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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n 08. 2023

쌀 마대가 뭐 아프나, 운동 기구에 맞아 봐

아내 아침 식사 준비로 매일 바쁩니다. 먼저 커피 포트에 물을 가득 부어 끓입니다. 그리고 전복죽과 해독주스를 데웁니다. 아울러 한을 먹을 수 있도록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적절하게 섞어 컵에 담아 탁자 위에 놓습니다. 아내의 요구 사항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이런 일이 몇 년 진행되다 보니 이젠 몸에 익숙해집니다. 아내의 표졍도 많이 밝아졌습니다. 데운 전복죽과 해독주스를 올려 놓고 그 틈을 타서 샤워를 하고 옵니다. 드라이이하고 있는데, 아내가 한약이 식었다고 다시 데워달라고 합니다. 자꾸 시켜서 미안하다는 아내의 표정을 보니 영 짠합니다. 큰아들과 딸 아이가 있어도 저한테 부탁하는 마음도 그런 심정이었지요. 제가 그래도 건강하니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만약에 제 건강이 좋지 않다면 이렇게 옆에서 케어할 사람이 없겠지요. 그리고 간병인을 쓴다고 해도 돈만 많이 들어가지 아내의 마음이 그리 편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급적 아내가 불편을 느끼지 않게 최선을 다합니다. 하기야 제가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있나요. 그냥 열심히 하는 것이지만 제가 생각해도 영 어설픕니다. 그런데 아내가 제 어설픈 행동을 보고 잘 웃습니다. 어쩌다 제가 아내 기분이 좋으라고 어디서 들은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면 아내가 꼭 팩트 체크를 합니다. 그러면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그렇게 즐거워하네요. 


"당신, 팩트 체크 하지마. 그렇께 따져 들면 사실이 별로 없는 것 같아. 그나저나 당신 펙트 체크하면서 날 놀리는 것에 재미를 붙인 것 같아. ㅎㅎㅎ"


저도 정색하지 않고 농담 식으로 말을 건네지요. 아내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저를 놀리는 것이 즐거운가 봅니다. 아내가 놀리면 저도 그냥 무던하게 받아들입니다. 아내의 건강 상태만 좋아진다면 그렇게 놀려도 그것이 무슨 대수인가 싶지요. 저는 재미있으라고 이야기를 해주면 아내는 팩트 체크하여 날 놀리고 그렇게 둘이서 웃습니다. 정작 제가 전하는 이야기 자체는 재미도 없고 팩트에서 어긋나니 우습기만 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루틴처럼 아내 아침 식사를 바쁘게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가 저를 부릅니다. 전 또 무슨 급한 일이 있는가 싶어 샤워 후 드라이로 머리를 말리고 있다가 드라이기를 팽개치고 아내 곁으로 달려갑니다. 물컵을 들고 흔들면서 약을 먹을 물이 식었다고 합니다.  


"아이고 난 또 뭐라고 금방 가서 물을 데워 올게. 많이 놀랐다."



그런데 아내가 부르는 소리에 급하게 달려가다가 거실에 있는 쌀 마대 자루를 발로 차버렸습니다. 처남이 작년 가을 추수가 끝나고 보내준 쌀 마대자루가 거실에 놓여 있었지요. 해마다 4개를 보내 주는데 지난 겨울을 지나 한 8개월 동안 두 자루를 거의 다 먹었습니다. 아이들이 평소에 밖에서 식사를 많이 하니 쌀이 잘 줄어들지 않지요. 두 개의 자루가 쌓인 곳을 지나다가 왼발로 자루 끝을 저로 모르게 발로 찬 것이지요. 그것이 생각보다 쓰립니다. 아내가 왜 그러냐고 저를 의아해하며 바라보기에


"처남이 보내 준 쌀 마대 자루를 나도 모르게 발로 찼뿠다. 생각보다 좀 그렇네. 괜찮다 걱정 안 해도 된다."


그러자 아내가, 짓궂을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 합니다. 안 그래도 똥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놀리며 쳐다 봅니다. 군 제대 직후 여동생의 소개로 만난 아내의 동그랗고 큰 눈이 참 매력적이었지요. 아내가 지금은 나이 탓으로 눈이 조금 쳐졌다고 가끔 넋두리하지만 저에겐 지금도 정말 예쁩니다. 


"쌀 마대가 뭐 아프노, 여기 있는 운동 기구 끝에 한번 맞아 봐. 나도 전에 한번 나도 모르게 발로 찼다가 무지 아팠다."


그 와중에 그런 농담을 하면서 날 놀리다니, '지금은 당신이 아파서 그냥 넘어가지만 몸이 나으면 그때 보자'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지요. 하기야 그것도 그냥 마음뿐이지요. 그렇게 저를 놀려서라도 아내가 조금이라도 나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운동 기구는 저만치 떨어져서 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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