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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May 28. 2023

경공구우(景公求雨)

제나라 경공이 비가 오기를 빌다

제나라 명재상 안영(晏嬰)은 간언(諫言)에 관한 한 천하 제일이었다. 史記 저자 사마천이 정말 존경하였던 인물이다. 사마천은 만일 자신이 안영과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면 마부가 되어 채찍질하는 것을 자랑스레 여길 것이라고 공언할 정도였으며 관중과 나란히 평가되고 있을 만큼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인 중 한명으로 꼽히기도 한다. 제영공, 제장공, 제경공 세 명의 군주를 섬겼지만 백성과 나라를 생각하는 한 마음으로 간언을 아끼지 않았다. 무작정 직언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우회적으로 설득하는 간언도 능숙했다. 자신의 삶은 매우 검소하고 국정 능력이 뛰어나 천하에 그 이름을 널리 떨쳤다. 현대 국가에서도 대통령에게 간언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데 전제군주 체제 하에서 절대 군주에게 간언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놓고 해야 하는 참으로 어려운 행동이었다. 


제(齊)나라에 심한 가뭄이 오랫동안 지속되자, 경공(景公)이 여러 신하들을 불러놓고 물었다. 


“하늘이 비를 내리지 않은지 오래되어 백성들은 굶주린 기색이 역력하오. 이에 내가 사람을 보내 점을 쳐보니, 점쟁이가 말하기, 재앙이 높은 산과 큰 하천에 있다고 했소. 그래서 과인은 세금을 좀 거두어 영산(靈山)에 제사를 지내려고 하는데 괜찮겠소?” 


여러 신하들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안자(晏子)가 앞으로 나아가 이렇게 말했다. 


“안 됩니다. 영산에 제사를 지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무릇 영험한 산이라면 사실은 돌로 몸을 삼고 초목으로 머리카락을 삼고 있습니다. 하늘이 오랫동안 비를 내리지 않으면 그 머리카락은 타고 몸은 열이 나서 견딜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산이라고 어찌 홀로 비를 마다하겠습니까? 그런 곳에 제사를 지낸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러자 경공이 다시 말했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하백(河伯)에게라도 제사를 지내려고 하오. 그것은 괜찮겠소?”


 안자가 다시 말했다. 


“안 됩니다. 하백은 물을 나라로 삼고 물고기 자라 등을 백성으로 삼고 있습니다. 하늘이 오랫동안 비를 내려주지 않으면 수위가 낮아지고, 온갖 냇물도 말라 버릴 것이며, 하백의 나라도 망하고 백성도 멸망해 버릴 것입니다. 그런 하백이 어찌 홀로 비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그런 하백에게 제사를 지낸들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러자 경공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이제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이에 안자가 대답했다. 


“임금께서 몸소 정성된 마음으로 궁전을 떠나서 들에 나가 햇볕을 쬐고 노숙하며, 저 영산과 하백과 함께 근심한다면 혹시 요행으로 비가 내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경공은 야외로 나가 햇볕 아래 노숙하였다. 사흘이 되자 과연 하늘에서 큰 비가 내렸다. 마침내 백성들이 모두 씨 뿌릴 시기를 얻게 된 것이다. 


경공이 말했다.

"옳구나! 안자의 말을 어찌 채택하지 않겠는가. 안자는 덕이 있는 사람일로다!"


                                                                                                      《안자춘추》<내편간상>


가뭄이 심할 때 비를 내려달라고 신에게 비는 의식은 당시 사람들이 굳게 믿고 의심하지 않는 보편적인 흐름이었다. 그래서 경공은 재정이 궁핍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 기우제를 지내려 했다. 

이에 안자(晏子)는 경공의 무리한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신령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사실을 근거로 경공을 설득했다. 즉 산의 초목이 말라 타들어가면 산신도 비를 원할 것이고, 또한 오래도록 비가 내리지 않으면 모든 하천이 고갈되어 나라가 망하고, 백성이 멸할 것임으로 수신(水神)도 비를 내리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경공에게 정성된 마음으로 궁전을 떠나 노숙하며 영산, 하백과 함께 비를 빌도록 권했고, 경공이 이를 실행함으로써 사흘이 지나 마침내 큰 비가 내렸다.


이 우언은 재난이 닥치더라도 모든 소원을 신에게 의탁하지 말고 자신이 극복해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하면서 안자의 민본사상(民本思想)을 찬양한 것이다. 특히 군주가 야외에 나가 햇볕 아래 노숙하면서 기우제를 지내고 사흘 만에 비가 내렸으며 그렇게 백성들이 씨를 뿌릴 수 있게 한 점은 군주가 백성의 고통을 온몸으로 경험하게 했다는 점에서 매우 시사점이 크다. 



齊大旱逾時, 景公召群臣, 問曰: "天不雨久矣, 民且有飢色. 吾使人卜, 云祟在高山廣水. 寡人欲少賦斂, 以祠靈山, 可乎?" 群臣莫對, 晏子進曰: "不可! 祠此無益也. 夫靈山固以石爲身, 以草木爲髮. 天久不雨, 髮將焦, 身將熱, 彼獨不欲雨乎? 祠之何益?" 公曰: "不然, 吾欲祠河伯, 可乎?" 晏子曰: "不可. 河伯以水爲國, 以魚鼈爲民. 天久不雨, 水泉將下, 百川將竭, 國將亡, 民將滅矣, 彼獨不欲雨乎? 祠之何益?" 景公曰: "今爲之奈何?" 晏子曰: "君誠避宮殿, 暴露, 與靈山河伯共憂, 其幸而雨乎." 于是, 景公出野, 居暴露, 三日, 天果大雨, 民盡得種時. 景公曰:"善哉! 晏子之言,可無用乎?其維有德!"《晏子春秋》<內篇諫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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