈에 반했지요. 군복무 후 집에 있으면서 형이 사들인 송아지 8마리를 키우고 있을 때 여동생의 친구가 옆 마을에 살고 있었고 그 친구의 친구가 바로 지금의 제 아내이지요. 당시 저는 외양간에서 송아지 여덟 마리를 돌본다고 바닥에 짚을 새로 깔고 소똥을 부지런히 치우느라 누가 왔는지 몰랐습니다. 여동생과 두 명의 여자애들이 새로 지은 우리집 안방에서 과일도 나눠 먹고 담소도 나누었겠지요. 아내가 정신없이 일하는 제 모습을 보았다고 나중에 말해 주더군요. 두 사람이 왔다 갔어도 저는 몰랐습니다. 그리고 두어 달 뒤에 여동생이 "예쁜 여학생 하나 소개해 줄 테니 만나 볼래."라고 권유하기에 1985년 9월 6일 대구 시내 동성로 근처 빌라다방에서 만났습니다. 


그렇게 제가 첫눈에 반해 버렸지요. 하지만 자주 만날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제대 2개월 전에 어머니는 세상을 버리셨고, 아버지는 무책임, 무능력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누구에게도 손을 벌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갓 결혼한 형님 부부에게도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참으로 뻔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육체노동 속칭 '노가다' 일자리를 많이 찾아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노동 단가가 셌습니다. 경운기를 끌고 가서 숲을 만드는 조림 사방공사에 일하러 가면 돈을 더 많이 주었습니다. 들판에서 무우, 배추 트럭에 싣기 작업은 힘들었지만 간식도 많이 나오고 술 담배에 임금도 매우 비쌌습니다. 그런 일만 찾아다녔습니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아르바이트는 낙동강에서 했던 큰 버드나무 벌목작업이었지요. 


노가다 십장이 보트를 타고 다니며 대형 톱으로 버드나무 통나무를 1m30cm정도 길이로 군데군데 잘라놓으면 그것을 물밖으로 어깨에 지고 나오는 작업입니다. 생각보다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가슴팎까지 오는 강물 속으로 걸어들어가 어깨에 면수건을 받치고 통나무를 짊어지고 나옵니다. 처음엔 어깨를 다치지 않으려고 면수건을 정성껏 받치지만 나중엔 정신없이 빨리 진행하게 되어 어느 순간 수건이 강물에 젖어 불편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버드나무 표면에 쓸리게 되어 피가 나옵니다. 아픈 줄도 모르고 진짜 열심히 일합니다. 동일한 분량을 또는 숫자를 먼저 하면 일찍 집에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들 바쁘게 일합니다. 일명 '돈네이'이라고 주어진 할당량만 채우면 나머지와는 상관없이 하루 일이 끝나게 되지요. 지금 생각하면 좀 잔인한 일 시키기 방식이었습니다. 


그런 육체노동을 많이 찾아다닌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가족들은 말리지만 당장 대학 생활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는데는 그만한 일이 없었습니다. 간간이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습니다. 제 수업을 받은 학생이ㅣ 우리 학교로 진학하여 학우회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눈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복학 그리고 대학 3학년을 보내고 4학년 교생 실습을 맞았는데, 지금의 아내가 저를 찾아 온 것이지요. 당시 제가 맡았던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유리창을 모두 열고 환호성을 지르며 "선생님 진짜 예뻐요. 예쁩니다."라고 큰소리로 말해 줄 때 아내는 쑥스러워 제 뒤로 숨었습니다. 제 등 뒤에서 옷깃을 잡아 당기며 "오빠야 빨리 나가자. 오늘 내가 괜히 와가지고 이런 거 당한다. 오빠야 빨리 나가자. 부끄러워 죽겠다. " 경북 상주에서 무정차 시외버스를 타고 와서 대구 북부 정류장에 내려 다시 시내버스로 바꿔 타서 먼길 따라 저를 찾아온 예쁜 그녀가 같이 서 있는 것도 좋은데, 등 뒤에서 제 옷을 잡아당기며 이 자리를 빨리 벗어나자고 조르는 것도 기분이 좋았지요. 솔직히 말하면 예쁜 사람을 자랑하고픈 마음이 컸다고 봐야지요. 그렇게 교문을 나왔습니다. 동촌중학교를 나왔으니 곧장 걸으면 동촌 유원지입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쓸 돈도 꽤 있었지요. 


처가는 상주 시골에서도 상당한 부자였습니다. 아내는 그런 가정에서 여유롭게 자랐지만, 우리집은 반대로 매우 가난하였습니다. 그 어려운 농가 살림에서도 저를 출세시켜보겠다고 어머니께서 무리 무리 하여 하숙을 시켜주셨지만 그 뒤엔 가족들의 힘든 생활이 있었지요. 오직 저 하나만 보고 다들 살았을 텐데, 결국 저 하나밖에 책임지지 못한 결과를 낳아 늘 죄스런 마음입니다. 


둘이서 동촌 유원지 둑을 한참 걸었습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도 두 개 샀습니다. 그렇게 걸으며 아내의 얼굴을 보니 정말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지요. 남학생이 교생실습을 하면 저녁에 따로 약속하여 만나는데, 굳이 실습 현장까지 와서 만나러 오는 것이 의아했지만. 이렇든 저렇든 그냥 좋았습니다. 둑길을 마주 보며 걸어가는데 아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고 그냥 동의하는 말만 했지요.


그렇게 둘이서 보트에 올라탑니다. 흰 티셔츠에 하얀 색 긴 치마를 입은 아내가 조심스럽게 보트에 앉았고 마주 앉은 제가 노를 젓기 시작합니다. 맑고 깨끗한 시낸물이 보트 곁으로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자그마한 물고기들이 여유롭게 유영하고 있었지요. 세상이 그렇게도 아름답게 눈에 들어옵니다. 정말 그 순간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았습니다. 태어나고 처음 보트를 타고 노를 저었습니다. 배가 제대로 갈 리가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몇 번 뱅뱅 돌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아내가 저의 그런 모습을 보고 놀리기도 합니다. 그것도 좋았습니다. 스물 여섯 살 남학생과 스물 두 살 여학생이 5월 그 아름다운 초여름 날 세상이 온통 푸르름으로 가득 날에 딱 둘이서 보트에 앉았으니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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