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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n 07. 2023

서양 철학사를 읽다가

2023.6.7 아침 부산 영도 봉래산 자연의 소리

군나르 시르베크와 닐스 길리에가 쓰고 윤형식이 번역한  이학사 출판<서양철학사>90쪽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플라톤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는 어려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철학은 다른 분야의 지식처럼 말로 설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사안 자체에 대해 많이 대화하고 함께 삶을 살아본 뒤에야 돌연히 불꽃에 의해 불이 켜지듯이 그렇게 우리의 영혼 속에 자리한다." 


플라톤은 일반 독자들이 그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철학적 통찰로의 길은 멀고도 고통스럽다. 그것은 시간을 요하고 노력을 요한다. 그것은 또한 진리를 추구하는 다른 이들과의 교유와 토론을 요한다. 그러나 이것들이 충족된다 하더라도 우리가 교육과정에서 지식을 취득하는 것처럼 그렇게 자동적으로 진리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우리가 플라톤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우리가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에 영향을 줄 것이고, 통찰과 지혜의 진전에 대해 우리가 품고 있는 기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지난 삶을 많이 생각해 봅니다. 오늘따라 산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의 소리가 참으로 아름다운데 그 속에서 대학에 막 진학했을 때 가졌던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들을 떠올립니다. 인문대학 내 여러 전공학과가 있는데, 그중 철학과 심리학과 도서관학과 고고인류학과에 대한 저의 지극히 짦은 생각들 말이지요. 저런 학과를 졸업해서 어디에 취직하고 훗날 사회에 진출해도 뭘 하면서 먹고 살까. 희망도 없는 저런 전공을 굳이 왜 공부하려고 할까 등등 그것도 생각이라고 인문관 계단에 앉아 그 학과 사무실들을 바라보며 조금은 우습게 여겼던 것이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부끄럽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플라톤의 말처럼 사안 자체에 대해 대화하고 함께 삶을 살아본 뒤에야 돌연히 불꽃에 의해 불이 켜지듯이 철학이 우리 영혼 속에 자리하는가 봅니다. 어떤 대상이나 사건들이 있을 때 너무나 단순하게 인식하고 그저 편안함만 추구하여 살았던 것이 아쉽습니다. 이 나이가 되어 보니 지난 삶에서 제 철학적 인식이 얼마나 단순하고 볼품이 없었는지 후회 가득합니다. 그런 전공들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이제 와서 두툼한 <서양철학사>를 손에 들었으니 저의 철학적 사고나 지식이 얼마나 빈약한지 실감합니다. 글을 쓰면서 많이 생각하는 것이 같은 대상을 보고 글을 전개하더라고 그 내용이 천차만별인데 특히 철학적 사고와 지식이 풍부하지 않으니 자신의 글에 대해 실망을 많이 하는가 봅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내가 내 마음대로 글을 쓰는데 그런 철학적 지식이나 사고가 무슨 상관이야라고 말할 지도 모릅니다. 그건 글을 쓰는 초기 단계에서 가질 법한 어설픈 자존심에 불과하지요. 풍부한 독서 경험이 있는 작가들의 글은 전개 과정이나 용어 등에서 확연한 수준을 보여 줍니다. 아무리 읽어봐도 역시 이 글은 괜찮네 하는 생각이 들지요. 그리고 그 작가의 프로필을 살펴보면 지난 날의 풍부한 독서 경험을 간접적으로 추리할 수 있더군요. 역시 in put이 있어야 out put도 풍부하게 되는가 봅니다. 문제는 그걸 인식하게 된 것이 너무 늦었다는 점입니다. 그 점이 참으로 아쉽고 후회막급입니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 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미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는 법입니다. 지금부터 하루 하루 소중하게 여기고 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개론서에 해당하는 <서양철학사>를 찬찬히 읽으려 합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서양철학에 관련된 다른 책도 손에 들고 있겠지요. 



남들의 눈을 의식할 필요도 없이 스스로 자신의 글을 바라보면서 생각하려 합니다. 제 자신이 가진 빈약하기 그지없는 철학적 사고나 지식을 순식간에 쌓는 것이 필시 불가능하겠지만 짚단을 하나 하나 쌓아 노적봉이 되듯 그렇게 읽고 또 읽으려 합니다.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늘 아침에 눈을 뜨고 아파트 거실 너머 바다와 뒤쪽 봉래산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오늘 하루를 더욱 알차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졌습니다. 


10여 년 동안 사마천의 <사기> 중 열전(列傳) 부분을 참으로 열심히 읽었습니다. 사마천의 세계에 깊이 빠졌고 어릴 시절부터 관심 분야였던 역사 중 중국역사에 대해 더욱 흥미를 가지게 되었지요. 사기열전과 관련된 책들이 있으면 무엇이든 사거나 대출하여 읽어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공허해지는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아는 것 이상으로 중효한 것이 역사적 시각, 관점 그리고 인식 등이더군요. 단순한 사실(事實)을 나열해 놓고 암기하거나 알게 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실(史實)을 제대로 파악하는 사고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더군요. 사마천이란 인물이 위대하지만 사기열전을 읽고 그의 생각만 오롯이 따라갈 것이 아니라 풍부한 철학적 사고와 지식을 동반한 역사적 사실 이해가 너무나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게 되디니. 사마천에 머무르지 않고 그의 위대한 저서 수준에 멈추지 말고 대상 텍스트를 곱씹어 가면서 생각하고 생각해 볼 때 역시 철학적 지식이나 사고가 풍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요즘 브런치 글 쓰는 것이 익숙해졌습니다만 점차 어려움을 느낍니다. 글의 소재는 우리 삶에서 찾으니 그리 힘들지는 않지만 글의 수준에서 고민이 많이 됩니다. 어떤 문장에선 철학적 사고가 뒷받침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이지요. 다른 이들의 수준 높은 글들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들을 더욱 많지 가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쉽게 느껴지는 글들을 우습게 볼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느 액티브 시니어 네트워크에서 독서 토론에 참여하고 있는데, 반드시 나태주 시집의 시 한 수를 낭독하고 시작합니다. 요즘 나태주 시인의 작품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 말이 '나태주 시는 쉽게 쓰여 좋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분의 풍부한 독서와 철학척 천착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쉽게 그렇게 평가하는 듯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쉬운 시어로 한번 써보면 나태주 시인의 시작들이 만만치 않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원래 남이 하는 것은 쉽게 보이는 법입니다. 막상 내가 해보면 결코 쉽지 않거든요. 저도 나태주 시인 흉내를 내보았습니다. 쉬운 단어들을 쓴다고 그분 수준의 훌륭한 시가 탄생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시인들이 쏟아져 나온다고들 말하지만 그분들 또한 수많은 날들을 고민하고 고민하여 세상에 작품을 내놓는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요즘 철학적 사고가 왜 그리 빈약한지 스스로 평가한느 것처럼 말입니다. 모두들 스스로의 사고 능력을 돌아보면 결코 만족하기 어려울 걸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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