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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May 28. 2023

한일 시민들 풀뿌리 외교 현장에서

코로나 해제로 4년 만에 부산과 히로시마 시민들이 부산 중구 <영빈관>에서 만났다. 히로시마 세라쵸라는 산악지대 공연단 <아와오도리 모미지렌 阿波踊り紅葉連> 단원 15명이 조선통신사 축제 거리 퍼레이드 행사에 초청을 받아 부산을 방문한 첫날 부산 시민들과 만난 것이다. 4년 전에는 110명 규모로 비교적 컸지만 이번엔 60여 명 정도였다. 조선통신사 축제 기간 내내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야외 행사가 전면 취소되어 결과적으로 이 공연단이 부산에서 가진 유일한 행사가 되었다. 나머지 시간은 시내 관광이나 쇼핑을 하다가 돌아갔다. 


몇 개월 전부터 행사를 준비한다. 부산문화재단에서 일본의 각 공연단을 상당히 오래 전부터 섭외하여 지정하기 때문에 방문단의 숫자나 명단은 변동이 없다. 하지만 우리 측 참가자는 다양한 단체에서 신청이 들어오고 각 각의 신상을 미리 파악해야 한다. 먼저 일본어 수준을 상중하로 나눠 파악해야 한다. 이번엔 우리 측 참가자가 45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라 각 테이블에 3:1로 배치해야 한다. 한국측 3명에 일본측 1명인데 혹시나 일본어를 잘 못하고 참가하는 분들 곁엔 통역을 할 만한 사람을 반드시 배치한다. 


지금까지 매년 4회 정도 양국 시민들이 만나는 교류휘를 진행해 왔다. 두 번은 부산에서 두 번은 일본 각지에서 전개하는데, 특히 일본을 방문할 시엔 최소 경비로 안내한다. 가이드를 굳이 쓸 필요가 없다. 부산에 살고 있는 일본인이 반드시 참여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경비를 제외하고 대신 가이드 비용을 상쇄한다. 사람은 무료로 참석하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만, 가이드라는 명분을 주면 비교적 당당하게 갈 수 있다. 똑같은 돈이지만 해당자의 입장엔 어떻게 자리매김하는가에 따라 다른 것이다. 


교류회에 참석하는 양측의 연령별 성별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특히 연령별은 매우 중요하다. 국제 간 교류 행사에 나이가 뭐 그리 중요한가 하는 사람도 있지만, 각 테이블에선 평균 3시간 이상 대화를 나누기 때문에 연령대가 비슷해야 앞으로 두고 두고 친구가 될 것을 상정하여 연령을 고려하여 자리를 배치한다. 통상 치르는 교류 행사를 보면 양측 대표 인사말, 선물 전달, 건배 등으로 진행하여 실질적으로 각 테이블에서 대화가 별로 없다. 그야말로 비싼 호텔에서 술마시고 밥만 먹는 비생산적 교류에 그치는 경우가 없다. 그래서 우리 모임에선 가급적 참석자 개개인에게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반드시 주려고 애를 쓴다. 요즘엔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우리 교류 행사도 가급적 한정식에서 실행한다. 한국 음식에 관해 대화를 나누며 우리 문화도 자연스럽게 소개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각 테이블에서 친구가 되고 단체 톡을 통해 향후에도 많은 소식을 주고 받고 어떨 때는 그들끼리 따로 만나는 기회도 만들어 간다. 그런 소식을 접하면  시민 교류행상를 진행하는 입장에선 큰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이런 행사를 해보면 행사 전에는 '통역'이 있는지 묻거나 일본어가 안 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문의하는 경우가 간간이 있지만 실제 행사를 진행하면서는 아무도 통역을 찾지 않는다.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으면 영어, 한자, 아니면 바디 랭귀지 등이 마구 동원되어 각 테이블에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아 훗날 만남을 기약한다. 


6월9일엔 금요일 밤에 단체로 배를 타고 일본 시모노세키로 간다. 이번엔 37명이 가는데, 목적지는 오이타현 분고오노 시 미에마치라는 아주 조그마한 시골 마을이다. 우리로 친다면 읍(邑) 정도가 된다. 그 지역이 생기고 외부에서 대형버스로 단체 방문하는 사례는 거의 처음이란다. 그곳에 살고 있는 일본 분과 10여 년 전부터 알게 되어 개인적으로 상호 방문, 그리고 SNS 대화 등을 통해 친목을 도모해왔다. 그래서 이번엔 그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냥 그곳을 가는 것이 아니라 도중에 시모노세키 가라토 수산시장에서 한국어교실 학생들과 만난다. 도시락을 놓고 약 3시간 정도 진행하는데, 이곳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그중에 당일 토요일 오전 시간이 되는 사람들이 이번에 동석하고, 야외공연장에서 현지 전통음악 공연과 우리 측에서 한국 전통음악 공연이 함께 열린다. 참석자들은 고루 고루 섞여 도시락을 같이 먹으며 담소를 나누며 공연도 감상한다. 그렇게 수산시장 야외 공연장 행사가 끝나면 버스에 올라 오이타로 향한다. 


2시간 정도 달려 현지에 도착하면 당일 오후 일정대로 움직인다. 밤에는 미에마치 지역의 전통음악 공연이 우리 공연과 함께 열리고 현지 주민들 약 20명이 교류회에 참석한다. 시장과 시의원들이 환영사를 하게 되어 있고 공연단과 더불어 현지에도 한국어 공부 모임 회원들이 있어서 이번에 만나게 되었다. 이렇게 한일 양국 시민들의 풀뿌리 외교 현장을 준비하면 정말 손가는 것이 많다. 카톡이나 라인으로 수시로 문자를 주고 받아야 하고 급할 때는 국제 전화로 직접 확인한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동반되면서 행사가 더욱 유의미하게 실행되는 것이다. 행사가 끝나면 맥이 풀리고 힘도 빠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보람이 훨씬 크다. 보상을 바라는 것도 없고 그저 양측 시민들이 기탄없는 대화를 통한 교류행사를 많이 열면서 양측 정부 간에 정치적, 역사적 난제 해소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려는 마음도 아울러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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