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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n 18. 2023

지금 가도 되나?

오랜만에 대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스무 살 때부터 친구가 되었는데, 고향마을 달성군 논공읍 위천1리(우나리)에서 함께 자란 벗들만큼이나 친합니다. 옆 마을인데 차로 한 15분쯤 달려가야 하는 곳으로 옆 마을치곤 꽤 먼 편입니다. 학창 시절엔 그곳까지 비포장도로로 그땐 오토바이로 다녀왔지요. 스무 살  겨울 설날 즈음에 우리 마을에서 노래자랑대회가 열렸는데, 그때 그 마을 친구들과 몰려왔다가 인사를 나눈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학도 같아서 둘이 인연이 더욱 깊었지요. 물론 단과대학과 학과가 달라서 둘이 자주 만나진 못했지만 그래도 캠퍼스에서 만나면 정말 반가웠습니다. 당시 저는 어쭙잖은 운동권 변두리에 소속되어 데모에 많이 참여했고, 그 친구는 일찍 해병대에 입대하는 바람에 대학에서 만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둘은 마음이 잘 통했고, 각자가 고향마을에 다녀올 때는 서로의 마을을 방문하기도 했지요. 제가 우리 고향마을에 들르면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곧장 오토바이로 그 친구 집을 방문하여 당시 살아계셨던 친구 어머님께 인사를 올리고 어떨 때는 점심도 먹고 오곤 했습니다. 그 친구도 휴가를 오거나 할 때 자신의 집에 갔다가 대구를 가는 길에 우리집에 들러 형님과 대화를 나누었다고 전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우연히 만나면 서로 방문했다는 사실을 무용담처럼 주고 받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제 고교 시절 우연히 만나 가슴을 태우게 했던 현풍여고 그 소녀 집이 친구 집 바로 옆에 있었기에 많이 가보았습니다. 아쉽게도 갈 때마다 소녀의 집은 비어 있어서 담 너머로 흘끔 흘끔 보기만 하고 돌아왔습니다.


제가 1982년 6월 22일 육군 입대를 사흘 앞둔 6월 19일 밤에 경상북도 달성군 논공면 위천1동 120번지 고향 마을 우리집 마당 대문 없는 집에 제 입대 송별회에 4~50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대학 써클 회원들, 고향 친구들과 후배들, 평소에 대화를 별로 나눌 기회가 없었던 고향 마을 동기 후배 여학생들도 합석하였지요. 어머니와 동네 형수님들이 정말 풍성하게 차린 음식들이 마당에 놓인 호마이판 2열 3대 총 6대 위에 진열되었었지요. 당시로는 대단한 상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습니다. 밤늦도록 노래를 불러도 마을 아지매들과 아재들이 넉넉하게 이해해 주었고, 부모님께선 마루에 앉아 마당을 내려다 보며 음식을 하시느라 수고하신 형수님들께 노고를 치하하면서 대접하던 시간이 눈에 선합니다. 


친구들이 불러주는 '전선야곡'과 동네 후배들의 합창 '서산갯마을, 일편단심 민들레야'도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렇게 깊은 밤이 지나고 여자애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지만 남자들은 아침까지 마당 덕석에 이리저리 누워 잤습니다. 새벽에 누군가 와서 저를 깨우며 격렬하게 안아 준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 말하는 이 친구입니다. 해병대 입대 후 훈련이 끝나자마자 휴가를 받아 집에 왔는데 제 입대 송별식을 듣고 자기 집에서 우리 마을까지 새벽길을 걸어온 모양이었습니다. 


"야~ 내 휴가 왔다. 그란데 니는 인자 입대해야 하네. 우짜노 훈련 받을라면 힘들 낀데. 괜찮겠나."


전 당시 술에 만취되어 제대로 판단할 수 없었지만 그 친구 목소리는 생생하게 들렸습니다. 어머니는 밤새 아들 걱정에 잠도 못 이루고 계시다가 제 친구 목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어머니 저 상동에 사는 00입니다. 그간 잘 계셨습니까. 야~ 입대 한다카는 말 듣고 집에서 걸어왔심더."

"아이고, 상동 그 친구요. 고맙네. 벌써 군에 갔나 보네. 이렇게 멀리 힘들게 걸어서 와주이 고맙네. 아침 먹어야지."


긴 긴 세월 자주 만나진 못해도 전화 통화는 자주 했던 편입니다. 그 친구는 사범대학 출신이나 교직이 아닌 다른 진로를 선택했고, 현직에서 일찍 은퇴하면서 노후에 접어들었지요. 요즘은 아파트 경비를 하는데, 이 친구 인물이 좋고 체격도 빼어나고 책임감도 강하여 그 분야에 인기가 많은 모양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헬쓰를 하면서 건강 관리를 잘 해서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입니다. 몇 달 전에 대구에 그 친구 딸 혼사에 다녀왔는데, 장인과 사위가 서로 바뀐 듯할 정도였습니다. 지금도 이목구비가 뚜렷하니 잘 생긴 친구입니다.


