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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May 28. 2023

해독주스를 준비하면서

오래 전부터 위장이 좋지 않은 아내를 위해 해독주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가장 싱싱한 양배추, 당근, 토마토, 브르쿨리를 준비하여 손질한 다음에 긴 시간 정성을 들여 주스를 만들어 내놓으면 아내가 아주 맛있게 먹습니다. 해독주스를 장기간 먹고 나서는 위장이 특별히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효과가 상당히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 주스를 만들 때 마음 속으로 기도합니다. 


"이 사람이 먹고 위통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우리 두 사람 여행도 많이 가야 하고 같이 먹고 섶은 곳 하고 싶은 것이 많기에 이렇게 싱싱한 해독주스를 먹고 얼른 좋아지길 빕니다. 많이 도와주세요."


그렇게 긴 시간 삶은 식재료를 곱게 갈아줍니다. 먹다가 조금이라도 목에 걸리면 곤란하니까 몇 번이나 갈아줍니다. 조금 갈면 믹서기가 금방 뜨거워집니다. 그러면 다시 식혀서 갈아야 합니다. 그리고 용기들을 꺼내 각각 담아 냉장고에 보관합니다. 여름철엔 토마토 양을 줄입니다. 토마토 양이 많이 들어가면 빨리 상하더군요. 다음 날 아침 냉장고에서 꺼낸 해독주스를 다시 데워 아내에게 줍니다. 아내가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현역에서 은퇴하여 그냥 무료하게 보낼 것이 아니라 뭔가 할 일을 찾아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것이 노년 행복을 위한 첫 단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지금껏 저를 위해 애써 준 아내 케어에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평소에도 책읽기와 글쓰기가 취미처럼 되어 있어서 매일 매일이 바쁘지만 그래도 30여 년 저와 아이들에게 헌신해 준 아내를 위해 뭔가 보답하고 싶었지요. 코로나 접종 후유증으로 3년째 고생하는 아내를 보면서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그렇다고 손놓고 맥없이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지요. 어설프나마 제가 집안일을 도와서 그랬는지 몰라도 아내의 상태가 최초 발생한 그 시점보다는 훨씬 좋아졌습니다. 물론 예전처럼 온전히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이 정도만 되어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아내의 표정도 많이 밝아졌습니다. 요즘엔 저를 놀리는 일도 많습니다. 가끔은 제탓도 하네요. 그것도 다 건강해졌다는 신호로 여깁니다. 


오늘 새벽 인터넷 뉴스를 보니 노인 문제 뉴스가 눈에 쏙 들어옵니다. 


갈 곳 없는 노인들…"우리는 정처 없는 도시 속 비둘기" (daum.net)


오전 커피, 오후 낮술이 유일한 일정
복지관 가는 것도 돈…60대도 '동생'
'노시니어존'에 "예상했지만 서글퍼"


라는 작은 타이틀이 뉴스의 모든 것을 관통합니다. 서글픈 노인들의 현주소를 보여줍니다. 뉴스 내용을 찬찬히 살펴 보니 노후의 외롭고 힘든 현실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님을 실감합니다. 왜 젊은 날부터 그런 것을 대비하지 않았나 하고 그들을 질타할지 모르지만 그 노인분들이 어디 그렇게 되고 싶어서 그랬을까요. 


아침에 눈을 뜨면 곁에 아무도 없는 현실이 얼마나 외롭고 슬플까요. 누군가 곁에 있어서 같이 자고 밥을 먹는 세월을 보내다가 어느  순간 곁의 사람이 저 세상으로 떠난 현실에서 아무도 내 곁에 없다는 기가 막힌 현실을 온몸으로 오롯이 겪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노후 세대들을 단정적으로 평가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곤란하겠지요. 하지만 나이가 들면 숙명적으로 겪어야 하는 건강 문제, 고독, 경제적 결핍 등등이 노년 세대들을 정말 힘들고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노시니어존'에 대한 것도 그렇습니다. 처음엔 60대 이상 노인 출입금지라고 붙인 카페 주인을 부정적으로 보았지만, 여자 사장 혼자 있는 카페에서 노인들이 하도 치근덕거려 불가피하게 그랬다는 말을 딸아이로부터 듣고 이해를 하게 되었지요. 노인들 중에 정말 예의없는 짓거리를 마구 저질러 젊은 세대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일도 많지요. 그런 사람들이 꼭 다른 사람을 나쁘게 호도하는 법입니다. 


나이가 들면 자식에게 기대거나 하는 의존적 자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가족이 있을 경우 지금부터 내 삶은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하고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뭔가 받으려는 생각부터 탈피해야 합니다. 이 나이에 내가 가족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한 다음에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 노력해야 합니다. 노년 세대 자체가 우리 인생에서 핸디캡에 해당합니다. 그러니 자신의 삶은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하루 24시간 어떻게 운용하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린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누글 탓하거나 원망하면서 살아가면 곤란합니다. 아무도 나를 챙겨주지 않습니다. 오직 나만 자신을 챙길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대우를 받을 것을 기대도 해선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정말 노력을 많이 하여 바쁘기 그지없습니다. 자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삶에 전력을 기울여 노력하기 때문에 노인세대들을 돌봐줄 여력이 없습닏다. 자식도 품안에 있을 때 자식이지 하는 말은 곰곰이 곱씹어 보면 그 자식도 자신의 가솔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이젠 아가 시절의 자식이 될 수 없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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