그 친구가 아파크 경비 일을 마치고 갑자기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자주 있는 일이기에 오늘도 친구의 삶을 들어주려 마음먹었지요. 


"야~, 잘 지내나. 지금 근무마치고 집에 가는 길인데 집에 가자마자 집사람 태워서 부산 가려 하는데 니 잠깐 볼 수 있나. 넷이서 식사라도 하고 싶은데, 될 수 있겠나?"


당연이 불가하지요. 아내가 건강해도 될까 말까 한데 아내의 건강 상태가 여의치 않은데 더 더욱 어렵지요. 친구도 제 아내의 상황을 짐작하고 있기에 잠깐만 시간내어 이야기를 나누면서 위로를 하고 싶었겠지요. 그 부부 신혼 여행을 부산으로 와서 그때 당시 아내와 함께 그 친구들과 어울려 식사를 한 적이 있었거든요. 아내도 건강할 때는 웬만하면 저와 함께 행사에 자주 참여하였습니다. 제 지인들의 상가에는 아내와 반드시 함께 가서 조문을 하였습니다. 부부가 함께 와서 조문하는 경우는 아주 친한 사람이 아니면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일이지요. 직장 동료든 사회생활 모임 동료든 상가에 갈 일이 있으면 아예 아내와 함께 다녀왔습니다. 어떨 때는 조의금에다가 함께 가주는 아내에게 줄 봉투도 따로 준비하곤 했지요. 둘이서 여행이든 방문이든 함께 가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아내도 제 마음을 잘 헤아려 주었습니다. 



아내는 제 차 말고 다른 차에 타는 것을 매우 불편해 합니다. 장이 좋지 않아 단체 관광을 갈 기회가 있어도 참여하지 못합니다. 도중에 화장실에 들를 일이 많거든요. 아내가 코로나 접종 후유증을 겪기 전에는 둘이서 토요일만 되면 '무작정, 무계획, 무목적" 1박 2일을 떠났습니다. 집을 나서서 어느 방향이든 달려가 해가지는 곳 아무데나 호텔에 들어가서 숙박합니다. 아내가 처음엔 호텔 비용이 너무 비싸다고 망설였습니다. 돈 아껴서 3남매에게 주자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제가 그랬지요. 


"있잖아, 믿기 어렵겠지만 이런 것도 한 때다. 앞으로 어느 순간에는 둘이 어딜 여행갈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이 한 살이라도 덜 먹었을 때, 다리에 힘이 있을 때 다녀야 한다 아이가. 언제까지나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마음이야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그럴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살아보면 이렇게 다니는 것도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몰라. 그리고 지금 호텔 비용 비싸다고 걱정하는데, 이것도 다 우리 노후 건강 예방 차원이라 생각하면 결코 비싼 기 아이다. 당신 아~들 걱정하는 거는 이해하는데, 앞으로는 각자 삶을 살아가는 기다. 건강해야 아이들한테 짐이 안 되고 아이들이 효도를 할 수 있데이."


아내는 몸이 아픈 와중에도 어느 날 우리 부부가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져도 아이들이 살아가는데 걱정하지 않도록 제일 먼저 딸 아이 아파트를 어떻게 어떻게 마련해 주더군요. 제 퇴직금 일부에 딸 아이 저축에다 아내가 비상금으로 모아놓은 돈을 합쳐 그렇게 딸 아이 집을 마련해주었지요. 경기도에 혼자 근무하는 막내아들도 집을 당장 사주긴 그렇고 해서 전세를 또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제 막 직장 생활 시작하는 아이가 월세로 하면 생활이 너무 어려울 것 같다면서요. 큰아들 집도 소형이지만 마련해주려고 아내가 제안해도 큰아들은 사양합니다. 아직은 집이 필요하지 않으니 부모님 몸부터 먼저 돌보시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내는 큰아들몫은 따로 놓고 큰아들이 동의하면 그때 집 마련을 해주자고 했습니다. 행여 저와 아내가 이 세상을 하직할 때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걱정을 하지 않게 하려는 아내의 배려에 참으로 고마울 뿐입니다. 그렇게 걱정을 많이 하니 몸도 저렇게 아픈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 대구 친구가 전화하면서 잠깐 식사하자고 제안한 것에 대해 왜 내가 불가한가를 세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친구 입장에선 참으로 서운하고 맥빠질 수 있지만 제 입장에선 어딜 그런 사정까지 생각할 여유가 있나요. 아내의 사정을 말하며 다음 기회로 미루자고 완곡하게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 '미안하다'하고 양해를 구했지요. 친구도 기꺼이 이해한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바로 카톡으로 문자가 왔습니다.


"걱정 많제, 의사나 잘 아는 사람에게 확인하여 '거꾸리' 그거 한번 해바라. 정말 효과가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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